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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Nov 15. 2017

나는 왜 해치백을 좋아하는가

연애의 시작은 해치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5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그냥 예뻐서 좋은 여자가 아니라 평생 보듬어줄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 싶은 여자가 생겼습니다. 생애 첫 여자는 아니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내 차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여자기도 했지요. 약속된 것처럼, 그녀를 만나고 석 달쯤 뒤 내 이름으로 등록된 생애 첫 차가 생겼습니다. 클러치 페달과 수동변속 레버가 있는 소형 해치백이었습니다. 다른 후보는 없었습니다. 비싸고 큰 차는 부담스럽고, 평범해 보이는 세단은 성에 차지 않는 청년기. 10년 탈 작정으로 큰맘 먹고 사는 첫차라 경차는 뭔가 아쉬웠죠. 아담하고 암팡진 소형 해치백일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경차보다 조금 더 큰 차였지만 크기에 불만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았죠. 연인과의 거리감이 많이 사라졌거든요. 운전석과 조수석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옆모습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보조석에 앉은 그녀가 재잘대는 목소리는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했죠. 

그녀가 내리고 나면 차와 호흡을 주고 받았습니다. 운전석 등받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뒷바퀴와 범퍼가 있는 차라 운전의 몰입감은 한층 더했습니다.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그녀 집에서 서울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내 집으로 돌아오는 매일 밤, 나와 작은 해치백은 가진 재주를 모두 동원해가며 노면의 불규칙성과 도로의 곡선을 만끽했습니다. 나와 만나 운전면허를 취득한 그녀 역시 다루기 편하고, 유지에 부담 없는 우리의 해치백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지요. 큰 차는 아니었지만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형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넘쳐났습니다. 해치백을 타며 가속도가 붙은 우리 연애는 빠르게 결혼이라는 다음 단계로 달려갔습니다.




결혼 후에도 불편은 없었죠

부부가 됐습니다. 만난 지 4년째 되던 해였어요. 둘만의 보금자리가 생겼고, 세간도 불어났습니다. 두 연인의 데이트 공간이던 해치백은 가족의 이동수단이 됐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안에선 감정을 어루만지는 일보다 감정이 폭발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하지만 거짓말처럼, 폭발한 감정이 장시간 머무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크지 않은 공간에 함께 머물면서 아무런 대화 없이 있는 것만큼 고역인 일이 없었으니까요. 해치백의 콤팩트한 크기에서 비롯하는 특혜는 부부가 된 후에도 변함없었습니다. 

2년 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 밤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연한 두부 같던 아기는 이내 차가 이리저리 흔들려도 끄떡없을 돌멩이처럼 단단해졌습니다. 한 보따리인 아기 짐을 싣는 요령도 늘었습니다. 트렁크에는 유모차처럼 차에서 내렸을 때 쓸 물건만 싣고, 이동 중에 필요한 짐은 차 안 곳곳에 나누어 두었습니다. 운전석 뒷자리엔 베이비시트가 놓였고 아내가 그 옆자리를 차지했어요. 기저귀 가방은 베이비시트가 있는 자리의 바닥에, 그 밖의 소소한 소지품이 담긴 아내의 가방이 아내 대신 보조석에 앉았습니다. 크지 않은 차였지만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른 둘과 아기 하나, 그리고 그 한 명의 아기를 위한 짐으로 외출할 때마다 차 안이 제법 찼지만 뜻밖에도 불편은 적었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나와 아내가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있었고 공간이 남아서 허투루 굴러다니는 일도 없었거든요. 행여나 필요할까 싶어 챙길까 말까 고민스러운 짐은 아예 싣지 않았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여행 짐을 꾸리는 기술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아이는 매일매일 업그레이드되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쑥쑥 성장했습니다. 이와 반비례해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 챙겨야 하는 물건의 가짓수는 줄어갔습니다. 아이가 네 살쯤 됐을 때는 뒷문을 차일드 록(Child Lock) 장치로 단속한 뒤 베이비시트를 보조석 뒷자리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터 나와 아이, 둘만의 드라이브가 잦아졌습니다. 뒤에 앉은 아이는 물 마시고 싶다, 오줌이 마렵다, 장난감이 바닥에 떨어졌다, 등등 수시로 운전 중인 아빠를 찾아댔습니다. 하지만 별 문제 아니었습니다. 소형 해치백 운전석에서는 오른팔만 뒤로 쑥 빼도 아이와 접촉할 수 있었어요. 아이는 찡얼대기보다 흥얼대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할 때 구입한 아담하고 암팡진 해치백은 아이가 놀이터에서 동네 꼬마들과 주먹다짐을 할 나이가 될 때까지 우리 가족과 함께 지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치백을 좋아하냐고요?

