앞뒤 좌우로 이동하면서 개미처럼 힘을 합쳐 짐을 나른다면 어떨까?
모빌리티의 혁신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합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매년 아이디어 페스티벌을 여는 이유죠. 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가 16년째 주관하는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임직원들이 모빌리티와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이를 실물로 구현해 발표하는 행사입니다. 서로 다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이들이 모여 과제를 설정하고, 마음을 모아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혁신을 향한 여정과도 같습니다.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시작된 기술들이 실제 양산 모델에 적용된 사례도 많습니다. 예컨대 2021년 최우수상을 차지한 ‘다기능 콘솔’은 현대차 5세대 싼타페의 ‘양방향 멀티 콘솔’이 되었습니다. 2025년 아이디어 페스티벌 대상을 차지한 ‘ANT(Active-omni Navigating Transporter)’ 또한 커다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개미처럼 협력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전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플랫폼으로서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거든요. ANT를 개발한 ‘ANT Lab’ 팀을 만나 ANT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봤습니다.
ANT Lab 팀의 이야기는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차가 CES 2020에서 공개한 PBV 콘셉트가 계기였죠. 현대차는 미래 모빌리티인 PBV의 핵심 키워드로 ‘도킹’을 제시했습니다. PBV와 PBV를 연결하고, PBV와 건물을 연결함으로써 공간을 확장하고 용도를 바꾸는 미래를 그렸죠.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모빌리티가 한층 다양한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우주선은 도킹 시 여러 방향으로 분사해 정확한 위치를 잡습니다. 모빌리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후좌우만 아니라 제자리 회전, 사행 이동 등이 가능하다면 도킹이나 물류 작업이 훨씬 쉬워질 수 있습니다.
샤시선행개발팀 황상우, 성준호, 김민준 책임연구원과 L프로젝트팀 박우근 책임연구원은 당시 PBV 콘셉트의 볼 타입 휠에 주목했습니다. 볼 타입 휠은 기존의 바퀴와 달리 앞을 향한 채 옆으로 가는 등 모든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바퀴라는 특성상 개선할 부분도 분명 있었습니다. 바퀴가 미끄러지며 움직이는 방식이기에 비가 오는 등 접지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는 쓰기 어렵기 때문이죠. ANT Lab 팀의 설명입니다.
“현대차가 2020년 CES에서 발표한 PBV 콘셉트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련 기술을 탐구하면서 시스템의 활용은 물론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과 협동·협업 모빌리티의 필요성을 느끼고 ANT를 개발했어요. ANT는 ‘Active-omni Navigating Transporter’의 약자로, 전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모빌리티를 뜻합니다. 그리고 개미(Ant)가 협력해 무거운 짐을 나르듯, 여러 대가 함께 일한다는 비전도 담고 있죠.”
사실 ANT가 최초의 전 방향 이동 모빌리티는 아닙니다. 전 방향 이동이 미래 모빌리티의 필수 요소로 여겨진 기술인 만큼, 기존에도 메카넘(Mecanum) 휠이나 옴니(Omni) 휠 등 여러 형태의 전 방향 이동형 바퀴가 있었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메카넘 휠과 옴니 휠의 경우 견인력이 약하며 동력 손실과 롤러 마모가 심했습니다. 게다가 작동 소음도 컸죠.
ANT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설계로 이 모든 단점을 극복했습니다. ANT는 휠의 바깥쪽에 좌우로 회전하는 도넛형 타이어를 끼웠으며, 이를 휠 내부의 유성 기어로 움직입니다. 휠 전체가 회전하면 앞뒤로, 도넛형 타이어가 회전하면 좌우로 움직이죠. 방향 전환은 좌우 바퀴의 회전 차를 이용합니다. 덕분에 바퀴를 꺾지 않고 모든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황상우 책임연구원의 설명입니다.
“기존의 전 방향 이동형 바퀴와 ANT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찰력이 아니라, 직접 연결된 기구를 통해 동력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옴니 휠과 비교해 더 많은 트랙션을 확보할 수 있어, 더욱 다양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죠. 그리고 기존 옴니 휠이 딱딱한 롤러를 사용한 것과 달리 ANT는 타이어를 적용함으로써 NVH 성능과 접지력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성준호 책임연구원은 ANT만의 여러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ANT는 모빌리티 형태에 맞춰 마치 자동차의 바퀴처럼 측면에서 모든 동력원이 전달되는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ANT의 기술이 도킹 모빌리티에 적용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하중 분산과 승차감 개선을 위해 서스펜션을 반드시 적용해야 합니다. ANT의 직결 구조라면 서스펜션을 함께 적용할 수 있습니다.”
