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슈퍼매치 14 야닉 시너 vs 카를로스 알카라스 경기는 이벤트다운 재미와 팬 서비스가 돋보였지만, 승부의 결까지 단단했습니다. 이날 경기는 알카라스가 7-5, 7-6(타이브레이크 8-6)으로 승리하며 마무리됐습니다. 기록으로는 2-0. 하지만 경기의 인상은 단순한 스코어 이상이었습니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선수는 한국 테니스 팬들에게 오래 기억될 장면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겠습니다.
2005년부터 이어져온 현대카드 슈퍼매치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닙니다. 스포츠와 문화를 결합해 하나의 브랜드로 구축한,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컬처 마케팅의 시작점입니다. 기업이 주체가 돼 당대의 상징적인 선수와 매치업을 성사시키고, 그에 맞는 서사를 만들고, 관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 경기였죠.
테니스로 출발한 슈퍼매치의 무대는 피겨스케이팅, 스노보드, 댄스스포츠, 골프 등으로 확장됐습니다. 김연아의 시니어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슈퍼매치 7’이나 도심 한복판에서 빅에어 점프대를 세웠던 스노보드 ‘슈퍼매치 9’, 갈라 형식으로 댄스스포츠 종목의 매력을 공연처럼 전달한 ‘슈퍼매치 12’,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맞대결을 만든 골프 슈퍼매치까지. 종목은 달라도 한국에서 경험하는 최정상급 대결이라는 기준은 일관됐습니다.
슈퍼매치는 스포츠를 ‘공연’처럼 다루는 방식에도 강점이 있습니다. 조명과 음악, 무대 연출이 하나되어 경기의 에너지를 끌어올리죠. 관중은 이를 마치 공연처럼 즐기며 단순한 경기가 아닌, 감동적인 경험의 순간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테니스는 슈퍼매치의 시작을 함께한 종목입니다. 2005년 열린 ‘마리야 샤라포바 vs 비너스 윌리엄스’가 첫 현대카드 슈퍼매치로 강한 인상을 남겼죠. 그리고 2006년 ‘페더러 vs 나달’, 2007년 ‘페더러 vs 샘프라스’, 2010년 ‘조코비치 vs 로딕’까지 이어졌습니다. 테니스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국내 경기가 슈퍼매치였던 이유죠. 이번 현대카드 슈퍼매치 14는 그 흐름을 2026년의 방식으로 다시 펼쳤습니다. ‘포스트 빅3’ 시대, 세계 랭킹 1·2위의 새해 첫 맞대결. 그 상징성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 테니스 팬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2001년 8월 16일(만 24세)
프로 전향: 2018년
총상금: 56,632,426달러
주요 경력: 그랜드슬램 우승 총 4회(호주 오픈 2회, 윔블던 1회, US 오픈 1회)
특이 사항: 어릴 적 스키 선수로 활동, 13세에 테니스로 전향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2003년 5월 5일(만 22세)
프로 전향: 2018년
총상금: 60,032,046달러
주요 경력: 그랜드슬램 우승 총 6회(US 오픈 2회, 윔블던 2회, 프랑스 오픈 2회)
특이 사항: 최연소 세계 랭킹 1위(19세 4개월), ATP 투어 연간 최다 타이틀(2025년 총 8회 우승)
시너와 알카라스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던 순간부터 국내 테니스 팬들의 분위기는 달아올랐습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SNS는 두 선수가 ‘정말 한국에 온다’는 기대로 가득 찼죠. 사실 세계 랭킹 1위와 2위를 한국에서 본다는 경험은 그 자체로 이미 이벤트였습니다. 두 선수에게도 현대카드 슈퍼매치 14는 호주 오픈 전초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새 시즌이 시작된 ATP 정규 투어에 나가지 않은 두 선수는 이 경기를 호주 오픈 대비 첫 실전 매치로 잡았으니까요. 시너와 알카라스는 경기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대카드 슈퍼매치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겠다.
제일 중요한 건 코트에서 즐기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카를로스 알카라스)
팬들을 위해 최대한 즐거운 경기를 펼치고 싶다.
테니스가 어떤 스포츠인지 보여주고 싶다.
(야닉 시너)
매치 전날의 기대는 거창한 평가로 포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짧지만 강하게, 우리가 지금 세계 테니스의 중심 장면을 보고 있다는 확신. 그 선명함이 슈퍼매치의 힘이니까요.
시너와 알카라스가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서 했던,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말과 테니스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말은 모두 사실이 됐죠. 둘의 표현은 다르지만 결은 같았습니다. 즐기되, 가볍지는 않게 임하겠다는 각오였죠.
10일,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경기장에서는 주니어 선수인 고민호와 정연수가 프리매치를 벌이며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본게임에선 1세트 초반부터 알카라스가 다리 사이로 샷을 선보이는 명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두 선수의 백핸드 슬라이스 랠리도 이어졌죠. 이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그럼에도 두 선수는 서로의 서브게임을 내주지 않으며 게임 스코어 5-5로 팽팽히 맞섰는데요, 친선 경기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지점에서 집중력이 돋보였습니다.
