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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us Oct 25. 2023

게으른 내가 해본 몇 가지 취미 #2

얼른 굳어라. 레진아트

언젠가 한번 TV에서 점토 같은 것을 붙이고 다듬어 귀여운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귀여워서 나도 만들어 보고 싶어 져 검색을 많이 해봤었다.


결론은 '하지 말자!'였다. 취미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다 그렇듯 뭔가 시작할 때는 불도저 같은 마음가짐과 더불어 어느 정도의 투자가 뒤따른다. 내가 봤던 것은 점토도 색깔별로 필요하고 이를 굽는 장비도 필요했다. 그 외 필요한 장비들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굽는 장비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진입장벽을 느꼈다.


 다들 느껴봤겠지만 뭔가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보면 비슷한 부류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점토관련해서 찾다 보니 레진아트라는 것들이 자주 서성거리고 있었다. 레진이라는 투명한 액체와 기본적인 꾸밀 것들만 있으면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아기자기하게 꾸민다는 면에서는 점토와 똑같았지만 개인적으로 느꼈을 때 진입장벽은 훨씬 낮았다.

이날의 결정이 나를 몇 개월 간 거북목으로 만들 줄은 전혀 몰랐다.


레진아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온라인 스토어에서 재료들을 둘러보았고 가격도 비싼 편이 아니라 기본 재료들을 구매했다.

재료 구매 전 해보고 싶었던 콘셉트는 인터넷 검색하다 본 바다 콘셉트의 작품이었다. 사실 제일 간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래와 잉크 그리고 바다를 꾸밀 수 있는 작은 미니어처 소품이 있는 것들도 같이 샀다.


재료들이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오픈. 마침 주말이어서 시간적 제약도 없었고 마음이 편했다. 큐브 모양의 오브제를 만들 계획이었어서 일단은 작은 사각형 몰드에 모래를 깔고 해조류 느낌을 내고 싶어 건조 식물도 넣었다.

이제 레진을 섞어야 한다. 주제와 경화제를 비율에 맞게 섞고 기포가 최대한 생기지 않도록 천천히 오래 저어준다. 대략 TV를 보며 5분쯤 저었을까. 바닥에 내려놓고 자잘한 기포가 떠올라 없어질 때까지 잠시 그대로 둔다. 바다 색을 내기 위해 잉크를 섞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독학은 정말 고독하다는 것을.

잉크가 생각보다 진해서 조금만 넣는다고 넣었는데도 에메랄드 빛 바다색이 아닌 심해 800미터 정도의 심해색깔이 났다.

아깝지만 이 레진은 그냥 굳혀서 버려야 했다. 아직 레진이 많이 남아있다 다시 레진을 조합하여 섞고 기다리기를 반복했다고 잉크를 아주 조금만 섞어서 그럴듯한 색이 나왔다.


'이제 부어보자' 천천히 에메랄 듯 빛 레진액을 몰드에 부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해조류로 넣었던 건조 식물이 그대로 떠오른다. 역시나 이것도 예상하지 못했고 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시계를 보니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지났음을 인지했다. 내가 엄청 몰입해 있었음을 느꼈다.


내가 구매한 레진은 완전히 굳으려면 대략 하루가 걸린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일단 건조 식물을 뺐고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아래 고정 시킬 수 있을까? 내 생업과 전혀 관련 없는 고민이라 그런가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다. 결국 방안을 찾아냈다. 바닥에 깔린 모래 알갱이를 접착제로 조금만 건조식물에 붙여서 넣어보자.

역시 인간은 늘 그렇듯 답을 찾아낸다. 잘 가라앉는 것을 보니 이게 뭐라고 되게 뿌듯했던 기억이다.


먼지가 날리지 않는 쪽으로 몰드를 옮겨 놓고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표면에 터지지 않는 기포는 라이터로 가끔 터뜨려줘야 한다. 그리고 완전 경화를 위해 나는 2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너무 긴 기다림이었다.


20대 때 연애를 할 때는 아무리 일 때문에 피곤해도 아침에 절로 눈이 떠졌던 것 같다. 카톡이 와있을까 봐였을까. 그냥 모든 것들이 설레서였을까.

레진이 잘 굳어가고 있는지 보고 싶었는지 아침 일찍부터 깨서 레진 쪽으로 가봤다. 허접해 보이긴 해도 내가 만든 거라고 애착이 갔다. 다시 잠을 청하고 드디어 시간이 다가와서 몰드에서 레진을 꺼냈다. 두둥.



작고 하찮았지만 나에겐 영롱했다. 어느 정도 되긴 되는구나를 느끼고 다른 꾸밀거리들을 더 구매했다.

이번엔 작은 유리병에 바다를 넣어보고 싶었다.


유리병에 전과 같이 모래를 깔고 기본 세팅을 한 뒤 바다 색 레진을 부어 넣었다.

배를 한 척 넣을 거라 3분의 1까지만 바다색을 부었고 경화가 거의 다 되어갈 때 배를 올려 바다에 고정 시켰줬다.

이제 투명 레진만 부어버리면 끝나는 작업. 뭔가 부족함을 느껴 생각하다가 구름이 떠있으면 더 좋을 것만 같은 느낌에 뭘 넣어야 구름 같아 보일까 인터넷으로 오랫동안 검색을 했고 역시나 답을 찾았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천사점토를 쓰면 되는 거였다. 역시나 구름은 레진보다 가벼워 떠오를 것이기에 낚싯줄로 고정해서 레진 안으로 밀어 넣어 줬다.

결과는 아래 사진처럼 나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재료를 조금씩 사다 보니 적지 않은 돈을 쓴 것 같기도 하다.

언제 또 이렇게 열정이 생겨서 이런 아기자기한 것들을 해볼까 생각하던 30대 남성은 그래 좋은 경험이었다며 합리화를 시켰다.


이렇게 한동안 틈날 때마다 만들다 보니 만들어놓은 것들이 꽤나 많아졌었다. 지금은 여기저기 주고 이상한 것들은 버리다 보니 지금 남아있는 건 많지가 않다.

일이 바빠져 최근에는 나의 소소한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즐거운 취미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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