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떤 것이 바뀔까? 2026 WRC 미리보기

2026년 시즌은 현행 랠리카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할 해이다.

by HMG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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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은 2025년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시즌 초 투입한 신형 차량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다소 불안했다. 여기에 새로운 타이어(한국타이어)까지 더해지면서 최적의 세팅값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2026년은 타이어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였고, i20 N 랠리1의 잠재력을 한계까지 끌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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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현대팀과 13년째 함께하는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은 2024년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등극했으나, 이듬해인 2025년에는 디펜딩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즌 내내 3위 네 번에 머물다가 최종전 사우디에서 우승을 기록하며 체면을 세운 정도다.


오트 타낙(Ott Tänak)의 이탈로 팀 내 입지가 높아진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는 올해 역시 풀타임 출전한다. 지난해에는 일본전을 포함한 몇몇 경기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종전 2위와 함께 4번의 포디엄 피니시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우디 랠리에서는 체크인 실수로 페널티만 받지 않았다면 우승도 가능했다. 리스크 관리와 일관성을 개선한다면 언제라도 우승 가능한 전력이다.



03.jpg 2026 시즌의 새로운 리버리는 기존 컬러 조합에 블랙 컬러를 포인트로 삼았다


04.jpg 과거 현대팀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3번째 차를 나눠 타며 누빌과 포모를 서포트할 예정이다


공백이 생긴 3번째 차의 드라이버로는 다양한 이름이 거론되다 예전처럼 여러 드라이버가 나누어 타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다니 소르도(Dani Sordo), 에사페카 라피(Esapekka Lappi), 헤이든 패든(Hayden Paddon) 등 모두 현대팀 팬에게 익숙한 얼굴이다. 큰 변화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현대팀은 낯선 신예보다는 손발 맞추어 본 노련한 베테랑 쪽을 선택했다. 또한 뛰어난 성과 덕분에 파트타임에서 풀타임 출전으로 변경된 토요타의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와 같은 케이스를 생각하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05.jpg ERC 챔피언 경력을 보유한 뉴질랜드 드라이버, 헤이든 패든이 WRC 최상위 클래스에 복귀했다


놀라운 건 헤이든 패든이 무척 오랜만에 복귀한다는 사실이다. 뉴질랜드 출신의 패든은 월드 랠리카 시절이던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현대팀에서 활동했다. 이후에도 현대 뉴질랜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호주 챔피언은 물론 비유럽인 최초로 ERC(European Rally Championship)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이어왔다. 최고 클래스에 무려 8년 만의 복귀일 뿐 아니라 낯선 차량에 적응해야 하지만 현대 랠리2 차량 개발 작업에 오랜 기간 참여해 온 만큼 2027년 큰 변화를 앞둔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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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든은 현대팀에 복귀하며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현대팀과 함께했던 마지막 대회로부터 8년이 지나 복귀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현대차는 제가 12년간 동고동락하며 충성을 다해 온 자랑스러운 브랜드입니다. 최상위 랠리1에 오르게 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설렙니다. 우리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누빌과 포모가 각자 챔피언십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경기를 마칠 때마다 최대한 많은 팀 포인트를 획득해야 합니다. 다양한 챔피언십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았고, 이제 그 경험을 실전에서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패든은 이번 도전을 위해 오랜 파트너인 존 케너드(John Kennard)를 다시 불러들였다. 66세의 케너드는 랠리1 역사상 최고령 참가자다.



07.jpg 최근 몇 년간 현대팀의 파트타임 드라이버였던 다니 소르도는 지난해 포르투갈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1983년생 스페인 출신의 소르도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현대팀 파트타임 드라이버로 활동하며 9번이나 포디엄에 올랐다. 지난 시즌에는 포르투갈 랠리 챔피언십(Rallye Vidreiro Centro de Portugal)에서 타이틀을 차지했다. 출전 기회가 적은 상황에서도 득점력이 높았던 소르도는 제5전 랠리 이슬라스 카나리아스(스페인)에서 이번 시즌을 시작한다. 소르도는 “포르투갈에서의 일탈을 마치고 2026년 다시 랠리1 차량으로 복귀하게 되어 기쁩니다. 강력한 i20 N 랠리2로 시즌을 보낸 결과, 포르투갈 챔피언이라는 환상적인 성과를 올렸습니다. 우리는 상승세를 이어 가길 고대하고 있으며, 랠리1에서도 경쟁력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라고 전했다.



