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자인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소개한다.
제품을 향유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동차 디자인의 역할은 단지 시각적인 만족감을 제공하는 데 그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인은 그저 아름답고 멋진 것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모든 디자인은 의도가 있고, 때로는 기능을 따라 다듬어진다.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도 겸한다. 자동차의 성능과 품질이 상향 평준화된 요즘은 브랜드 가치의 차별화를 위한 무기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자동차만이 아닌, 어느 제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름다우면서 기능적인 자동차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스타일링 디자이너가 고안한 창의적인 디자인이 그대로 구현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자동차 디자인은 그리 단순히 이뤄지지 않는다.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기반으로, 사용성 및 안전성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설계 요구 조건을 맞춰야만 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실제 양산 모델로 거듭날 수 있다. 즉, 디자이너와 설계 엔지니어가 서로 원하는 조건이 모두 들어맞을 때 양산차의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협업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내는 역할이 바로 디지털 디자인이다.
최근의 자동차 디자인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2D 스케치 디자인 → (2) 디자인 콘셉트 도출 → (3) 선행 3D 디지털 모델링(CAS) → (4) 영상(VR 모델) 및 실물 클레이 모델 제작 → (5) 디자인 셀렉트 → (6) 양산을 위한 고품질 디지털 데이터 제작(CAD) → (7) 설계 조건이 적용된 데이터 검증을 위한 실물 모델 제작 → (8) 최종 양산 디자인 데이터 확정
하지만 이 과정이 꼭 고정된 것은 아니다. 각 단계 사이에 수많은 검토 및 수정 작업이 이뤄진다. 이 같은 흐름에서 디지털 디자인 영역에 속하는 부분은 선행 3D 디지털 모델링, 영상 및 실물 품평용 모델 제작, 양산 설계용 디지털 데이터 제작 과정이다.
과거에는 2D 스케치 디자인을 바탕으로 실제 자동차 대비 축소된 버전이나 실차 크기의 클레이(공업용 점토) 모델을 수작업으로 만들어 최종 디자인을 다듬었다. 앞서 언급했듯 자동차 디자인에는 다양한 요구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클레이 모델을 만드는 와중에도 많은 수정 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모됐다.
하지만 1990년대 무렵부터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서 디자인 도면 작성과 검토, 수정 작업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디자인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디자인 효율성이 빠르게 높아졌다. 이는 곧 비용 절감과 시간 단축이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제조업에 있어 혁신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디자인은 선행 디자인과 양산 디자인으로 나뉜다. 내·외장 디자인 모두 마찬가지다. 선행 디자인은 다양한 3D 프로그램(Alias, Maya 등)을 활용하여 기존의 2D 스케치를 3D 데이터로 제작하는 작업(CAS, Computer Aided Styling)이다. 실제 자동차를 검토하는 것처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3D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양산을 위한 설계 조건을 까다롭게 고려하기 전 단계이므로, 이때는 초기의 혁신적인 디자인 콘셉트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디자인의 조형미와 스타일링에 중점을 둔다.
양산 디자인 과정은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의 복잡한 설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창의적인 디자인 콘셉트가 최대한 양산 모델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3D 제작 프로그램(CATIA, Alias)을 활용하여 고품질의 디지털 데이터를 제작하는 작업(CAD, Computer Aided Design)이다. 부위별로 다양한 설계, 금형, 충돌 조건 등을 고려해야 하고, 실내에서는 사용성 및 조작감 등 실제 운전자가 차를 이용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요소들까지 염두에 두고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다.
디지털 디자인 시스템의 효과는 꽤 다양하다. 시간과 자원의 소모를 줄여 신차 디자인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디자인 부문과 설계 부문을 비롯해 유관 부문의 의사소통 과정도 한결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디지털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즉각적으로 검토가 이뤄지고, 수정이 필요한 부분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지털 디자인의 강점은 오프라인을 벗어나 온라인에서 신속한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 같은 강점이 극대화되는 단계가 바로 VR(Virtual Reality) 기기를 활용한 가상현실에서의 품평 및 수정 단계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9년 3월부터 VR 디자인 평가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디자인 과정의 혁신을 도모했다.
VR 디자인 평가는 머리에 착용하는 HMD(Head Mounted Display)를 통해 가상현실에서 디지털 모델을 입체적으로 확인하고 수정하는 단계다. 물리적인 제약이 사라진 가상공간에서 디자인 작업이 이뤄지는 덕분에 여러 디자인과 컬러, 소재 등을 적용한 수많은 디지털 모델을 쉽게 비교하며 검토할 수 있다. 빛의 강도와 각도 및 날씨를 조절해 주야간에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장 디자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내 공간의 시각적인 질감, 각 부품의 위치, 비율뿐만 아니라 실내 소재에 따른 빛의 반사량과 반사각도 등 전체적인 완성도를 미리 검증할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다.
시간과 공간 등 물리적인 제약이 사라졌다는 것은 유관 부서를 비롯해 해외 디자인 스튜디오와의 협업이 더욱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활한 협업과 신속한 업무 처리 과정 덕분에 한정된 시간 내에 이전보다 더 많은 혁신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고, 이는 전반적인 디자인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디자인 개발 초기 단계부터 꼼꼼하고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어서 양산 설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실제로 보고 만지는 검증 단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VR 디자인 평가와 더불어 3D 프린터를 활용해 일부분 또는 전체 디자인 모델을 제작해 검증하는 단계도 거친다. 특히 여러 소재를 사용한 부위 또는 도어 및 센터콘솔처럼 움직이는 무빙 파트는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3D 프린터 모델 검증 단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여러 단계를 거쳐 디자인이 최종 확정되면 그 이후부터 양산 디자인 단계에 돌입한다. CAD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데이터를 설계 부문과 공유하면서 양산 제작에 적합한지 검토하고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는 단계다.
디자인 개발 과정 중 실물 모델을 제작하여 검증하는 단계는 자동차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다. 완성한 양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밀링 머신(Milling Machine)이나 3D 프린터를 활용해 레진과 같이 다양한 소재로 이뤄진 1:1 비율의 차체를 제작한다. 그런 뒤 실제 비율의 실물 모델을 확인하며 데이터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로써 디자인, 설계, 양산성 등 ‘자동차’로서 가져야 하는 모든 조건이 반영된 진정한 ‘자동차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디자인은 자동차 디자인 개발 과정 전반에 활용되며 디자인 품질과 완성도 향상, 나아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디바이스로 진화하고 있는 자동차에 걸맞게 개발 과정 또한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첨단 디지털 기술의 효과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얻는 이점은 결국 자동차의 종합적인 완성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자동차의 디자인에는 바로 이런 비밀이 숨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뉴스 미디어, HMG 저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