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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Dec 21. 2020

또 하나의 현대차 챔피언 랠리카, i20 R5

현대차는 i20 R5 랠리카를 제작하며 커스터머 레이싱에도 활약 중이다.


WRC 최종전 몬자 랠리에서 현대자동차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이 더블 포디엄으로 2년 연속 제조사 부문 챔피언에 올랐다. 그런데 몬자에는 현대차가 만든 또 한 대의 챔피언 랠리카가 있었다. 바로 WRC3 클래스의 야리 후투넨이 탄 i20 R5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WRC3에는 제조사 부문 챔피언이 없고, 드라이버 챔피언만 선정한다. 하지만 현대차의 i20 R5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WRC와 함께 WRC3에서도 현대차의 랠리카가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현대차가 WRC 제조사 팀 운영 활동을 비롯해 WRC에서 축적한 기술을 고스란히 담아낸 판매용 랠리카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대차의 i20 R5를 선택한 수많은 프라이빗팀들은 다양한 지역 랠리 대회에서 빛나는 성적을 거둬 왔다.


*커스터머 레이싱(Customer Racing) : 자동차 제조사가 직접 특정 대회의 규정에 맞는 경주차를 제작해 참가를 희망하는 레이싱팀(혹은 개인)에게 판매하는 방식 또는 사업




i20 R5, 프라이빗팀을 위한 판매용 랠리카


i20 R5는 현대차가 개발해 여러 팀에게 판매하는 경주차다


커스터머 레이싱이란 쉽게 말해 판매용 경주차를 쓰는 레이싱을 의미한다. 모터스포츠 세계는 자동차 제조사에 소속돼 회사의 기술적 백업을 받는 ‘워크스팀’이 가장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팀, 즉 프라이빗팀이 대다수를 이룬다. 이들은 경주차를 직접 개발할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경주차를 구입해 사용한다. 이런 수요를 위해 자동차 제조사들은 커스터머 레이싱 담당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포르쉐, 페라리, 아우디, 메르세데스-AMG 같은 고성능차 제조사는 물론 현대차를 포함해 토요타, 르노, 푸조 같은 대중차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i20를 기반으로 i20 쿠페 WRC 랠리카와 i20 R5 랠리카를 개발해 전세계 랠리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현대차는 2012년 독일 알제나우에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을 설립하고 i20를 바탕으로 한 신형 랠리카를 직접 개발하며 WRC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커스터머 레이싱 부문을 설립해 판매용 레이싱카 개발에도 나선 것이다. 2015년 공개된 i20 R5는 WRC2와 WRC3 그리고 다양한 국가별 랠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차로, i20 쿠페 WRC 랠리카에서 얻은 노하우를 투입했다. 아울러 서킷 투어링 레이스를 위한 i30 N TCR도 개발해 WTCR에서 월드 챔피언을 차지했다.




WRC2와 WRC3에서 맹활약하는 i20 R5


현대차의 i20 R5 랠리카는 WRC의 하위 무대인 WRC2와 WRC3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강력한 팀과 뛰어난 드라이버라면 최정상 클래스에서 월드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하겠지만 모든 팀과 드라이버의 상황이 그와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은 프라이빗팀이라도 규모와 실력이 제 각각이고,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하는 어린 드라이버나 경쟁에서 밀린 프로 드라이버 혹은 도전에만 의의를 두는 아마추어 참가자도 있다. 세분화된 클래스가 필요한 이유다.


서킷용 1인승 경주차 포뮬러가 카트부터 포뮬러 주니어, F3, F2, F1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것처럼 랠리는 크게 6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현대팀이 2년 연속 제조사 부분 챔피언을 차지한 WRC는 최상위 클래스인 월드랠리카이며, RC1 카테고리에 해당한다.



랠리는 최상위 클래스인 WRC 외에도 WRC2, WRC3 등에 참가하는 R5 등 여러 등급이 존재한다


RC2 카테고리에는 R5와 R4 클래스가 포함되며 월드랠리카 바로 아래 위치한다. 이 중 WRC 입성을 앞둔 예비 드라이버나 상위 클래스에 재도전하는 프로 드라이버들이 참전하는 WRC2와 WRC3에 참가하는 팀들이 R5 랠리카를 쓴다. WRC보다 등급이 낮다고는 하나 지역 챔피언십에서는 최고 클래스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 역할을 앞바퀴굴림 경주차를 쓰는 슈퍼2000 클래스가 담당했지만, 2012년 FIA에서 도입한 R5 카테고리는 월드랠리카의 간략화 버전에 가깝다.