08.jpg 현대팀과 2번의 시즌을 함께했던 라피가 복귀하며 WRC 커리어를 이어간다


2023년 현대팀에 합류했던 라피는 2024년 스웨덴 우승 포함 5번의 포디엄 기록을 남겼다. WRC 은퇴를 고려했던 라피는 뜻밖의 복귀에 무척 흥분한 모습이었다. “사실 저의 WRC 커리어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비테불 감독의 전화를 받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어린아이처럼 설렙니다. 특히 이번에는 코드라이버 에니 말코넨(Enni Mälkönen)과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녀에게도 멋진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루빨리 시즌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라피는 제2전 스웨덴에서 복귀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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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타임 드라이버를 나누어 태우는 방식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각 선수는 일부 경기만 출전하기 때문에 차량 적응과 경기감각 유지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반대로 팀 차원에서는 각 드라이버의 컨디션과 강점을 고려해 각 경기에 출전시킬 수 있고, 풀 시즌 출전 드라이버를 서포트하는 전략적인 활용도 가능하다.


이들은 WRC2 클래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2027년부터 도입되는 새 규정 덕분에 올해는 랠리2 차량의 성능이 매우 중요하다. WRC2에서 신예 드라이버 육성에 주력하는 토요타와 대조적으로 현대팀은 베테랑 드라이버를 투입해 랠리2 차량 관련 데이터 축적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다니 소르도와 헤이든 패든이 랠리1으로 나서지 않는 경기에서 WRC2로 출전한다.



10.jpg 앤드류 휘틀리가 시릴 아비테불 센터장의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 할 전망이다


팀 체제에도 변화가 있었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통해 국제 내구 챔피언십(WEC)에 도전하는 현대모터스포츠는 각 분야에 맞는 인력 충원과 세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WEC 준비로 바쁜 시릴 아비테불(Cyril Abiteboul) 센터장을 도와 랠리 현장에서 팀을 진두지휘할 인물로 앤드류 휘틀리(Andrew Whitley)를 영입했다. 스포팅 디렉터(Sporting Director)로 임명된 휘틀리는 M-스포트에서 20년 가까이 경력을 쌓았고, 최근에는 FIA 랠리 디렉터로 활동하며 지금의 WRC 규정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기술 감독인 프랑수아-자비에 드메종(François-Xavier Demaison), 엔지니어링 책임자 제라드 얀 드 종(Gerard Jan de Jongh) 등과 함께 팀의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최근까지 사용해 온 핀란드의 테스트 코스 대신 프랑스 남부에 새로운 테스트 기지를 마련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시즌 후반 거친 비포장 랠리를 대비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본거지 독일에서 지나치게 먼 핀란드 대비 훨씬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핀란드는 일반도로라서 관리가 까다롭지만 프랑스의 푸종쿠스(Fontjoncouse)와 샤토 드 라스투르(Château de Lastours) 지역은 랠리카 테스트에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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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jpg 지난 해 토요타팀은 오지에의 통산 9회 챔피언 등극을 비롯한 트리플 크라운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 가주 레이싱 (https://toyotagazooracing.com)


지난해 챔피언 타이틀을 휩쓸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감한 토요타는 일찌감치 드라이버진을 결정했다. 칼레 로반페라(Kalle Rovanperä)가 서킷 레이싱 도전을 위해 떠나긴 했지만 토요타의 전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개인통산 9회 챔피언의 위업을 달성한 세바스티앙 오지에는 올해도 파트타임으로 시작하며, 막판까지 타이틀 경쟁을 벌였던 엘핀 에반스(Elfyn Evans)도 자리를 지킨다.



13.jpg 로반페라가 이탈함에 따라 토요타팀은 지난 시즌 WRC2에서 맹활약한 올리버 솔베르그를 영입했다. 사진:가주 레이싱 (https://toyotagazooracing.com)


로반페라의 공석은 WRC2 챔피언인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가 대체한다. 솔베르그는 지난해 에스토니아에서 처음 타는 GR 야리스 랠리1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토요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일본인 드라이버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도 그대로다. 사미 파야리(Sami Pajari)는 올해도 토요타 WRC2에서 경험을 쌓는다. 팀에서는 개막전 팀 포인트 담당 드라이버로 오지에와 에반스 외에 솔베르그를 지정해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14.jpg 토요타는 새로운 랠리1 차량에 가주 레이싱 로고의 키 컬러를 입혔다. 사진:가주 레이싱 (https://toyotagazooracing.com)


GR 야리스 랠리1은 에어로 파츠와 기어박스 등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리어 윙은 양 끝단 곡면을 각진 형태로 다듬고 수직핀을 추가했다. 리버리도 변화를 줬다. 지난해는 올 블랙을 기반으로 몇몇 무더운 경기에서 은색을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붉은색과 화이트, 블랙을 강렬하게 조합했다.


