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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Sep 01. 2020

현대자동차가 WRC 참가를 통해 내재화 한 섀시 기술

눈부신 섀시 개선의 비결인 WRC 기술 내재화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좋은 자동차의 조건은 다양하다. 멋진 디자인, 다양한 편의 사양, 안락한 실내 등 한두 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 있다. 바로 뛰어난 주행 성능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행 성능의 기준은 여러 가지로 나뉜다.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멈춰야 하며 승차감도 좋아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걸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출시되는 현대자동차의 모델을 보면 이런 여러 조건을 상당 부분 충족한다. 전세계 여러 평가 기관과 언론 매체가 현대차에 주목하는 이유다.

사실, 10여 년 전의 현대차에서는 이 정도까지의 반응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현대차의 WRC 참가다. 지난 두 편의 WRC 기술 내재화 콘텐츠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현대차가 WRC 복귀 이후 만들어진 양산차에는 다양한 모터스포츠 기술과 노하우가 반영돼 있다. 그 중에는 섀시와 관련된 내재화도 포함돼 있고, 이는 민첩한 주행 성능과 매끈한 승차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WRC 경주차의 기술 내재화, 현대자동차의 완성도를 높이다> 바로 가기

<경주차와 양산차를 개발하는 남양연구소 중역에게 들은 현대차의 WRC 참가 이유> 바로 가기



정진호 책임연구원은 양산차를 바탕으로 개발되는 WRC 경주차를 설계한 경험이 고성능 양산차의 섀시 성능 향상에 기반이 됐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결과의 배경에는 WRC 경주차를 개발하고, 동시에 그 기술과 노하우를 양산차에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연구원들이 있다. 그 연구원 중 한 명인 샤시통합컨셉설계팀 정진호 책임연구원을 만나 WRC 경주차 섀시 기술의 양산차 내재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외형이나 섀시 구조를 보면, WRC 경주차와 현대차의 고성능 N 모델은 비슷하다.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가장 먼저 알아둬야 할 점은 WRC가 다른 모터스포츠에 비해 제약이 많다는 사실이다. 양산차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르고, 개조할 수 있는 범위도 제한적이다. 가령 국제 자동차 연맹(FIA)은 WRC 경주차의 서스펜션 타입과 휠베이스, 전장, 차체의 양산차 대비 변경 범위를 제한하고 있으며, 섀시 마운트 지점 또한 양산차 기준 20mm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WRC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경주차의 바탕이 되는 양산차의 기본 제원 및 구조가 좋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에는 알 수 없던 것들을 깨달았다. 양산차를 바탕으로 경주차를 설계하던 중 양산차의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다음 세대 양산차를 개발할 때 이런 부분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도 알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경주차의 성능을 높일 수 있다는 것까지 깨달았다. 정리하자면 기존 WRC 경주차에서 발생한 피드백을 차세대 양산차에 반영한 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WRC 경주차를 만든 것이다. 경주차의 바탕이 되는 양산차의 기본기가 좋지 않으면 성능이 뛰어난 경주차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고성능 N 모델 역시 기본 양산차의 파생모델이기 때문에, 양산차를 바탕으로 개선 및 개발이 진행된다. 즉, 1세대 N 모델 개발 경험과 기술을 기본차 설계 부문에 공유해 차기 기본차에 반영하고, 더욱 우수한 기본기를 갖춘 양산차로부터 2세대 N 모델을 개발하는 선순환 과정이 이뤄지도록 관련 부문과 협업하고 있다.



기본기가 뛰어난 각 세대별 i20는 i20 WRC 경주차의 초석이 된 동시에 성능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Q. 내재화 과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례를 알고 싶다.


2016년, 신형 i20 WRC 랠리카가 등장할 때의 과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초기 i20 쿠페 WRC 랠리카에서 얻은 다양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2세대 i20 양산차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신형 i20 WRC 랠리카를 제작했다. 때문에 1세대 i20 쿠페 WRC 경주차와 2세대 i20 WRC 경주차의 성능 차이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드라이버들이 그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2014년 WRC에 복귀하며 경주차를 개발할 땐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경험과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주차를 계속 개발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그 과정에서 내구성 및 강성과 관련한 섀시 내재화 기술을 가장 많이 획득할 수 있었다.