R5 랠리카는 월드랠리카보다 좀 더 낮은 성능에, 프라이빗팀이 운용하기 쉬운 유지보수 비용을 제공한다


R5 랠리카는 경주차 규정에 있어 월드랠리카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32mm 에어 리스트릭터(엔진 흡기량을 조절하는 판)가 달린 1.6ℓ 터보 엔진과 5단 시퀸셜 변속기를 사용하며, 네바퀴를 굴린다. 최저중량은 월드랠리카 클래스와 동일한 1,230kg이다. 대신 출력이 월드랠리카 대비 90마력가량 낮고 전자식 디퍼렌셜, 공력 파츠 등 구조도 간소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5 랠리카는 상당히 강력한 랠리 머신이다. 워크스팀에 비해 인력이나 예산이 빠듯한 프라이빗팀이 사용하는 만큼 유지보수 비용도 매우 중요하다. 워크스팀이라면 이기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도 마다하지 않겠지만 프라이빗팀은 경주차의 가격과 운용성 등 보다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RC2 카테고리 아래에는 R3T, R3C, R3D 클래스 같은 RC3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주니어 WRC에서 사용하는 앞바퀴굴림 랠리카는 RC4 카테고리에 해당된다. 또한, 엔진 배기량 1.0ℓ 급의 소형차를 바탕으로 하는 RC5 카테고리, 타막 전용 시리즈에 쓰이는 R-GT 카테고리가 있다.




공개 후 꾸준한 성능 개선을 거친 i20 R5


i20 R5는 2015년 공개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승전보를 전하고 있다


2015년 처음 공개된 i20 R5는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한 테스트를 거친 후 2016년 투르 드 코르스(프랑스 랠리)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016년 9월 첫 번째 생산 분이 이탈리아 고객에게 인도된 이후에는 수많은 프라이빗팀에 공급됐다. 2016년 프랑스 내셔널 랠리 챔피언십 최종전 우승을 시작으로 i20 R5는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등 세계 곳곳에서 승전보를 전했다.


최고 수준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성능 개량도 필수다. 현대차는 2018년에 가변밸브 타이밍 기구를 투입하고 댐퍼와 디퍼렌셜을 개선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시모네 템페스티니가 루마니아에서, 야리 후투넨이 폴란드에서, 그리고 루크 터크가 슬로베니아에서 i20 R5를 몰고 내셔널 챔피언에 올랐다. 클래스 최강인 스코다 파비아, 포드 피에스타 R5, 시트로엥 C3 R5 등과 싸워 거둔 값진 승리다.



2020 시즌 전투력을 더욱 높인 i20 R5는 야리 후투넨의 WRC3 챔피언 등극에 큰 도움을 줬다


2020년형의 경우 신형 댐퍼와 스티어링 시스템을 투입하는 한편, 새로운 엔진 실린더와 라이너를 사용해 최고출력을 290마력, 최대토크를 440Nm로 높였다. 올해 슬로베니아에서 루크 터크가 i20 R5를 타고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 야리 후투넨은 폴란드 랠리 챔피언이 되었다. 후투넨은 WRC 최종전 몬자에서 WRC3 챔피언에도 올랐다.




WRC의 미래 드라이버를 육성하는 현대차


2020 시즌 WRC3 드라이버 챔피언을 차지한 야리 후투넨은 현대차가 HMDP로 키워낸 인재다


하위 클래스의 역할 중에는 드라이버 육성이라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시즌 WRC3 챔피언에 오른 야리 후투넨은 현대 모터스포츠의 드라이버 개발 프로그램(HMDP, Hyundai Motorsport Driver development Program)의 산물이다. 자동차 제조사의 모터스포츠 조직은 프라이빗팀에 비해 풍부하고도 다양한 경험과 심도 깊은 지원을 제공한다. 이런 과정은 막 성장하는 재능 있는 드라이버에게는 필수적인 자양분이다. 우리가 알 만한 스타 드라이버 대부분도 이런 프로그램의 수혜자들이다. 현대팀을 통해 길러진 드라이버들이 앞으로 WRC 역사에 길이 남을 거목으로 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핀란드 출신의 야리 후투넨은 독일 랠리 챔피언십과 ERC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2017년 9월 프랑스에서 있었던 테스트를 통해 2018년 HMDP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후 후투넨은 현대차 i20 R5를 몰고 WRC2와 WRC3 클래스에 도전해왔고 올 시즌 WRC3 챔피언에 올라 기대에 부응했다.