감독인 야리마티 라트발라(Jari-Matti Latvala)는 최근 핀란드의 명문 팀인 프린트 스포츠(Print Sport)를 인수해 기존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라트발라 모터스포츠(Latvala Motorsport)와 통합할 예정이다. 프린트 스포츠는 이미 2년 전부터 GR 야리스 랠리2로 전환했는데, 이번 인수를 통해 사실상 토요타 하위팀으로 자리하며 GR 야리스 커스터머 차량의 엔지니어링 서포트, 부품 공급 허브 역할과 함께 드라이버 육성 등을 담당한다. 해당 팀은 일본인 유키 야마모토(Yuki Yamamoto) 외에 18세의 에스토니아 출신 카스파르 바헤르(Kaspar Vaher) 등 잠재력 높은 신예를 기용해 가능성을 시험한다.



15.jpg 브랜드 정책이 달라진 토요타의 WRC 영역은 이제 가주 레이싱이 담당한다. 사진: 가주 레이싱 (https://toyotagazooracing.com)


토요타 브랜드 정책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의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을 토요타 레이싱(Toyota Racing)과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으로 나누기로 했다. 토요타 레이싱은 WEC와 나스카 등 서킷 레이싱과 R&D를 담당하고, WRC와 고성능 차량 GR 라인업은 가주 레이싱이 맡는다. 2007년 설립 당시의 이름으로 돌아간 가주 레이싱(GR)은 로고에서도 토요타를 떼어내고 독립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다만 토요타 레이싱으로 바꾼 WEC와 달리 WRC에서는 기존 팀명을 올해까지 유지한다.



16.jpg M-스포트 포드는 조쉬 멕컬런을 메인 드라이버로 유지하고 존 암스트롱(우측)을 새로 엔트리에 올렸다. 사진: M-스포트 (https://www.m-sport.co.uk)


M-스포트 포드는 조쉬 멕켈런(Josh McErlean)을 그대로 기용하지만 2023년부터 함께했던 그레고와 뮌스터(Grégoire Munster)와 결별하고 신예 존 암스트롱을(Jon Armstrong) 영입했다. 포모의 현대팀 이적과 함께 에이스로 승급한 뒤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 뮌스터의 경질 이유다. 암스트롱은 멕켈런과 같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2023년 ERC3 챔피언을 거쳐 지난해 ERC로 승격해 챔피언십 2위를 기록했다. 주니어 WRC 시절부터 랠리2까지 M-스포트 포드 차량을 사용해 왔으며, e스포츠 WRC 챔피언(2018년) 출신이기에 시뮬레이터 사용에도 능숙하다. 모터스포츠 아일랜드 아카데미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재정 부담이 큰 팀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다. 뮌스터는 시트를 잃었지만 개막전인 몬테카를로에서는 퓨마 랠리1을 몰기로 했다. 이후 활동 계획은 알려지지 않았다.



17.jpg 사진: 스텔란티스(https://www.media.stellantis.com)


이번 시즌 화제의 주인공이라면 단연 ‘란치아(Lancia)’가 첫손에 꼽힌다. 스텔란티스 소속의 이탈리아 브랜드 란치아는 WRC 역사에서 10회 제조사 챔피언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올해는 WRC2 클래스에만 참가하지만 규정이 바뀌는 2027년부터는 톱 클래스 도전도 가능해진다. 랠리카에 사용되는 4세대 입실론(Ypsilon)은 13년 만에 발표된 란치아의 신차로, 랠리팬들을 흥분시킬 전설적인 이름 ‘HF 인테그랄레’를 부활시켰다.


