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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 따라 한 바퀴,
수원화성 답사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코나를 타고 수원화성으로 떠나봅니다.

by HMG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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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보통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성장합니다. 하지만 정치나 경제, 산업입지 등을 고려해 계획적으로 조성되는 도시도 있죠. 이를 우리는 ‘계획도시’라 부릅니다.
일산이나 분당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도시는 비단 현대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이 바로 조선시대에 조성된 계획도시입니다. 개혁 군주 정조가 꿈꾸던 조선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엿볼 수 있는 곳, 수원화성으로 떠나봅니다.



정조, 수원화성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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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중심에 위치한 수원화성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계획된 도시입니다.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기면서 그 주변을 성곽으로 둘렀고, 현재의 수원화성이 되었습니다. 정조의 효심을 근간으로 축조됐지만, 그 이면에는 당쟁에 의한 당파 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포부도 담겨있습니다. 개혁을 시도하려 했던 정조는 한양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노론 벽파의 힘을 약화시켜야 했습니다. 정치적 독립과 병권 장악이 필요했던 정조는 일종의 친위도시가 필요했고, 수원을 그 적임지라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만들어진 수원화성은 동양의 성곽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축성 후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부분이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장안의 화제, 장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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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은 4개의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쪽에 있는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정문이자 국내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국보 1호인 숭례문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성이 남쪽에 정문을 두는 것과 달리, 수원화성이 북문을 정문으로 삼은 것은 도읍지인 한양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조는 아버지의 능을 찾기 위해 수원화성을 자주 방문했는데, 한양에서 수원화성을 방문하려면 지리적 위치상 북쪽이 가장 가까웠습니다. 즉, 왕이 이용하는 문이었기 때문에 북쪽의 장안문이 정문이 된 것이지요. ‘장안’은 수도를 상징하는 단어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문에 이런 이름을 붙임으로써 수원화성이 가진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백성들의 삶이 평안하길 바랐던 정조의 마음도 담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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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 옆 성곽을 따라 길게 늘어진 장안공원은 도심 속에서 조선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잔디와 나무들이 오래된 성벽과 어우러진 풍경은 매우 이색적이기도 하죠. 장안공원과 맞닿아있는 성벽에는 북서적대, 북서포루, 북포루, 서북공심돈 등 수원화성의 군사적 기능을 엿볼 수 있는 구조물도 즐비합니다. 그중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화성을 방문한 정조가 이를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원형을 고스란히, 서쪽의 화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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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은 서쪽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1796년 완공됐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죠. 화서문의 현판은 수원화성의 초대 유수(조선시대 지방관)였던 채제공이 썼으며 화서문 통로 안 석벽에는 성문 공사를 담당했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벽에 공사 담당자의 이름을 새김으로써 책임감을 부여해 튼튼한 성을 짓도록 한 것입니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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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은 북쪽 수문과 남쪽 수문을 통과합니다. 그중 북수문은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로 손꼽힙니다. 북수문은 화홍문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데, 화(華)자는 화성을, 홍(虹)자는 무지개를 의미합니다. 수원천을 흐르는 물의 양이 많아지는 여름철에는 7개의 수문을 세차게 통과하는 물과 빛이 만나 무지개를 빚어내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화홍문 옆 언덕을 따라 길게 늘어진 성곽 끝에는 방화수류정이 있습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도 갖춘 곳이죠.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의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뽐내기도 합니다.


수원화성의 동쪽을 수호하는 창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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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의 동문은 창룡문이라 부릅니다.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신 중 동쪽 수호신인 청룡의 이름을 딴 문이죠. 창룡문을 중심으로 둘러져 있는 성벽 안쪽은 성 중심지보다 고지대라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고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푸른 하늘 아래 길게 늘어진 성벽을 감상하기에 제격인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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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옆 동북공심돈 아래로 펼쳐진 공간은 과거 조선의 군사들이 무예를 갈고 닦던 공간인 연무대입니다. 현재는 ‘수원화성 국궁체험장’이 있어 우리의 옛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접 활쏘기 훈련을 해볼 수 있죠.


수원화성의 중심, 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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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바로 화성행궁입니다. 행궁은 왕이 전란을 피해 잠시 머물거나 휴양 삼아 지방 나들이를 할 때 머물던 임시 궁궐인데, 화성행궁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웅장한 건축물입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수원으로 옮긴 이후 12년간 13차례에 걸쳐 수원으로 행차했는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습니다. 1795년에는 화성행궁의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는 잔치를 열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화려하고 웅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자신이 설계하고 힘써 만든 수원화성에서 성대한 잔치를 열어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자 했던 정조의 의중이 반영된 행사였죠. 현재의 화성행궁은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인 1996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해 2003년에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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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의 길 건너편에는 수원화성의 역사를 한번에 볼 수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이 있습니다. 특히 2층에 마련된 화성축성실에는 수원화성 축성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간행한 책인 ‘화성성역의궤’가 있습니다. 현재 수원화성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성곽과 건축물들이 있지만, 일부는 복원사업을 통해 새로이 만들어진 구조물도 있습니다. 이런 구조물들이 과거의 모습과 동일하게 복원될 수 있었던 이유는 축성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의 야외 마당에는 수원화성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어졌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녹록, 거중기 등의 축성 도구가 전시돼있습니다. 거중기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기구로 실학의 대가인 다산 정약용이 고안한 과학적 장치입니다.


사통팔달, 팔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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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예부터 서울의 남쪽 관문 구실을 해왔습니다. 서울에서 큰길을 따라 충청도나 전라도로 가기 위해선 수원을 거쳐야 했지요. 사방으로 통하고 팔방으로 닿아있는 문, 수원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이 전국으로 통하는 문이었던 셈입니다. 교통의 요지였던 덕분이었을까요? 팔달문 주변 시가지는 한때 수원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원역사 리모델링으로 인해 해당 지역이 발전하고 수원 외곽에 거대한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며 상권이 분화돼 북적거렸던 팔달문 거리는 한 때 한산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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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래시장 정비사업, 수원화성 복원사업을 통해 꾸준히 정비에 힘쓴 결과 현재는 다시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습니다. 과거에는 수원시민들만 찾는 시가지였다면 현재는 수원화성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전국민의 관광지로 거듭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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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만큼이나 유명해진 수원 통닭거리의 통닭은 꼭 맛봐야 할 음식입니다

팔달문 근처 재래시장의 수원천을 따라 거닐다 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통닭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는 80년대부터 생겨난 통닭집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으로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잘게 토막친 닭을 무쇠솥에 튀겨낸 맛은 그 옛날 아버지가 퇴근길에 종이봉투에 담아 포장해오던 딱 그 통닭 맛입니다(치킨거리가 아닌 통닭거리로 부르는 이유기도 하죠).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기름 향이 정겨워 또 발걸음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곳입니다.


직접 가보기 전엔 모를 수원화성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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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수원은 어떤 이미지의 도시인가요? 경기도청이 있는 정치, 행정, 경제의 중심도시, 경기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번화한 도시, 각종 고속도로와 철도가 통과하는 교통의 중심지 등을 떠올리셨나요? 맞습니다. 수원은 그런 도시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본 수원은 역사와 현재가 잘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이번 주말 수원화성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성곽길을 따라 이어진 거리 위에서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진. 안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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