아담하고 암팡졌던 해치백은 5년 전쯤 우리 가족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조금 더 큰 해치백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요. 3인 가족이 타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차의 크기가 시대에 따라 점점 커지면서 요즘 출시되는 해치백은 공간의 불편함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뒷좌석 폴딩이 가능한 해치백의 특성 상 더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하죠. 

아내와 나는 다음 차도 해치백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종종 합니다. 해치백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그만큼 깊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종종 물어봅니다. “좀 더 크고 편안한 차가 얼마든지 있는데 왜 해치백만 고집하느냐”고. 제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해치백이 좋으니까요.” 그러니까 해치백이 왜 좋은 거냐고 다시 물어오면…, 배시시 웃고 넘기곤 합니다. 긴 설명이 필요한 이야기거든요. 살짝 겸연쩍은 고백이기도 하고요. 

해치백은 유럽에서 인기가 좋은 차종입니다. 유럽인의 생활상을 해치백처럼 잘 반영한 차종도 드물지요. 그네들의 생활상이 어떠냐 하면 네, 제가 만나본 유럽인들은 매사 이치에 맞는지를 따져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합리(合理)의 사고입니다. 합리에 낭비는 드물지요. 

가만 돌이켜보면 유럽은 풍족함보다 모자람이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곡식, 자원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침략전쟁이 빈번했고 바다 건너 먼 대륙에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유럽의 근현대사 역시 결핍의 역사였습니다. 유럽대륙 한복판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 원인이었지요. 유럽 국가들은 폐허가 된 문명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고, 그 탓에 물자는 항상 부족했습니다. 자동차도 한정된 자원으로 알뜰살뜰 만들어야 했습니다. 버리는 부분이 거의 없는 단순한 디자인, 물자가 적게 드는 작은 차는 자연스럽게 유럽의 상징이 됐습니다. 작고 실용적이며, 낭비할 줄 모르는 해치백은 유럽의 근현대사가 빚어낸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해치백은 아직도 대중적이지 못한 선택일까요? 




해치백 천국인 유럽과는 달리 한국에서 해치백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현대 엑셀, 기아 프라이드 등 역사가 전무한 것도 아닌데 좀처럼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지요. 어려운 시절을 빠르게 떨쳐내고 장기간 고도성장의 단맛에 길들여진 것인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고 기왕이면 큰 걸 선호하는 우리네 생활상에 간소함을 토대로 한 해치백은 좀처럼 쉽게 녹아 들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해치백은 다소 유니크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더욱 한국에 소개되는 해치백들은 운전하는 재미라든가 유럽에서의 명성, 남다른 개성 같은 면면이 강조되곤 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이유들로 해치백을 동경해왔지요. 하지만 중년에 가까운 세대가 되어서도 해치백을 향한 사랑이 식지 않는 걸 보면 ‘동경’은 일부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왜 저는 아직도 해치백을 고집하는 걸까요. 그건 결국 제가 살아온 방식의 문제인 것 같네요. 제가 추구해온 생활상이 유럽식 간소함에 가깝다는 걸 깨달은 건 최근 들어서의 일입니다. 과시보다는 실용성을, 화려함보다는 심플함을 좋아하는 저의 성향은 해치백과 딱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있었죠. 실은 성가신 일을 줄이려고 적게 가지려 애쓰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게 해치백적 라이프스타일의 시작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저의 다음 차도 아마 해치백이 될 것 같군요.







글. 김형준
올해로 만 17년째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에서 일했다. 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이브 클럽>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자동차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냉철한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현재는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의 편집장으로 자동차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기사를 만들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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