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와 전기차는 다른 타이어를 사용합니다. 어떤 점이 다를까요?
전력 질주를 해본 적이 있다면 신발의 중요성을 실감하셨을 것입니다. 발에 맞춰 보강재를 넣은 운동화는 땅을 박차는 힘을 지면에 정확히 전달하고 발의 피로도 줄여주죠. 자동차의 신발이라 할 수 있는 타이어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동차의 힘을 지면에 전달하며 방향을 바꾸고 원하는 자리에 정확히 멈추도록 하죠.
이처럼 타이어는 자동차의 성능 발휘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잘 달리는 자동차에는 성능을 온전히 받쳐줄 수 있는 타이어가 필요합니다. 신차 개발은 타이어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고용 타이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목표하는 성능을 내기 위해 치밀한 개발 과정을 거치죠. 휠, 타이어의 설계와 개발을 담당하는 현대자동차 타이어설계팀 김성수 책임연구원은 타이어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타이어는 자동차의 부품 중 지면에 닿는 유일한 부품입니다. 따라서 자동차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승차감, 핸들링, 진동, 소음, 효율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죠. 특히 핸들링과 제동에 있어 타이어의 영향은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타이어에 따라 자동차의 주행성능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출고용 타이어의 제작과 선정 과정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과 목표가 붙습니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타이어 제조사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목표하는 타이어를 만들고, 검증합니다. 물론 성능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타이어는 오랜 시간 사용하기에 제조 품질도 중요합니다. 차량의 진동이나 쏠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다양한 면면을 깐깐하게 확인합니다.”
달리기에도 체격이나 몸무게에 따라 다른 운동화가 요구되듯,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또한 다른 타이어를 끼웁니다. 전기차의 특징에 맞춰 타이어가 갖춰야 할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냅니다. 따라서 이를 온전히 받아낼 수 있어야 하죠.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미끄러짐이나 쏠림 현상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기차는 배터리를 얹기에 내연기관차보다 무겁습니다. 그래서 내연기관차보다 더 많은 무게를 견뎌내는 동시에 내마모성과 내구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전기차의 타이어 마모는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20% 빠르며, 이는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는 전기차의 가속 특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초기형 전기차에서는 내마모성을 중심으로 타이어를 선택했습니다. 아울러 전기차 타이어의 내마모성 향상과 트레드 재료 강화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 결과, 최신 전기차 타이어의 트레드 재료는 기존 내연기관 타이어에 비해 내마모성이 30% 이상 높아졌습니다.
물론 전기차에서는 효율성도 아주 중요합니다. 한정된 에너지로 최대한 오래 달릴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타이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회전 시 생기는 구름저항(RRC, Rolling Resistance Coefficient)까지 줄여야 하죠. 그런데, 구름저항을 줄이는 동시에 단단한 구조도 만들어야 합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해 무거운 배터리를 바닥에 장착합니다. 그만큼 휠베이스가 늘어나 실내 공간이 넓어지지만, 뒷바퀴에 걸리는 무게도 늘어납니다. 따라서 방향 전환 시 걸리는 힘과 하중을 잘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김성수 책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전기차에 있어 전비와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상당히 중요하며, 타이어에도 이를 반영해 개발하고 있습니다. 가령 구름저항 등급을 1.0 줄이면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5%가량 늘릴 수 있습니다. 즉, 타이어의 기술 발전은 전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며 전기차 기술 개발 계획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죠. E-GMP 플랫폼을 사용한 아이오닉 5의 타이어를 개발할 때 구름저항을 6.5 이하로 맞추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E-GMP 플랫폼을 이용한 모델들은 휠베이스가 길고 뒷바퀴에 많은 하중이 실립니다. 따라서 구름저항이 낮으면서도 주행 안정성이 뛰어난 타이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전기차의 타이어는 모순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타이어의 구름저항을 줄이면 접지력이 떨어지고, 주행성능을 중시해 만들면 구름저항이 높아져 전비가 불리해집니다. 과거에는 이처럼 상반된 조건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아이오닉 5의 타이어는 이런 선입견을 깨고 전기차의 타이어를 혁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발 더 나아가 타이어의 각 부분의 특징을 강화해 전체적인 성능 향상을 이룬 것입니다.
E-GMP 플랫폼 기반 모델 타이어에서는 구름저항을 줄이고 방향전환 시 작용하는 선회력(Cornering Force)에 우선적으로 대응했습니다. 타이어의 구성 요소별 역할을 구분해 개발을 진행한 결과입니다. 먼저, 타이어 트레드의 접지력을 높여 핸들링과 제동성능을 높이고, 타이어 측면의 변형은 줄여 구름저항을 줄였습니다. 트레드의 경우 접지 면적을 최대한 늘리되 패턴 그루브는 각도/깊이 등 형상 최적화를 통해 종방향 강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이는 가속 시 미끄러지는 현상을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구름저항을 줄이고 패턴 강성을 높이기 위해 패턴 그루브의 깊이를 줄였으며, 이에 따라 감소한 내마모성을 보완하기 위해 마모에 강한 성질의 컴파운드를 적용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이오닉 5의 타이어 안에는 흡음재가 달려있습니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없어 기계적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대신 바깥의 소음이 더 잘 들리기 마련이죠. 주행 중 생기는 타이어 마찰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내연기관차보다 더 조용한 타이어가 필요합니다. 아이오닉 5가 타이어 안에 가벼운 흡음재를 적용한 이유입니다.