현대팀은 커스터머 레이싱 주니어 드라이버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말 그대로 가능성을 갖춘, 젊은 새싹들이 대상이다. 올해 초 피에르루이 루베, 올레크리스티앙 베이비, 니콜라스 그리야진, 칼럼 디바인, 그레오와 뮌스터 등 5명이 현대팀의 주니어 드라이버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이들 중 루베는 에스토니아와 터키에서, 그리고 베이비는 몬자에서 월드 랠리카인 i20 쿠페 WRC를 몰고 참전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모터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한 현대차의 노력


현대차의 WRC 2년 연속 제조사 챔피언 등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공을 거둔 R5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듯, 빛나는 메인 리그 뒤에는 수많은 하위 리그가 존대한다. 커스터머 레이싱 역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모터스포츠의 저변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분야다. 다수의 프라이빗팀이 경주차를 구입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미지 개선과 홍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고성능 이미지를 원하는 제조사라면 경주차 개발과 지원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다수 자동차 제조사들은 메인 리그에만 참가하고 있다. 현대차처럼 WRC에 참가하면서 R5 랠리카를 만들며 커스터머 레이싱에 집중하는 곳은 없다. 때문에 WRC 드라이버 챔피언을 꿈꾸는 수많은 랠리 유망주들이 현대차의 R5 랠리카를 선택하고 있다. 현대차의 HMDP를 통해 2020 시즌 WRC3 드라이버 챔피언에 오른 야리 후투넨이 좋은 예다. 또한 잘 알려진 것처럼 현대차는 랠리 뿐만 아니라 전세계 서킷을 무대로 하는 TCR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현대차의 i30 N TCR 경주차를 사용해 챔피언에 오른 드라이버가 매 시즌 배출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현대차 N 브랜드의 성능이 좋아지고, 로고와 컬러가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레이싱에서의 성공 덕분이다


이처럼 랠리와 서킷 레이싱에서 현대차가 개발한 경주차의 활약이 높아지자 수많은 프라이빗팀이 현대차의 경주차를 찾고 있다. 그 결과, 매주 전세계에서 개최되는 레이싱에서 20~30대나 되는 현대차의 경주차가 활약 중이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의 성능이 나날이 훌륭해지고, 로고와 컬러가 더욱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와 같은 레이싱에서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



기존의 i20 R5를 대체하는 i20 N 랠리2에서도 현대차의 성공 역사는 계속될 예정이다


한편, 현대차는 2020년 10월, 현행 i20 R5의 후속 모델인 i20 N 랠리2를 공개했다. WRC는 2022년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금의 월드랠리카를 대신하는 랠리1은 하이브리드 구동계와 함께 표준 부품 확대로 보다 많은 제조사를 끌어들일 예정이다. R5와 R4가 있는 RC2 카테고리는 랠리2로 이름을 바꾼다.

그에 따라 i20 N 랠리2는 1.6ℓ 터보 엔진과 5단 시퀸셜 변속기, 4WD라는 구성은 그대로 둔 채, 대부분의 부품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 월드랠리카에서의 개선점을 적용하고 서스펜션 구성과 댐퍼를 바꿔 핸들링 특성을 바꿔야하는 것이다. 현대차 월드랠리팀는 현재 오트 타낙을 투입해 광범위한 테스트를 진행하며 랠리2 경주차의 완성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밝혀진 i20 N 랠리2의 테스트 결과는 i20 R5보다 훌륭하며 성능 역시 더 좋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벌써부터 많은 드라이버들이 i20 N 랠리2를 선택해 새 시즌을 준비 중이다. 지난주인 12월 18일, WRC 챔피언 피터 솔베르그의 아들이자 2020 시즌 WRC3에서 에스토니아 랠리 우승와 몬자 랠리 준우승을 차지한 올리버 솔베르그, 그리고 올레 크리스티안 비에비가 2021시즌 WRC2 챔피언십을 현대차의 i20 N 랠리2와 함께 한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현대차가 여러 WRC 무대에서 거둬온 i20 R5의 훌륭한 모습에 비춰봤을 때, 그 성공적인 역사는 랠리2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글 솜씨 없음을 한탄하면서도 미련을 놓지 못한 것이 벌써 27년이다. <카비전>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자동차생활>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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