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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Nov 30. 2017

스포츠 모드로 운전한다는 것

작은 일탈이 필요한 날이 있죠

오늘은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잘 압니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하는 것, 가끔은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일, 꾹꾹 눌러 담은 스트레스를 그대로 지켜 보면서도 다시 한 번 삼키는 매일매일. 일상이라는 건 늘 그래야 하는 건가 싶습니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딘지 죄여오는 기분을 떨치기 힘든 밤을 만나기도 합니다. 아주 미세하게 답답하고, 가끔은 여기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다 같이 버티고 있는데도.

이런 기분이 갑자기 덮쳐온 날, 자동차는 아주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공간은 또 없을 테니까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 차의 운전석이야말로 완벽한 개별성이 보장된 공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집에 올라가기 전에 주차장에서 한 30분 정도 앉아 있어.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도 하고, 저장해 놓은 드라마 한 편을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차 안에 조금 더 앉아있을 때가 있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 보니까, 차 안에서 보내는 그런 시간이 꽤 위안이 되거든.” 집에 올라가면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식들이 있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거죠. 그러기에는 내 자동차만큼 안락한 공간도 없으니까요.




가끔은 집을 지나쳐 달리기도 합니다. 시간?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넉넉하게 30분 정도 잡고 한 번 달려보자 했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어떤 곳에 혼자서 마음으로만 정해놓은 드라이브 코스 하나 정도는 있지 않으세요? 없다면 지금부터 동네를 한 번 천천히 둘러보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을 잠시 지나치면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산길을 만날 수도 있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좌회전 하면 쭉 뻗은 직선 도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소월길이나 북악스카이웨이 같은 산길이나 올림픽 대로 같이 유명한 길이 아니면 또 어때요? 어딘가의 2차선 도로에 나만 아는 멋진 코너를 정해 놓을 수도 있고, 밤 11시 이후로는 인적이 드물어서 한적한 공터 하나를 정해 놓을 수도 있을 거예요. 꽉 막힌 숨통은 이렇게 트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가끔 ‘일상의 개인화’라는 단어에 대해 혼자 생각해요.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분을 마음 속에 하나 남겨놓는 겁니다. 늘 가던 길을 살짝 벗어나는 것도 그런 개인화의 일환이에요.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여기에 운전 스타일까지 개인화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더 달려 보기로 결심한 그날 밤, 운전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살짝 바꾸는 겁니다. 평소에도 스포츠 모드를 자주 써왔다면, 오늘 밤은 조금 더 다른 감각으로 집중해보는 거예요. 혹시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라는 말조차 너무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나요? 버튼을 누를 때마다 에코, 노멀, 스포츠 모드로 차의 성격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나요? 조금이라도 연비를 아끼고 싶어서 에코 모드에 고정한 채 오로지 출퇴근용으로만 달린 지는 얼마나 됐나요?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왠지 의미 없게 느껴져서 노멀 모드로만 달렸나요?

스포츠 카도 아닌데, 스포츠 모드로 달려봐야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어요. 스포츠 모드라는 기능 자체가 어쩌면 아주 단단한 판타지 속에 있어 왔으니까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도달하는 데 3~4초밖에 안 걸린다는 어떤 스포츠 카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배기음이 폭력적으로 바뀌는 쾌감을 누리는 장면 같은 거 말예요. 스티어링 휠을 어떻게 꺾어서 가속 페달을 꾹 밟아주면 뒷바퀴가 ‘살랑’ 하고 미끄러지는 것 같은 순간의 느낌, 짜릿할 수 있죠. 세상에는 그런 세계를 지향하는 자동차도 당연히 있습니다. 만약 오늘밤, 일상에 지칠 대로 지친 당신이 마침 이런 성격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면 분명히 조금 더 신나게 달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마냥 얌전하고 성실해 보이는 세단에도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는 있습니다. 스포츠 모드도 당연히 있죠. 잊고 있었다면 한 번 눌러보세요. 아, 누르기 전에 내 자동차와 대화를 나눌 마음의 준비부터 해주세요. 거창한 게 아니에요. 그저 오늘 밤에는 조금 다른 상대와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정도로도 좋아요. 그러면 생각보다 사소하지만 많은 것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할 겁니다.




내 차가 뭔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나요? 