ANT의 비밀은 2개의 모터에 있습니다. 모터 1은 휠 본체의 허브, 모터 2는 휠 내부의 기어 샤프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ANT는 두 모터의 속도를 조절해 움직입니다. 휠 본체와 기어 샤프트가 같은 속도로 회전하면 도넛형 타이어의 횡방향 회전 없이 휠 본체만 회전해 앞뒤로 움직입니다.
기어 샤프트만 회전시키면 내부의 유성 기어가 동력의 회전 방향을 바꿔 도넛형 타이어를 움직입니다. 해당 상태에서 ANT는 좌우로 미끄러지듯 움직입니다. 기어 샤프트를 정지시키고 휠 본체만 회전시킬 때는 내부의 유성 기어가 공전하는 동시에 자전하여 종방향과 횡방향 회전이 모두 발생합니다. 사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양쪽 휠의 속도를 다르게 하면 좌우로 회전할 수 있고, 양쪽 바퀴를 반대 방향으로 구동하면 제자리 회전도 가능합니다. 간단한 구조로 구동과 조향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죠.
ANT의 도넛형 타이어에도 혁신이 담겨 있습니다. ANT에 쓰이는 타이어는 일반적인 타이어와 요구 조건이 다릅니다. 수직 하중을 지지하는 것은 같아도, 좌우 회전에 따른 토크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죠. 또한, 해당 과정에서 생기는 ‘타이어를 굽히는 힘(Bending Moment)’을 흡수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횡 구동이 가능합니다. 이에 ANT Lab 팀은 하중지지 셀과 굽힘 셀을 번갈아 배치한 타이어를 만들었습니다. 딱딱하되 유연하고, 튼튼하되 부드러운 이유죠. 김민준 책임연구원이 다음과 같이 제작 과정을 떠올렸습니다.
“설계보다 어려운 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타이어의 경우 설계한 구조를 구현하려면 3D 프린팅으로 출력해 조립하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최고의 선택을 위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3D 프린터에 쓸 수 있는 소재 중 가장 적합한 재료를 골라야 했고, 흔치 않은 형상을 구현하는 만큼 3D 프린팅 방식 각각의 이점도 따져봐야 했거든요.”
박우근 책임연구원은 “ANT의 타이어는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일반 타이어와 거동이 매우 다르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타이어에는 3D 프린팅이 가능하면서 유연한 소재인 TPU(열가소성 폴리우레탄)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하중지지 셀의 경우 이전부터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있는 비공압 타이어를 참고하여 설계했습니다.”
ANT는 모빌리티의 미래를 상상하며 만든 플랫폼입니다. 그만큼 기존의 모빌리티와는 다른 특별한 기능을 여럿 갖고 있죠. 예컨대 ANT는 필요에 따라 너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액추에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양쪽의 휠을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너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동 중에는 휠의 구동력에 의해 너비가 변하지 않도록 영전자석(전류를 가하면 자력이 사라지는 전자석)을 활용한 잠금 시스템을 갖추고 있죠.
그리고 ANT는 협동 운송이 가능합니다. 개미가 무거운 짐을 협력해서 옮기듯, 여러 대의 ANT를 연결해 하나의 큰 모빌리티를 만들면 커다란 화물도 쉽게 운반할 수 있죠. 또한, 배송의 효율성을 위해서 여러 대의 ANT가 도킹해 하나의 밴 형태로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목적지 근처에서 각각 개별 주소로 배송하는 것도 가능하죠. 배송이 완료되면 다시 하나의 밴 형태로 뭉쳐 충전소로 돌아온다면 관리도 상당히 쉬워집니다.
이처럼 ANT는 필요에 따라 상부 모듈을 교체할 수 있어 배송, 여객, 물류 등 다양한 용도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자리 회전도 가능해 방향을 틀기 위한 넓은 공간이 필요 없습니다. 제조 현장이나 물류 현장에서 필요한 부품이나 화물을 운반하고, 필요 시 여러 대가 도킹해 대형 화물도 옮길 수 있죠.
도킹이 가능한 미래 모빌리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만큼, ANT는 공간 형태의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장점도 여럿 갖추고 있습니다. 정교한 이동이 가능해 건물과 모빌리티의 도킹이 쉬워지는 것은 물론, 바퀴가 회전할 공간이 필요한 일반적인 자동차 대비 바퀴가 차지하는 공간이 적기에 실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습니다. ANT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이유입니다.
ANT Lab 팀은 2025 현대차그룹 아이디어 페스티벌 대상 수상으로 202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6 CES 견학 기회를 얻었습니다. 2020년 CES에서 ANT Lab 팀이 본 PBV가 영감의 시작이 되었듯, 언젠가 ANT가 CES 무대에 오른다면 ANT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혁신이 등장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죠.
현대차그룹은 단순히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를 넘어, 사람들의 이동과 공간의 경험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ANT는 이러한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춘 플랫폼입니다. 효율적이고 유연한 이동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ANT가 만들어갈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현대자동차그룹 뉴스 미디어, HMG 저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