Q. 답변처럼 탄탄한 주행 성능을 얻기 위해서는 섀시의 강성이 좋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WRC 기술이 내재화된 사례가 있을까?


휠/타이어와 구동축이 연결되는 부분인 액슬의 강성을 강화할 때 WRC 경주차를 만든 경험과 기술이 큰 도움이 됐다. 섀시의 여러 부분 중 액슬의 강성만 강화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액슬의 강성 강화만으로도 주행 성능이 크게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차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고성능차의 액슬 제원 설정 단계부터 체결 구조, 형상 설계 단계까지 강성 확보를 위한 설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서킷에서의 강한 횡력을 충분히 버틸수 있을 만큼 섀시 강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었다. R&H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서스펜션 키네마틱 특성을 설정할 수 있도록, WRC 경주차에 적용 중인 지오메트리 가변 너클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



Q. 액슬 기술과 관련해 또 다른 WRC 기술 내재화 사례는 없을까?


지난해 1월 세계 최초로 개발한 ‘통합형 드라이브 액슬(Integrated Drive Axle, IDA)’이 있다. 이 기술은 엔진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드라이브샤프트와 휠 베어링을 하나로 통합한 것으로, i20 쿠페 WRC 경주차에 적용되고 있다. 현재 이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 중에 있으며, 차세대 고성능 모델에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WRC 경주차의 강력한 액슬 강성과 직결감을 높여주는 마운트 기술이 고성능 양산차에 적용되고 있다


Q. 액슬 강성 강화 외에도 다른 부분에서의 WRC 기술 내재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성능 N 모델은 반응 속도와 직결감 향상을 위해 파워트레인과 섀시가 차체에 연결되는 각 부분의 강성을 강화했다. WRC 경주차는 파워트레인, 섀시, 차체가 연결되는 모든 부분을 솔리드 마운트 또는 볼조인트로 체결한다. 가속, 감속, 스티어링 조작 시 운전자가 원하는 시점에 즉각 반응하는 성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본형 i30나 벨로스터는 각 연결부에 고무 재질의 부시 마운트를 적용한다. 충격 완화나 진동 절연 등 승차감 확보에 더욱 비중을 두어 차를 개발하기 때문이다. 고성능 N 모델은 고무 부싱 강화 및 솔리드 마운트 타입을 성능 효과가 가장 큰 부위에 각각 선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승차감과 주행진동 특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조종성과 직결감을 확보했다.



고성능 양산차의 브레이크 기술은 WRC의 기술을 그대로 내재화하지 않는다


Q. 제동과 관련해서는 기술 내재화가 없을까? WRC 경주차의 강력한 브레이크를 생각하면 내재화가 이뤄졌을 것 같다.

브레이크와 관련된 기술 내재화는 제동 시스템 자체 보다는 냉각 쪽 기술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우선 WRC 경주차는 제동 성능을 높이기 위해 고마찰계수를 지닌 브레이크 패드나 디스크를 사용한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i30 N과 벨로스터 N도 브레이크 디스크 사이즈를 키우고 패드의 마찰력도 강화했다. 그러나 경주차의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았다. 양산차에는 그 정도의 성능이 필요하지 않고 구매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합리적인 가격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고성능 양산차는 다른 기술의 내재화로 제동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다. 바로 ‘냉각 덕트’와 ‘에어 가이드’로 브레이크를 냉각시키는 방식이다.

WRC 경주차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기술로는 ‘프리 필(Pre-Fill)’이라는 브레이크 제어 기술도 있다. 이 기술은 경주차의 빠른 가감속과 가혹한 제동이 고성능 양산차에도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제동 성능이 한계까지 다다르는 서킷 주행 등에서 브레이크 패드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패드 인식 센서’ 또한 경기마다 패드를 교체하는 WRC 경주차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기술이다.



