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갠뒤의 인왕산
사자성어 중에서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라는 뜻으로 백아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의 죽음을 슬퍼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에도 백아와 종자기는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었을 뿐.
겸재 정선은 이름이 김홍도, 신윤복과 같은 화가들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면 김홍도, 신윤복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는 예전의 다른 화가들과는 전혀 달랐다. 중국의 산수를 상상해서 그리던 전의 화가들과 달리 우리나라, 우리 땅을 그렸다. 그런 것을 우리는 "진경산수화"라고 부른다.
이 두 그림 들은 위에서 말한 그림들의 예시이다. 안견은 중국에 위치해있다고 있는 무릉도원을 상상해서 그렸다. 그러나 정선은 조선에 있는 금강산(풍악산)을 직접 보고 그렸다. 그것이 정선의 특징이다.
이제 인왕제색도에 대해 살펴보자. 인왕제색도는 인왕산에서 장마가 끝난 후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정선은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정선에게는 60년 지기 오랜 친구인 사천 이병연이 있었다. 비록 정선보다 5살 많았으나 친하게 지냈다. 그는 중국의 그림을 모았고 매우 안목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친구인 정선을 대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이병연이 금강산 근처로 발령이 나자 정선을 초대해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런 친구사이였다. 그러나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60년 동안이나 같이 지냈던 친구 이병연이 나이가 있어서인지 몸져누워버렸다. 그래서 정선은 그의 쾌차를 빌며 그가 죽기 며칠 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그림이 바로 인왕제색도이다.
정선의 바람과는 달리 이병연은 죽고 만다. 그러나 정선은 백아와 달리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백아와 정선의 차이점이다.
지금까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방문하거나 인왕산에 올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雖槎川死
謙齋繼畵
비록 이병연은 죽었지만
겸재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