일단 RPM, 엔진 회전수 계기판의 바늘이 살짝 흥분하는 순간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거예요.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눈을 RPM 계기판에 고정하세요. 평소와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내 차의 엔진이 평소보다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한 걸 알 수 있나요? 엔진이 긴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럴 때 “자동차가 예민해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 상태로 가속 페달을 밟으면 평소와 좀 다른 감각으로 뛰쳐 나갈 거예요. 조금 더 기민하고, 마침 피부에 소름이 돋았는데 누가 손을 댄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앗!’하고, 조금 놀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엔진 회전수가 달라졌다면 다음은 청각에 집중해보세요. 엔진음과 배기음이 아주 조금은 달라졌을 겁니다. 작정하고 으르렁거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마침 당신의 차가 아주 침착한 세단이라면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분명히 평소와는 다른 소리를 낼 겁니다. 서서히 분노하는 마음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몸의 열기를 높여 놓으려는 단거리 선수처럼요.




다소나마 달라진 소리를 감지했다면, 이젠 가속 페달을 밟은 깊이와 정도에 따라 소리를 달리 하는 내 차를 느껴보세요. 어때요? 내 움직임에 차가 응답하기 시작했죠? 평소보다는 조금 더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된 거예요. 손은 어때요?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감각도 조금 달라진 게 느껴지나요? 평소보다 살짝 무거워졌죠? 오늘 아침의 그 부드럽던 감각보다 확실히 묵직할 거예요. 그렇다면, 이젠 앞 바퀴와 스티어링 휠 사이의 모든 부품들이 근육처럼 바짝 조여졌다고 상상해보는 겁니다. 스티어링 휠이 돌아가는 정도와 앞 바퀴가 돌아가는 정도가 더 밀접하게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 거예요. 내가 원하는 만큼, 더 정확한 조향이 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마침 직선 주로를 만났다면 오른발에 힘을 꽉 줘보세요. 아까 흥분했던 엔진 회전수 그대로, 이젠 변속기가 개입하는 시점이 평소보다 조금 느려졌다고 느껴질 겁니다. 오늘 아침엔 분명히 느끼지도 못할 만큼 부드럽게 오르내리더니, 이젠 엔진을 한껏 돌린 후에 한 단 올리고 다시 끝까지 달린 후에 한 단 더 올리는 식일 거예요. 변속 시기를 늦추면 엔진을 더 흥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빠르고 격렬하게 달릴 수 있도록,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선 이렇게 본격적인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거예요. 

달리다 보니 요철도 만났겠죠? 요철을 넘는 느낌마저 아침과는 달랐을 겁니다. 마냥 부드럽고 말랑해서 충격을 다 흡수하는 게 아니라 살짝 딱딱해진 느낌. 내 엉덩이로 올라오는 감각이 조금 더 날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건 서스펜션, 타이어와 차체 사이에 있는 스프링이 평소보다 단단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릴 수 있거든요.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와 논리가 있지만, 마침 기분 좋기 달리기 시작했다면 그런 이론 같은 건 잠시 잊으면 어때요? 그저 즐기는 겁니다. 예민해진 감각만큼, 집중하는 시간만큼 이렇게 달라진 차체를 한껏 즐기는 거예요.




마음에 작은 창을 하나쯤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스포츠 모드가 됐을 때 차가 어떻게 스스로를 준비하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조금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뻗어 있는 그 무수한 길과 그 길을 달리는 운전자의 자세나 실력만큼, 나와 내 자동차가 감당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정도 또한 다채로워지기 시작할 거예요. 같은 길을 달린다고 매일 같은 감각일 리 없고, 어제 달린 길인데도 왠지 오늘은 조금 더 빠르게 주파한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어요. 정말 그럴 수도 있고, 단지 그렇게 느껴지는 감각일 수도 있죠. 하지만 어느 쪽이냐가 그게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가 매일 어딘가에서 승리하려고 차를 타는 건 아니니까. 마음 먹기에 따라, 내 차의 운전석에선 다른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 없으니까요. 그저 좋아진 기분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그렇게 달리고 싶을 땐 드라이브 셀렉터에서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고, 아까 그 순서대로 주의를 집중해보세요. 영화나 드라마처럼 거창할 필요 없잖아요? 어마어마한 스릴을 느낄 정도로 달릴 일도 아니에요. 그저 기분이 좋아질 정도,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창문 하나 열어둔 것 같이 달려보는 거예요. 조금이나마 후련해진 마음으로 잠들 수 있다면, 내일 아침을 대하는 태도 역시 좀 달라져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사소한 차이야말로 소소한 일탈의 힘이에요. 그렇게 작은 재미야말로 일상을 버텨내는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정우성
정우성은 12년 차 기자다. 자동차, 고전음악과 인터뷰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며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레이디 경향>, <지큐>를 거쳐 지금은 <에스콰이어>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박정욱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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