그 외에도 구름저항을 낮추기 위해 사이드월 고무나 이너라이너에 구름저항을 낮추는 재료가 동원됐습니다. 아울러 고강성 재료를 통해 타이어 내부의 상부 구조를 얇게 유지했습니다. 이는 타이어의 접지 형상 최적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구름저항은 줄이고 접지 면적은 늘리는 효과까지 얻습니다. 더불어 타이어 제조 과정에서 성형 공정과 가류 공정을 바꾼 덕분에 타이어 구름 저항을 6.5 이하로 낮추는 동시에 접지력은 향상됐습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차 타이어 개발에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필요하죠. 개발 과정 또한 쉽진 않았습니다. 김성수 책임연구원은 E-GMP 개발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E-GMP 플랫폼을 이용한 차량 개발을 시작하면서 현대자동차는 전략적으로 미쉐린과 기술협력을 진행했습니다. 미쉐린의 전문가들과 타이어 구름저항을 낮추는 동시에 주행성능도 함께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먼저 타이어 성능을 극대화하고, 타이어의 한계를 넘어선 영역은 섀시와 모터 제어를 통해 극복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속 성능, 일반 노면 주행성능, 전비 모두 끌어올렸지만 젖은 노면과 눈길에서의 접지력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이나믹주행시험팀과 전기차성능시험팀이 마찰력이 낮은 노면에서 타이어의 한계 성능을 확인하고 섀시와 모터의 제어를 최적화한 덕분에 주행 안정성과 제동성능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오닉 5는 세계 여러 자동차 전문지의 주행 평가에서 경쟁자를 앞섰습니다.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의 도로 주행 평가(Road Test Score)에서도 91점을 받아 전기차 중 가장 우수한 주행성능을 기록했습니다. 타이어가 이런 좋은 평가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아이오닉 5 타이어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타이어설계팀은 기아 EV6와 아이오닉 6의 타이어를 완성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한발 더 나아갔지요.
아이오닉 6의 타이어는 고강도 *카카스(Carcass)를 적용해 무게를 추가로 줄이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신공정을 도입한 덕분에 구름저항을 5.9까지 낮췄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사계절 타이어 중 구름저항이 가장 낮으면서도 수준 높은 주행성능을 확보한 비결입니다.
*카카스: 타이어의 형태를 유지하는 기본 골격. 금속 코드를 평행하게 세운 구조와 그 주변에 쌓인 고무층을 말한다.
현재 전기차의 종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아 EV6 GT나 현대차 아이오닉 5 N과 같은 고성능 전기차의 등장도 앞두고 있죠. 이처럼 새로운 차종에는 새로운 타이어가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가령 기아 최초의 고성능 전기차인 EV6 GT에는 0→시속 100km 가속 시간 3.5초를 실현할 수 있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S가 적용되었습니다. 고성능 내연기관 자동차에 적용되던 타이어입니다. 아울러 모바일 플랫폼 모베드(MobED)나 플러그 & 드라이브(PnD) 모듈에도 전용 타이어가 필요합니다.
자율주행 시대에 접어들면 고객에게 다양한 편의사양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전기차의 무게가 늘어나며, 이에 맞춰 고하중 대응 타이어가 적용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차량 호출이나 배달 서비스를 담당할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Purpose Built Vehicle)에는 유지 비용 절감이 중요하며, 이에 도움이 되는 내마모성이 위주의 타이어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타이어에 요구되는 조건은 계속 바뀔 예정입니다. “타이어설계팀은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 타이어 기술을 선행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쉐린과 2차 기술협력을 진행하고, 유관 부서와 협업해 2025년까지 고하중 전기차, 전기 픽업, 유럽형 올웨더 등 다양한 타이어를 준비할 것입니다. 친환경/재사용 소재를 적용한 타이어 기술 개발도 준비하고 있으며, UAM에 대응할 수 있는 타이어 또한 검토하고 있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타이어 개발에 대응하는 김성수 책임연구원의 설명입니다.
미래의 전기차는 어떤 모습일까요?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기차가 하늘을 나는 시대가 와도 타이어는 여전히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차 타이어설계팀은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도 유용한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및 탄소중립 시대를 위한 기술도 마찬가지죠. 가장 낮은 곳에서 차량을 떠받치며 묵묵히 구르고 있는 겸손한 타이어처럼, 현대차 타이어설계팀도 고객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기술 개발을 이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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