WRC 경주차의 댐퍼나 스프링을 양산차로 가져올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진다


Q. 일반적으로 경주차의 서스펜션 기술 내재화라고 하면 댐퍼나 스프링 쪽을 생각하기 쉽다. 관련 부품에서의 기술 내재화는 없을까?


댐퍼와 스프링 기술 쪽에서의 기술은 당장 적용하기 보다는, 양산차에 적용하기에 적합한 구조와 성능 대비 중량 또는 가격을 고려해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켜 가고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WRC 기술이 가장 많이 내재화된 i30 N과 벨로스터 N 같은 고성능 양산차는 C세그먼트 해치백이다. 이 급의 자동차에서 WRC 경주차의 고성능 댐퍼와 스프링을 거의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한 마디로 ‘오버 스펙’이다. 앞서 언급한 액슬의 강성 강화 만으로도 충분히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경주차 스펙의 댐퍼와 스프링을 더하면 주행 성능이 훨씬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크게 상승한다. 댐퍼와 스프링 기술 내재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모터스포츠 기술이 내재화된 고성능차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해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WRC 기술이 내재화된 고성능 양산차의 사례


정진호 책임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WRC 기술의 내재화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1. 고성능 양산차의 통합형 드라이브 액슬(IDA)


IDA는 드라이브샤프트와 베어링을 하나로 통합해 강성을 키우고 무게를 줄였다


IDA(Integrated Drive Axle)는 엔진에서 나온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드라이브샤프트와 이를 바퀴에 연결하는 휠 베어링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이 기술을 개발하기 전까지 모든 자동차는 드라이브샤프트와 휠 베어링을 마치 볼트와 너트처럼 연결해 바퀴에 동력을 전달했다. 이는 구조적으로 동력 손실이 발생하고 강성이 약하며, 부품 수가 많아 무겁다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IDA는 부품 통합으로 인해 기존에 비해 강성이 약 59% 향상되고 무게가 약 10% 줄었다. 또한 부품 제작 시 생기는 불량률 역시 크게 감소했다.



2. WRC 경주차에서 비롯된 고성능 양산차의 제동 기술


고성능 N 모델에는 브레이크의 냉각 성능을 높이기 위해 냉각 덕트(i30 N)와 에어 가이드(벨로스터 N)가 적용된다


냉각 덕트는 프론트 범퍼의 흡기구부터 브레이크가 위치한 휠 아치 안쪽까지 이어진 공기 통로다. 주행 중 차량 전면에 닿는 찬 공기가 뜨거운 브레이크로 곧바로 유입되기 때문에 냉각 효율이 극대화된다. 에어 가이드 역시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원리와 효과는 냉각 덕트와 다르지 않다. 냉각 덕트와 에어 가이드를 적용하면 브레이크 디스크를 약 30mm 확대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별다른 튜닝 없이도 장시간 서킷 주행이 가능한 내구성도 확보된다.



프리 필 기능이 적용하면 운전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 제동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


프리 필은 가혹한 서킷 주행 시 시스템이 운전자의 브레이크 작동 여부를 사전에 감지하고 유압을 미리 채워 제동 성능과 반응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WRC 경주차에 적용된 기술은 아니지만, 고성능 양산차에서도 WRC 경주차처럼 빠른 가감속 상황이 반복될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개발한 것이다. 해당 기능은 추후 등장할 고성능 양산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향후 등장할 고성능 N 모델은 브레이크 패드 인식 센서를 장착해 우수한 제동 성능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곧 데뷔할 i20 N에는 브레이크 패드 인식 센서가 들어간다. 브레이크 패드 인식 센서는 가혹한 주행 환경 탓에 매 경기마다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하는 WRC 경주차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기술이다. 고성능 양산차의 인식 센서는 브레이크 패드가 4mm 남았을 때 운전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며, 남은 패드로 현재 주행 중인 서킷을 몇 바퀴 더 달릴 수 있는지 여부까지 알려준다. 덕분에 운전자는 패드가 완전히 마모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우수한 제동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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