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단순한 소모품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차에 과도한 애정을 쏟는 건 좀 이상한 일일 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남자는 그랬다. 하지만 그 차를 팔던 순간, 오래 살던 집에서 이사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차를 팔았다. 5년 만이었다. 처음 2주는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지나보니 어느새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데 적응됐다. 날이 풀리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생각이다. 물론 택시도 타지만 그래도 두 달 전에 비해서는 많이 걷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차를 처음 샀을 때의 기분이 종종 떠오른다. 내게 자동차는 친구나 애인보다는 내 방 같았기 때문이다.
5년 전에 차를 샀다. 어머님이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계모임에 월급의 절반을 때려 박은 지 2년 만에 꽤 큰 목돈이 모였다. 딱히 목적이 없던 돈이어서(명목상으로는 결혼자금이었지만) 통장에 입금된 여덟 자리 숫자를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가족용 차를 사기로 했다. 친척들은 ‘너도 서른이 넘었으니 차가 있을 때가 됐다’고도 말했다. 승용차보다 SUV가 좋겠다는 조언도 얻었다. 그래서 야심차게 2008년형 뉴 스포티지를 구입했지만, 운전은 마음보다 서툴렀다. 차를 인수받은 첫날 호기롭게 몰고 나갔다가 친구 집 주차장에 주차하면서 리어램프를 깨먹었다. 당장 40만원이 날아갔다. 그 뒤로 한 달 정도는 자동차 수난기였다. 범퍼가 깨지고, 차체가 긁히고, 백미러가 쪼개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상하거나 성질이 나지 않았다. 차가 뭐라고. ‘자동차는 소모품이야, 차에 과도하게 애정을 담고 애지중지하는 건 좀 이상해’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정비소에서 ‘차 관리 잘하셨는데요.’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차를 팔던 날에도 그랬다. 아는 딜러 형은 차를 둘러보고선 ‘차 잘 탔네’ 말해줬다. 그제야 이 차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떠올랐다.
기억나는 순간이 몇 개 있다. 첫 장거리 여행은 차를 산 지 3개월 만이었다. 휴가를 내고 무작정 강원도로 달렸다. 그저 운전을 하고 싶었다. 첫 날엔 10시간을 운전했다.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할 수 있는 강원도 고성에서 1박을 했다. 다음 날은 6시간을 달렸다. 7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며 중간 중간 바다를 보고 6월의 따스한 볕을 쬐었다. 다음 날엔 7시간이었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몇 달 뒤 회사를 그만뒀다. 그 후로 차는 내 휴게실이자 안락한 침대가 되었다. 카페에서 밤새 일하는 날이면 뒷좌석에서 담요를 덮고 잠이 들었다.
홍대에서 강남으로, 강남에서 분당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미팅을 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다. 새벽에 일이 끝나면 한강둔치에 들어가 오전까지 잠을 잤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차에서 정말 잠을 잘 잤다. 그러다가 기분이 동하면 그대로 훌쩍 멀리 떠났다. 춘천으로 갔던 때는 막상 갈 곳이 없어 전역한 부대 앞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기도 했다(그래도 돌아올 때는 괜히 먼 길을 돌아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던 새벽에는 그대로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가기도 했다. 경포대에 뜨는 해를 보며 잠들었다가 일어나 해수욕장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서울로 돌아오기도 했다. 경주에서는 싣고 간 자전거를 하루 종일 타고 다녔다. 언젠가 배에 차를 싣고 제주도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진 못했다. 차를 팔던 날, 오래 살던 집을 이사하는 마음으로 담배를 피웠다. 트렁크의 짐을 정리하면서 괜히 쓸쓸했다. 차는 소모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물건이자 장소였다.
첫 차가 생긴다는 건 분명히 어떤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말해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차를 파는 것 역시 그럴 것이다. 차를 팔고 나서는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요컨대 운전을 하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동네의 골목길이라든가, 지하철에서 읽는 만화책이라든가, 거리의 소음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다시 예전처럼 예민해진 것 같다. 글을 쓰고, 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일인 사람에게는 이런 감각이 특히 중요하니까. 그럼에도 곧 새로운 차를 구입하게 될 것이다. 그때 어떤 차를 선택하게 될 지, 그 차가 어떤 의미로 새겨질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미래의 내가 만나게 될 차는 안락한 방이라는 느낌보다 넓은 거실 같은 느낌이면 좋겠다. 그때의 차는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겠지.
글. 차우진
1999년부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며 음악평론가로 활동했다. '딩고'로 알려진 메이크어스의 이사였으며, 현재는 테이크원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주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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