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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Dec 06. 2021

2021 WRC, 아쉽지만 잘 달린 현대 월드랠리팀

때로는 과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 시즌 현대팀의 행보가 그렇다.


2021 시즌 WRC에서 현대 월드랠리팀은 제조사 부문 준우승을 차지하며 끝내 3연속 챔피언 달성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준우승자가 패배자는 아니니 말이다. 흘린 땀과 노력을 인정하고 박수를 보낼 때 비로소 다음 도전을 향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현대팀이 2021 시즌 WRC에서 펼친 활약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지만 올시즌 현대팀의 랠리 과정을 면면히 살펴보면 다음 시즌을 향한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그 과정 곳곳에서 지난 7번의 시즌에 비해 희망적인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 희망을 발판 삼는다면 현대팀의 내년 시즌 제조사 부문 챔피언 복귀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올시즌 WRC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현대팀과 도요타, M-스포트 포드 등 3대 워크스(제조사팀) 세력이 맞붙었다. 하지만 사실상 현대팀과 도요타 둘의 싸움이었다. 포드, 도요타가 WRC 창설기인 1973년부터 활동해온 대선배임을 감안하면, 신참 현대팀의 성장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불운의 연속을 겪은 현대팀


오트 타낙이 북극 랠리에서 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올 시즌 현대팀의 분위기는 상승세였다


개막전인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는 세바스티앙 오지에(Sebastien Ogier)가 우승하며 도요타가 앞서 나갔다. 하지만 현대팀의 반격은 즉각 이어졌다. 오트 타낙(Ott Tanak)이 핀란드 북부 라플란트주 로바니에미(Rovaniemi)에서 열린 2전 북극 랠리를 잡은 것이다. 이처럼 현대팀과 도요타는 초반부터 격렬한 난타전을 이어갔다. 그런데 올여름은 유달리 현대팀에게 가혹했다. 랠리카가 더 빨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로 리타이어하거나 불운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올시즌 현대팀은 유리한 순위를 선점하고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타이어로 인해 결과가 좋지 않았다


4전 포르투갈 랠리에서는 경기 초반 현대팀의 3인방인 오트 타낙, 다니 소르도(Dani Sordo),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이 1~3위를 독점하고 달리다가 타낙과 누빌이 연달아 리타이어 하고 말았다. 이어진 이태리 랠리에서도 선두였던 타낙이 경주차 파손으로 주저앉은 후, 소르도가 연이어 사고를 당했다. 누빌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열린 6전 사파리 랠리에서 선두를 유지하던 중 마지막 날 서스펜션 문제로 아쉽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7전 에스토니아 랠리에서는 초반 거침없이 질주하던 타낙이 연이은 타이어 펑크로 경기를 포기했다.

타이틀 경쟁이 한창 치열하던 한여름, 연속된 불운은 현대팀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부었다. 물론 사고나 리타이어, 운이라는 요소까지도 타이틀 도전자들이 감내하고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시즌 후반, 누빌이 8전 벨기에 랠리와 11전 스페인 랠리에서 우승하고, 타낙이 그리스 랠리와 핀란드 랠리에서 연속 2위, 소르도가 스페인 랠리와 몬자 랠리에서 연속 3위로 포디엄 피니시하며 힘을 보탰지만, 대세를 뒤집기는 힘들었다.



현대팀은 시즌 마지막 경기인 몬자 랠리에서 선전했지만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2021 시즌은 최종전 몬자 랠리를 원투 피니시로 마무리한 도요타(520점)가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갔다. 현대팀(462점)은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드라이버즈 포인트에서는 176점을 기록한 티에리 누빌이 도요타의 세바스티앙 오지에와 엘핀 에반스에 이어 3위에 자리했다. 최종전을 뛰지 못한 오트 타낙(128점)은 5위, 다니 소르도는 7개의 랠리만 참가하고도 81점으로 6위에 올랐다.

참고로 누빌은 벨기에와 스페인에서 2승을 챙겼고, 타낙이 거둔 북극 랠리에서의 1승으로 현대팀은 2021 시즌 전체 12개의 랠리에서 3승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포디엄 피니시 17번에 더블 포디엄은 5번 기록했다. 아울러 누빌은 시즌 통틀어 파워 스테이지에서 가장 많은 추가 점수를 챙겼다. 리타이어한 케냐와 핀란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경기의 파워 스테이지에서 추가 득점을 기록했고, 합계 점수도 35점에 달했다.




스페셜 스테이지를 정복한 현대팀


올시즌 현대팀의 스페셜 스테이지 승률은 그 어느 시즌보다 높았다


세부 기록으로 들어가 보면 현대팀이 올시즌을 잘 치렀다는 게 보다 확실해진다. WRC의 각 랠리는 여러 개의 스페셜 스테이지(SS) 기록을 더해 승부를 가린다. 현대팀이 첫 번째 WRC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던 2019 시즌에는 총 224개의 시즌 전체 스페셜 스페이지에서 66번 우승해 1위 달성 비율이 29.5%였다. 해당 비율은 2020 시즌 48.6%까지 늘어나 라이벌인 도요타 대비 6.3%p 높았다. 스테이지 우승은 해당 랠리를 다른 랠리카에 비해 더 빠르게 달렸다는 의미이며, 랠리카의 성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총 12개의 랠리가 열린 올 시즌에는 214개 스페셜 스테이지 가운데 현대팀이 108개를 잡아 1위 비율이 무려 50.7%에 달했다. 전체 스페셜 스테이지 중 절반 이상에서 현대팀이 가장 빨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3연속 챔피언 방어라는 부담감이 현대팀의 발목을 잡았다. 다소 공격적인 주행이 우승을 위한 집념에서 비롯됐고, 이것이 사고나 펑크 등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확실한 건 시즌 내내 라이벌을 뒤쫓다가 끝난 것이 아니라, 앞서 달리며 경주를 지배하다가 불의의 사건으로 선두 자리를 내어준 케이스가 많았다는 점이다.



