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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ug 22. 2022

현대 월드랠리팀 오트 타낙, 벨기에 랠리 승리

오트 타낙이 지난 핀란드 랠리에 이어 벨기에 랠리에서 2연승을 거두었다


핀란드에서의 짜릿한 승리를 맛본 현대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은 제9전 벨기에에서 연승 도전에 나섰다. 벨기에 랠리는 크로아티아에 이어 이번 시즌 2번째 타막 랠리다. 서비스 파크가 마련된 이프르(Ypres)는 벨기에 북서부 플란데런 지역, 프랑스 접경지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독일과 연합군이 여러 차례의 대규모 전투를 벌여 인근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은 이후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지난해 영국 랠리 대신 WRC의 일원이 된 벨기에 랠리(Ypres Rally Belgium)는 원래 지역 이벤트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65년 시작되어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벨기에 챔피언십과 ERC(유럽 랠리 챔피언십)의 일원이었다. 지금까지 헨리 토이보넨(Henri Pauli Toivonen), 프레디 로이크스(Freddy Loix), 유호 하니넨(Juho Hänninen), 콜린 맥레이(Colin McRae), 아리 바타넨(Ari Vatanen) 등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 드라이버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원래 2020년에 WRC 데뷔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고, 이듬해에는 예비 명단에 없었다가 영국 랠리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WRC 캘린더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벨기에 랠리는 좁은 시골길을 주로 달리는 코스로 이뤄졌다
좁은 길을 빠르게 달리다가 자칫 잘못하면 도랑으로 빠질 수 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벨기에의 스테이지는 논밭 사이로 난 좁은 농로가 주를 이룬다. 긴 직선이 많아 속도가 빠르고 코너는 비교적 단순한 편. 공식적으로는 타막 랠리이지만 노면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같은 제대로 된 아스팔트보다는 오히려 비포장 같은 특성을 보인다. 코너를 자르듯 달리는 차들이 주변의 흙과 돌을 퍼 올리는 데다, 비라도 내린다면 엄청나게 미끄러워진다. 무엇보다도 좁은 노폭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좌우에 배수용 도랑이 입을 쩍 벌린다. 고속으로 달리던 차가 이곳에 처박히면 얼마나 위험한지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고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서비스 파크는 벨기에 북서부의 이프르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많은 스테이지가 새로워졌다. 아울러 지난해 마지막 날을 장식했던 스파프랑코샹 서킷은 없어졌다. F1 벨기에 그랑프리의 무대인 스파프랑코샹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지만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데다 볼거리 부족, 게다가 벨기에 그랑프리(8월 28일)의 일정 문제 등으로 올해는 빼기로 했다. 덕분에 가장 먼 스테이지도 이프르 도심에서 25km 이상 벗어나지 않는다. 구경하는 관중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벨기에 출신의 티에리 누빌은 지난해 벨기에 랠리에서 우승한 바 있다


현대팀은 벨기에 출신이자 지난해 우승자인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을 필두로 핀란드에서 시즌 2승째를 거둔 오트 타낙(Ott Tänak),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를 연속 기용했다. 타낙은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벨기에는 독특한 타막 랠리로 겉보기에 심플합니다. 직선 구간이 많고 코너 종류도 많지 않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까다롭고 날씨에 따라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핀란드와는 전혀 다른 타입이지만 승리의 기세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한편 현대팀 줄리안 몽세(Julien Moncet) 부단장은 핀란드에서 너무 일찍 리타이어해 눈물을 보였던 솔베르그에 대해 ‘이런 경험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서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쌓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9전 중 8전에 엔트리한 솔베르그는 제10전 그리스 랠리에서 소르도에게 운전대를 넘길 예정이다.



벨기에 랠리는 직선 구간이 많고 코너도 다양하지 않지만, 길이 좁고 노면 상태도 불규칙적이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도요타는 로반페라(Kalle Rovanperä), 에반스(Elfyn Evans), 라피(Esapekka Lappi), 가츠타(Takamoto Katsuta)로 드라이버진을 짰다. 지난해 벨기에에서 현대팀이 원투를 차지하고 로반페라가 3위에 머물렀던 만큼 올해는 첫 승리가 목표. M-스포트 포드는 크레이그 브린(Craig Breen)을 필두로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의 3명 체제. 지난해 벨기에 랠리 2위였던 브린은 이번이 6번째 참전이어서 비교적 경험이 풍부하다.