참고로 란치아는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브랜드로 1906년 탄생했다. 1969년 피아트에 매각된 후 WRC의 전신인 1972년 IMC(International Championship for Manufacturers, 국제 제조사 챔피언십)에서 풀비아(Fulvia)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WRC 창설 이후에도 타이틀 행진은 계속되었다. 페라리 엔진을 차체 중앙에 얹은 미드십 스트라토스(Stratos)는 랠리를 위해 태어난 특별한 모델로 3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었고, 그야말로 ‘고성능 괴물’들이 난립하던 1980년대에는 아름다운 미드십 랠리카 037(1983년 챔피언)과 네바퀴 굴림의 델타 S4를 투입하며 WRC의 역사적인 그룹B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18.jpg 란치아의 역대 랠리카. 사진: 스텔란티스(https://www.media.stellantis.com)


1987년, 그룹B가 연이은 사고로 갑작스레 폐지되고 그룹A가 도입됐다. 란치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델타 HF 인테그랄레를 선보이며 6연속 타이틀(1987~1992)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란치아는 운 좋게도 랠리카 베이스로 딱 적당한 소형 해치백 델타의 고성능 네바퀴 굴림 버전(델타 HF 4WD)이 있었다. 라이벌들이 빠르게 따라붙었지만 란치아의 6연속 독주를 저지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란치아가 거둔 제조사 타이틀은 10번, 드라이버즈 타이틀은 5번이다. 지난해 토요타가 9번째 제조사 타이틀을 손에 넣으면서 란치아의 대기록에 바싹 다가섰다.



19.jpg 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 에보 마티니 Gr.A 경주차(1992). 사진: 스텔란티스(https://www.media.stellantis.com)


이처럼 란치아의 복귀는 ‘전설의 귀환’인 만큼, 오랜 랠리팬이라면 델타 HF 인테그랄레의 후계자 입실론 랠리2 HF 인테그랄레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복귀한 란치아의 드라이버로는 요안 로셀(Yohan Rossel)과 니콜라이 그리야진(Nikolay Gryazin)이 선택되었다. 란치아 코르세 HF의 감독은 디디에 클레망(Didier Clément), 기술 고문은 WRC 챔피언 출신의 미키 비아시온(Miki Biasion)이 맡고, 팀 운영은 프랑스의 명문 PH 스포르(PH Sport)가 담당할 예정이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대변혁, WRC27


20.jpg 최근 FIA는 2027년 도입되는 새로운 톱 클래스 랠리카의 컨셉 이미지를 공개했다 사진: FIA (https://www.fia.com)


WRC는 지난 2024년 국제 모터스포츠 평의회(WMSC)를 통해 2027년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2022년 도입된 랠리1 규정은 하이브리드 구동계와 스페이스 프레임을 도입하는 등 기술적으로는 큰 변혁을 불러왔으나 개발비 증가와 기술적 난이도 상승으로 참가팀이 줄어들어 운영적으로는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짐에 따라 최소 5년 정도 유지되던 규정의 큰 틀을 조기에 갈아엎기로 했다. 2025년부터 하이브리드 유닛을 제거해 1.6L 터보 엔진만으로 네 바퀴를 굴리는 기술적 과도기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WRC27에서 핵심적인 변화는 바로 비용 절감이다. 비싸고 복잡한 랠리1으로는 신규 제조사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이브리드 랠리1 차량 한 대를 만드는 데는 약 100만 유로(약 17억 원)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차량 한 대당 비용을 34만 5,000유로(약 6억 원)까지 끌어내린다.



21.jpg 사진: FIA (https://www.fia.com)


섀시는 랠리1처럼 스페이스 프레임과 별도의 보디 패널로 구성하지만 주요 부품은 랠리2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외형은 양산차를 흉내 내거나 맞춤형 제작도 가능하기 때문에 적당한 양산차가 없는 메이커도 참가가 가능하다. 성능 면에서는 랠리2 차량과 비슷한 수준. 290마력의 1.6L 터보 엔진과 5단 기어박스, 브레이크 시스템 등은 현행 랠리2를 활용한다. 엔진은 향후에 하이브리드나 EV 도입 가능성도 열려 있다. 서스펜션과 차체, 보다 과격한 디자인의 에어로파츠 정도가 차이점이다.