각도가 없는 곳에서도 샷을 주고받은 끝에 결국 6-5 상황에서 알카라스가 시너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팬들은 때론 정확도 높은 멋진 샷에, 때론 둘의 장난기 어린 진기한 플레이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2세트도 둘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접전을 벌였습니다. 게임 스코어 6-6에서 타이브레이크 승부를 펼치자 경기장의 모든 시선은 두 선수에게 쏠렸습니다. 알카라스는 타이브레이크 7-6으로 앞선 상황에서 회심의 포핸드 스트로크를 날렸습니다. 시너가 리턴 샷으로 받아쳤지만 네트에 걸리고 말았고, 결국 알카라스가 8-6으로 승리했습니다. 경기 시간은 1시간 46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안에 두 선수는 자신들이 왜 전 세계 1위와 2위의 위치에 서 있는지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친선 경기답게 유쾌한 장면도 많았는데요. 두 선수가 보인 트릭 샷, 의도적으로 만든 재미있는 랠리, 관중석을 향한 리액션이 그것이었죠.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재미를 오가며 재치있는 플레이를 구성하는 두 선수의 기술과 집중력, 기본기에 모두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팬 서비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너는 한 팬이 'I LOVE YOU'라며 팬심을 드러내자, 서브하려던 공을 팬에게 선물한 뒤 손 하트를 그려 보였습니다. 알카라스도 이에 질세라 더 큰 하트를 보내며 화답했죠. 멋진 스트로크를 성공시키면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리고, 슬라이스 샷 대결에서 승리한 뒤엔 두 팔 벌려 관객의 환호를 즐기는 등 두 선수는 팬과 호흡하며 경기를 즐겼습니다.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시너가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경기에 임할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시너가 2세트 게임 스코어 2-3, 40-30으로 앞선 상황에서 관중석에 있던 어린 테니스 유망주를 코트로 부른 장면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시너는 자신의 라켓을 내주며 '직접 경기해보라'며 격려했고, 어린 유망주는 알카라스의 배려 속에 멋진 샷으로 포인트를 성공시켰습니다. 세계 정상의 선수와 미래의 주역이 함께 포인트를 만들어낸 이 장면은 현대카드 슈퍼매치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최고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기술’과 ‘무대’,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따뜻한 제스처가 한 장면으로 이어졌으니까요.
경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슈퍼매치를 더욱 슈퍼매치답게 만든 건 무대의 디테일이었습니다. 시작 전 코인 토스, 끝난 뒤 시상식, 관중의 호흡이 달라지는 조명과 사운드 등 스포츠가 스포츠로만 머물지 않고, 하나의 문화 이벤트로 완성되는 방식이 분명했습니다.
이날 경기 시작 전 서브 순서를 정하는 코인 토스는 그룹 엑소의 세훈이 맡았고, 경기가 끝난 뒤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제10호) 전수자인 김종민 장인이 만든 트로피가 두 선수에게 수여됐습니다. 글로벌 스포츠인 테니스가 한국의 감각과 만나는 순간이었죠.
관중석에는 테니스를 사랑하는 정치와 문화, 스포츠, 예술 분야의 익숙한 얼굴도 눈에 띄었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왔느냐’보다, 그 자리가 실제로 ‘함께 보는 자리’가 됐다는 점입니다. 슈퍼매치는 결국 관객이 완성하는 이벤트니까요.
“중간중간에 멋있는 샷도 보여주고 장난도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5대5로 팽팽한 상황에서는 아주 진지한 경기 모습이었죠. 경기장이 큰데도 꽉 찼어요. 최고의 선수들이 와서 그런 것이죠. 테니스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을 겁니다.”(한국 테니스 레전드 이형택)
시너와 알카라스가 남기고 간 흔적은 단순하지만 강렬합니다. 세계 최고를 가까이에서 보는 경험. 그 경험이 생기면 사람들은 더 자주 테니스를 이야기하고, 더 자주 라켓을 잡으며, 자연스럽게 ‘다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에는 2005년부터 14회에 걸쳐 슈퍼매치를 이어온 현대카드의 철학이 있습니다.
현대카드 슈퍼매치는 테니스로 시작해 피겨스케이팅과 스노보드, 댄스스포츠와 골프까지 무대를 넓히며, 스포츠를 문화의 언어로 확장해 온 프로젝트였습니다. 종목이 달라도 ‘최고의 대결을 한국에서’라는 기획 기준을 꾸준히 지켜온 결과, 슈퍼매치는 단발성 흥행이 아니라 시리즈가 됐습니다. 한 경기의 열기를 문화적 기억으로 남기는 방식도 함께 완성됐죠. 슈퍼매치 14는 지금까지 이어온 슈퍼매치 위에서, 한국의 1월에 오래 남을 테니스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