챔피언십 경쟁자들 외에도 눈길을 끄는 랠리2 참가자들이 있었다. 이프르 랠리 역대 최다승(11승)을 자랑하는 벨기에 출신 노장 프레디 로이크스는 2002~2003년 현대 WRC 드라이버이기도 했다. 또 한 명은 요스 베르스타펜(Jos Verstappen)이다. 지난해 F1 챔피언인 막스 베르스타펜(Max Verstappen)의 아버지로, 그 자신 역시 F1에서 활동했었다. 벨기에 랠리 선수권에 참가 중인 베르스타펜은 이번이 첫 WRC 참전이다.




8월 18일 목요일. 도시 남쪽에 마련된 7.34km 코스에서 3번에 걸친 셰이크다운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보통은 테스트 후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세리머니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올해는 특이하게 목요일 세리머니 이후에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예상대로 현지 경험이 가장 많은 누빌이 제일 빨랐다.


8월 19일 금요일은 8개 스테이지 97.02km 구간을 달렸다. 오프닝 스테이지 블레테랑(Vleteren)은 지난해와 구성이 많이 달라졌다. 예보대로 비가 내리긴 했지만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타이어 선택에 따라 유불리가 갈렸다. 초반에는 도요타 세력이 앞서 나갔다. SS1 톱타임의 로반페라 뒤로 에반스, 타낙이 뒤따랐다. 홈 관중의 뜨거운 응원을 받은 누빌은 실수로 10초가량 손해 보며 힘겹게 스타트를 끊었다.




SS2와 SS6를 위해 마련된 웨스투터-보슈프(Westouter-Boeschepe) 스테이지는 벨기에에서 출발해 국경 넘어 프랑스에서 마무리되는 19.6km 구간에서 열렸다. 긴 직선로와 테크니컬한 구간이 뒤섞여 있으며 노면 그립 또한 변화무쌍해 까다로운 코스다. 페이스를 되찾은 누빌이 SS2 톱타임, SS3 2위로 오프닝에서 까먹었던 시간을 만회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 선두인 칼리 로반페라는 벨기에 랠리 초반에 차가 전복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벨기에 농촌의 배수로는 올해 역시도 악명을 떨쳤다. 우선 챔피언십 리더 로반페라가 희생양이 되었다. SS2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벗어나 배수로로 떨어진 로반페라의 야리스 랠리1은 차체 앞부분이 많이 부서져 다시 달릴 수 없었다. 그 결과 에반스가 종합 선두가 되고 타낙과 누빌이 추격했다.


홈 관중의 버프를 받은 누빌은 역시나 빨랐다. 4개 스테이지에서 연속 톱타임을 기록하며 SS7에서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타낙이 뒤따라 종합 2위로 부상, 에반스는 SS8에서 지각해 10초 페널티까지 받았다. 금요일을 마치는 시점에서 누빌이 종합 선두. 2위 타낙과는 2.5초 차이다. 도요타의 에반스와 라피가 3, 4위. M-스포트의 브린과 그린스미스의 뒤를 이어 솔베르그가 7위에 위치했다.



좁은 시골길을 빠르게 달리면서도 좌우에 숨은 배수로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 벨기에 랠리의 특징이다


8월 20일 토요일은 SS9 레닝게(Reninge)를 시작으로 올해 경기 중 가장 긴 22.32km의 홀레베케(Hollebeke)까지 4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렸다. 133.22km의 토요일 경기 구간은 이번 경기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힘겹게 차를 고쳐 복귀한 로반페라가 오프닝 톱타임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금요일 대부분의 스테이지를 달리지 못해 1시간 넘게 까먹은 만큼 파워 스테이지를 노린 복귀다. 타낙은 SS9에서 2위를 기록해 종합 순위에서 누빌을 0.1초 차이로 제치고 선두가 되었다.