WRC27과 랠리2 사이의 성능 차이는 최저중량 등을 조정해 밸런스를 맞출 예정이다. 특히 랠리2 차량에게도 우승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에 스코다(Skoda), 시트로엥(Citroën)처럼 WRC2에서 활동 중인 제조사는 물론, 비용이 부담되는 신규 제조사나 소규모 튜너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또 하나 기대할 수 있는 점은 보다 많은 드라이버에게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최고 클래스에 여유 시트가 부족할 뿐 아니라 테스트 일수마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2027년부터는 랠리2 차량을 타는 드라이버라면 누구나 종합 우승을 노려볼 수 있다.



22.jpg 사진: WRC (https://www.wrc.com)


WRC27 규정은 현재 토요타가 공식 참전을 선언했으며, 신규 컨스트럭터도 하나 공개되었다. 이브 마통(Yves Matton)이 벨기에의 프로스피드와 함께 진행 중인 프로젝트 랠리원(Rally One)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랠리원은 이미 기본 설계를 마치고 튜블러 스페이스 프레임을 완성해 올 봄에 예정된 쉐이크다운을 시작으로 장거리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 이브 마통은 시트로엥 레이싱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최근까지 FIA에서 랠리 디렉터로 근무했다.


사실 2000년대 이후 WRC에서는 최고 클래스에 참가하는 제조사가 서서히 감소해 왔다. 다양한 메이커의 참가를 위해 신설한 월드랠리카 규정(일반 차량을 자유롭게 개조해 네바퀴 굴림 고성능 랠리카로 만들 수 있었다)은 사실상 순수 경주차에 가까워 개발비가 폭등했고, 랠리1 시대에는 하이브리드까지 도입되면서 그 복잡성이 배가되었다. 이런 흐름을 끊기 위해 비용 절감에 주력한 WRC27 규정을 일찍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자유도가 줄어드는 대신 경제적 부담도 줄여 더 많은 브랜드의 참가를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내구 레이스계(WEC, IMSA)가 하이퍼카 규정을 도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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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변화가 도입되면 랠리1에 참가 중인 현대차와 토요타, 그리고 포드는 물론 랠리2 차량을 공급 중인 스코다와 시트로엥, 그리고 란치아와 신생 랠리원까지 우승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소규모 튜너나 팀의 참가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모터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기술적 혁신을 빼놓을 수 없다. 양산차와 연관성이 적은 개인 자격 랠리카들이 득세할 경우 오히려 자동차 메이커들이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축소된 성능 때문에 경기의 긴장감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도 들린다. 하지만 최고 클래스 참가 브랜드가 늘어난다면 황금기의 모습이 재현될 지도 모른다. 지난 2000년에는 현대차를 포함해 무려 7개의 제조사가 WRC에 참가했지만, 최근에는 3개까지 줄어들었다는 점을 좌시해서는 안된다.




미래를 대비하는 i20 N 랠리2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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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팀은 WRC2와 각종 지역 이벤트에 투입하고 있는 i20 N 랠리2에 대한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2025 시즌 직전에 도입한 스텝2 업그레이드 패키지를 도입하며 엔진과 서스펜션 등을 크게 개선했는데, 이번에는 이를 더욱 다듬어 성능을 최적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내년부터 최고 클래스인 WRC27가 랠리2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근간이 되는 랠리2 차량의 완성도가 전반적인 전투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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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텝2’ 버전은 엔진과 서스펜션은 물론 와이퍼와 리어 윈드실드까지 구석구석 큰 변화가 있었다. 엔진은 밸브 시스템을 손봐 중저속 토크를 향상시키는 한편, ECU 매핑과 냉각 시스템도 개선했다. 무엇보다 각 엔진에 맞춤형 캘리브레이션을 제공한다. 엔진은 아무리 정밀하게 제조한다 해도 유닛별 약간의 편차는 있으며, 양산차 부품을 많이 사용하는 랠리2의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조립이 끝난 엔진을 엔지니어가 하나씩 점검한 후 각 엔진 컨디션에 맞는 전용 소프트웨어 세팅을 제공함으로써 1.6L 터보 엔진의 성능을 100% 끌어낸다.


보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속기 기어비를 조정했으며, 내부 구조를 재설계한 신형 댐퍼도 장착했다. 그레블 랠리에서의 주행 성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아울러 조커*를 사용해 고성능 와이퍼 모터를 장착하고 새로운 경량 뒷유리로 실내 통기성을 개선해 김 서림을 최소화했다. 악천후에서 안정적인 시야 확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업데이트다.


