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스포츠카만 보면 열광하는 걸까요?
그건 모든 남자가 제 속에 소년을 감춰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갖고 싶다.’
지나가는, 주차되어 있는, 혹은 쇼룸에 전시된 스포츠카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중얼거립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한 번은 가져봐야 할 텐데’ 하는 초조한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이제는 명색이 자동차 칼럼니스트라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자괴감이 듭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번에는 얼굴에 미소가 지나갑니다. ‘나 아직 젊구나.’ 그리고 길을 재촉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신이 살짝 나간 사람으로 오해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멀쩡하게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멈추곤 짧은 시간에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이. 저의 이런 모습에 이미 이골이 난 아내는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곤 합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미소와 함께 돌아온 아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 큰 아들, 장난감에서 정신 차리고 돌아왔네?’
그렇군요. 이래서 자동차를 어른들의 장난감이라고 하는 것이었군요. 어린 아이들은 장난감을 보며 본능적으로 초인적 집중력(!)을 발현시켜 새로운 세계에서 즐거움을 흠뻑 느끼곤 하죠. 때문에 본의 아니게 부모가 부르는 것을 무시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와 똑 같은 반응이 남자가 스포츠카를 보는 순간 일어납니다. 아내가 저를 ‘우리집 큰아들’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 남자들은 스포츠카에 푹 빠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머리부터 가슴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이성적이지만 오히려 유치할 수도 있는 이유, 바로 ‘숫자’입니다. 스포츠카는 강력한 파워와 스피드가 생명입니다. 즉, 내 차는 몇 마력이고 최고 속도는 시속 몇 킬로미터까지 나간다는 숫자싸움은 가장 원초적이지만 모든 것에서 힘을 자랑하고 싶은 남자의 마초적 특성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친구들과 재미로 시작한 팔씨름이 나중에는 살벌해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겠지요.
이보다 좀 더 어른스러운 스포츠카의 성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리한 조종 성능입니다. 사실 500마력 이상, 제로백 4초 전후의 세단이 심심치 않게 존재하는 오늘날 날카로운 조종 성능이야말로 스포츠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체불가의 퍼포먼스 영역입니다. 파워가 주는 맹렬한 가속과 현기증 나는 초고속 주행이 찰나의 쾌감이라면, 손끝과 엉덩이를 통하여 전달되는 노면과 타이어의 감각은 위험과 절제 사이를 내 손으로 주무르는 통제권, 즉 권력의 맛을 원초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나 스포츠카의 매력은 역시 감성입니다.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스포츠카의 첫 번째 요소는 두말할 것도 없이 디자인일 것입니다. 세단이 사회적 규범이나 통념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회적 도구라고 한다면, 스포츠카는 개인의 쾌감과 감정 분출을 위한 개인적 도구라고 여겨지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스포츠카의 디자인은 매우 감각적이고 감성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브랜드의 감성이 듬뿍 담긴 디자인이 개인의 취향과 어울린다면 그는 바로 그 브랜드의 고객이, 그것도 아주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됩니다. 감성의 연결 고리는 이성적 판단보다 훨씬 흡인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내 스포츠카의 살결을 바라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온다면 과장일까요?
그리고 또 한가지 스포츠카에서 빠뜨릴 수 없는 감성적 요소는 바로 사운드입니다. 비록 요즘은 환경 규제가 엄격해지고 터보 엔진이 흔해져 예전만은 못하다고 해도 가슴을 울리는 사운드를 마지막까지 지켜낼 자동차는 바로 스포츠카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내 가슴을 두 방망이 치게 하는 데에는 속도계의 바늘보다도 배기 사운드가 훨씬 효과적입니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스포츠카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우왕!’하는 배기음 한 방에 시름이 날아가고 가슴이 쫙 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스포츠카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스포츠카는 나를 젊어지게 합니다. 아직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젊음은 가꾸지 않아도 아름답고 노력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년 이상의 남자들은 자신의 몸이 점차 스러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감을 잃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명품에 관심을 두고 운동에 열중하는 것이겠지요. 스포츠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카는 중년 남성에게는 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 슈트처럼 내 정서와 파워를 부스트해주는 도구입니다. 물론 부수적인 효과로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행복해하기도 합니다만.
복잡하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솔직해지고 싶네요. 스포츠카는 가슴으로 타는 물건입니다. 어렸을 적 장난감 앞에서 울며 떼를 쓰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내에게 조르면 사줄까요? 아 참, 저는 아내의 큰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스포츠카를 사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참 좋겠습니다만. 오늘도 저는 꿈을 꾸러 갑니다. 혼자서요.
글. 나윤석
필자는 아우디 브랜드 매니저, 폭스바겐 코리아의 프로덕트 마케팅 팀장, 폭스바겐 본사 매니저, 페라리 총괄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프리랜서 자동차 칼럼니스트 및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뉴스 미디어, HMG 저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