지난해 벨기에 랠리에서 2위를 기록했던 크레이그 브린은 올해 사고를 당해 순위권에서 멀어졌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이어진 SS10 디케부스(Dikkebus)에서는 또 다른 희생자가 나왔다. 왼쪽 코너를 돌던 브린이 배수로에 빠지며 전복되었고, 엔진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스럽게도 불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경기가 잠시 중단되어 타낙, 누빌, 라피, 에반스, 로반페라에게 같은 기록이 적용되었다. 이어진 SS11과 SS12는 누빌이 가장 빨리 달려 종합 1위를 탈환했고 타낙과의 시차를 16.2초로 벌렸다. 솔베르그는 종합 6위.



지난해 벨기에 랠리 우승자였던 티에리 누빌은 대회 중반 이후까지 선두를 달리던 중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누빌은 오후를 시작하는 SS13도 잡으며 대열을 리드했다. 그런데 이어진 SS15에서 도랑에 처박히며 홈 우승의 꿈이 깨지고 말았다. 관중들의 힘을 빌려 코스로 돌아왔지만 주행은 불가능했다. 흙과 자갈로 더럽혀진 코너는 예상보다 훨씬 미끄러웠다. 이제 종합 선두는 타낙. SS14까지 3.2초 차이로 에반스가 타낙을 바짝 따라붙었지만, 타낙은 마지막 2개 스테이지를 잡아 따돌릴 수 있었다. 이제 경기는 누가 살아남는가 하는 서바이벌 양상이 되었다.


토요일을 마치는 시점에서 종합 선두는 타낙이 차지했다. 에반스가 8.2초 뒤에서 바짝 추격했고 라피는 에반스에 1분가량 떨어진 종합 3위. 선행차들의 사고와 불운 덕분에 솔베르그가 4위로 부상했다. 포모는 이동 구간에서 경찰에게 잡혀 SS15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페널티를 받아 5위로 밀려났다.



사이클 경주 코스로 유명한 켐멜베르그 코스의 돌바닥 오르막 구간


8월 21일 일요일. 와투(Watou)와 켐멜베르그(Kemmelberg) 2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SS17~SS20에서 승자를 가리기 위한 최후의 싸움이 시작됐다. 이프르 남서쪽에 위치한 켐멜베르그는 사이클 경주 코스로 유명하다. 특징적인 돌바닥 오르막 구간은 비가 내릴 경우 엄청나게 미끄럽다.



아드리안 포모는 잘 달리던 중 마지막 날 큰 사고를 당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에반스가 오프닝 스테이지인 SS17 와투부터 SS18 켐멜베르그까지 2연속 톱타임으로 타낙을 추격했다. 그런데도 타낙은 종합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최종 파워 스테이지 예행연습이라고 할 수 있는 켐멜베르그에서는 에반스부터 타낙, 누빌까지 불과 0.7초의 초박빙이었다. 솔베르그도 포모의 추격을 10초 차로 막아내며 4위 자리를 지켰다. SS19 와투에서는 다시 타낙이 가장 빨라 시차는 7.2초로 벌어졌다. 솔베르그는 포모가 사고로 리타이어함에 따라 안심하고 달릴 수 있었다. 최종 파워 스테이지에서는 스페어타이어까지 떼어낸 로반페라가 톱타임. 에반스, 누빌, 타낙, 가츠타가 2~5위로 추가 점수를 챙겼다. 누빌은 변속기 트러블에 발목이 잡혀 파워 스테이지에서 얻은 3점에 만족해야 했다.



오트 타낙이 지난 핀란드 랠리에 이어 2연승을 거뒀다


타낙은 에반스의 막판 추격을 5초 차이로 막아내며 벨기에 랠리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시즌 3승째이자 핀란드에 이은 연속 우승이다. 포디엄 나머지 자리는 에반스와 라피가 가져갔다. 솔베르그는 핀란드에서의 부진을 떨쳐내고 본인의 최고 기록인 4위로 경기를 마쳤다. 누빌의 리타이어에도 불구하고 현대팀은 타낙 우승, 솔베르그의 선전에 힘입어 도요타와의 점수 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2022 WRC는 이제 그리스, 뉴질랜드, 스페인, 일본 4개 경기만을 남겨두었다. 이어지는 제10전 아크로폴리스 랠리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에서 9월 8~11일 열린다. 흙먼지와 거친 노면, 무더위의 삼박자를 갖춘 악명 높은 이벤트다. 이후 뉴질랜드와 스페인을 거쳐 최종전 일본에서 시즌을 마감한다.



글. 이수진(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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