*조커: 일종의 경주차 설계 변경 허가권, 사용 횟수가 한정된다.



26.jpg 다니 소르도를 포함한 여러 드라이버가 새로운 랠리2 차량 개발에 참여했다


개발 테스트에는 지난해 포르투갈 챔피언인 다니 소르도와 오스트리아 챔피언 사이먼 와그너 (Simon Wagner)를 비롯해 프랑스의 타막 스페셜리스트 에릭 카밀리(Eric Camilli)와 위고 마가얀(Hugo Margaillan) 등이 참여했다. 다양한 의견을 참고해 누가 타더라도 안정적이고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는 차로 다듬어 냈다.


현대 커스터머 레이싱 매니저인 부누아 노지에(Benoit Nogi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25년 초반에 도입한 스텝2 업그레이드 패키지의 효과에 매우 만족합니다. 덕분에 선수권 타이틀 목록을 늘릴 수 있었어요. 그러나 시장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합니다. 최신 업데이트는 숨겨진 성능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며, 맞춤형 캘리브레이션을 통해 엔진이 항상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 겁니다.”




시즌 초반에 집중 배치된 타막 랠리


27.jpg 2026 시즌을 달릴 i20 N 랠리1은 알파벳 N에 담긴 남양과 뉘르부르크링 글자를 도어에 새겼다


2027년 대규모 변경을 앞둔 만큼 올해는 기술 규정 변화가 없다. 하이브리드 패키지를 제거한 랠리1 랠리카는 지난해와 크게 다른 점이 없으나 제조사들이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도록 2개의 개발 조커가 추가로 제공되었다. 엔진은 여전히 시즌 중 2기까지 사용 가능하다.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경기 도중 교체할 수 있는 대신 60분의 페널티와 함께 해당 경기의 챔피언십 포인트 자격이 상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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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운영 면에서는 휴식 시간 확보가 눈에 띈다. 그리스 랠리 등 일부 혹독한 경기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는 참가자들의 불만을 받아들인 결과다. 올해부터는 매일 최대 10시간, 그중 하루는 12시간의 휴식 시간이 보장된다. 개막일을 제외하고 랠리 기간 내 총 휴식 시간은 총 경기 시간과 동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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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린더에서도 몇 가지 변화가 있다. 우선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3개국에서 공동 개최했던 중앙유럽 랠리가 빠지고 그 공백을 크로아티아 랠리가 대체한다. 2025년 캘린더에서 잠시 빠졌던 크로아티아 랠리는 기존 자그레브(Zagreb)가 아니라 크로아티아 최대 항구도시인 리예카(Rijeka)로 옮긴다. 아드리아해 연안의 아름다운 풍경에 더해 고르스키 코타르 국립공원의 험준한 산악지형에 마련된 변화무쌍한 코스는 대부분의 선수에게 낯선 환경이다.



30.jpg 2026 시즌은 개최지와 개최 순서 등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시즌 막판에 열리던 일본 랠리는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 랠리와 자리를 바꾸어 두 경기 모두 기존과는 다른 계절에 열린다. 이탈리아의 경우 2027년부터 로마 인근으로 개최지를 옮길 예정이기에 사르데냐섬에서는 마지막 경기다. 폭염을 피해 쾌적한 가을에 열리는 만큼 선수들은 체력적 부담을 덜고 경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반면 일본 랠리는 가을의 차가운 날씨와 낙엽을 피할 수 있다. 노면이 깨끗하고 그립도 올라 스피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름 장마를 앞둔 시기라 국지성 폭우처럼 변덕스러운 날씨가 변수로 꼽힌다.



31.jpg 로드 스위핑으로 인한 선두 그룹의 손해를 줄이고자 타막 랠리를 시즌 초반에 배치했다


지금까지 시즌 초반과 후반에 나누어 배치되던 타막 랠리가 올해는 시즌 초중반(4, 5, 7라운드)에 집중 배치되었다. 분명한 의도가 엿보이는 변화다. 매 경기 출발 순서는 챔피언십 포인트를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선두 그룹은 노면에 쌓인 돌과 흙을 치우는, 이른바 ‘로드 스위핑(Road Sweeping)’ 탓에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타막 랠리를 시즌 초반에 집중 배치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불공정함을 완화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그레블에 비해 타막 랠리는 출발 순서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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