사상 처음 핀란드 랠리에서 더블 포디엄을 차지하며 내년 시즌 핀란드에서의 전망을 밝혔다


이 밖에도 올 시즌 결과를 놓고 보면 몇 가지 희망적인 부분을 더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현대팀은 적진이라 할 수 있는 핀란드 랠리에서 올해 처음으로 포디엄에 올랐다. 지금까지 핀란드 랠리는 이곳에 본거지를 둔 도요타의 독무대에 가까웠다. 따라서 현대팀이 포디엄에 오른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2, 3위를 동시에 차지한 더블 포디엄이었다.



벨기와 스페인 같은 타막 랠리에서의 성적 향상은 내년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아울러 전반적으로 현대팀의 약세로 지적되었던 타막 랠리 성적도 개선됐다. 현대팀은 벨기에와 스페인 랠리에서 더블 포디엄을 차지했으며 특히 벨기에에서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누빌이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2022 시즌 WRC의 캘린더 역시 올시즌과 마찬가지로 타막 랠리가 4개나 포진해 있는 만큼, 타막 랠리에서의 약점 극복은 현대팀의 챔피언 타이틀 탈환을 기대하게 만든다.



몬자 랠리에서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준 신예 드라이버 올리버 솔베르그는 2022 시즌 현대팀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 소속인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의 성장도 눈에 띈다. 2001년 생으로 올해 만 20세가 된 솔베르그는 2003 시즌 WRC 챔피언인 페터 솔베르그(Petter Solberg)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은 2세 드라이버다. 원래는 올시즌 WRC2 클래스로 참전했지만 2전 북극 랠리에서 현대의 세컨팀인 C2 컴패티션의 i20 쿠페 WRC 랠리카를 타고 종합 7위에 오르며 기대에 부응했다. 최종전 몬자 랠리에서 거둔 종합 5위는 솔베르그의 개인 통산 최고 성적으로, 그가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와 같은 가능성을 본 현대팀은 2022 시즌 3호 랠리카에 소르도와 함께 솔베르그를 탑승시키기로 전격 결정했다.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2022 시즌을 준비 중인 현대팀


현대팀은 규정이 대폭 바뀌는 2022 시즌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시즌을 마감한 현대팀은 짧은 휴식과 함께 격변의 2022 시즌을 대비하고 있다. 2022년에는 지난 20여 년 간 지속되어 왔던 WRC ‘월드랠리카’ 시대가 막을 내리고, ‘랠리1’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신차 개발과 달라지는 환경으로의 빠른 적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 막중한 프로젝트에 크리스티앙 로리오(Christian Loriaux)가 외부 기술 고문으로 힘을 더하고 있다. 프로 드라이브를 거쳐 오랫동안 M-스포트에서 활약했던 로리오는 WRC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하나다.

랠리1 규정의 핵심은 친환경 시대에 어울리는 하이브리드 구동계다. 독일 콤팩트 다이내믹스사에서 제작하는 하이브리드 모듈이 모든 팀에 동일하게 제공돼 기존 1.6L 터보 엔진에 추가적인 힘을 보탠다. 100kW(134마력), 180Nm를 내는 모터와 배터리, 인버터, 관리장치 등이 카본 하우징으로 덮여 프로펠러 샤프트, 리어 디퍼렌셜 사이에 연결된다. 속도를 줄일 때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회생제동 기능도 있다. 경기 중 지정된 이동 구간에서는 엔진을 아예 끄고 전기차처럼 모터로만 달릴 예정이다.



완전히 새로운 하이브리드 구동계와 강관 프레임을 바탕으로 개발된 현대팀의 새로운 랠리카는 끊임없는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그룹B 이후 오랜만에 사용되는 강관 프레임의 도입이다. 현재 월드랠리카에서 거의 유일한 양산차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모노코크 보디가 사라지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랠리카 제작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다음 시즌부터 등장할 랠리카는 한층 ‘양의 탈을 쓴 늑대’에 가까워진다. 양산차와 유사한 겉모습에 기존 랠리카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을 품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또한 배출가스 저감을 위한 합성 연료, 모니터링 용도의 인공지능 카메라 등이 도입되며 제작비 절감을 위한 다양한 변화도 더해진다. 단순화된 서스펜션 구성에 변속기는 랠리2와 같은 5단(기존 6단)을 사용하게 되며 액티브 센터 디퍼렌셜, 리어 디퓨저, 수랭식 브레이크를 금지시켜 제작비를 끌어내린다. 이 밖에도 차세대 하이브리드 랠리카에 쓰인 기술은 향후 친환경 양산차 기술 개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랠리카 기술이 고성능 양산차 개발에 도움을 줬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랠리카와 바뀌는 규정 속에서 전력을 강화한 현대팀이 2022 시즌 제조사 챔피언을 탈환할지 기대된다


완전히 새로운 하이브리드 랠리카, 달라진 규정 등 2022 시즌 WRC는 많은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신차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테스트되고 있어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드라이버 라인업 측면에서는 현대팀이 다소 유리해 보인다. 다음 시즌 도요타는 에이스 오지에가 은퇴로 인해 일부 랠리만 참전하기로 한 상태다. 이와 달리 현대팀은 누빌과 타낙이 건재하며 3호 랠리카에는 소르도와 솔베르그를 나눠 태우기로 결정했다. 강력한 투톱과 노장, 그리고 신예가 조화를 이룬 현대팀의 드라이버 라인업은 하이브리드 랠리카 시대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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