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편

추운 겨울이 와도 소나무와 측백은 잎이 지지 않는다

by 서림

논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子曰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측백이 늦게 시듦을 안다"
힘들 때가 되어서야 기상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세한도 또한 그런 그림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김정희에게도 소나무와 측백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과연 김정희 에게는 누가 소나무와 측백 같았을까?


제자 이상적

추사 김정희는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제자들도 그를 자주 찾아뵈었다. 그러나 그가 제주도로 유배당한 1-2년 정도만 찾아뵈었다. 추사는 외로웠을 것이다. 심지어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위리안치형이니 말이다. 그러나 자주 뵈러 오는 제자 두 명이 있었다. 소치 허련과 우선 이상적이다.

제주 추사 유배지
이상적 초상화

이상적은 청나라에 사신단과 자주 방문했다. 그리고 중국의 서적을 많이 사서 추사에게 드렸다. 추사는 그런 이상적이 고마웠을 것이다.


우선시상(藕船是賞)

추사는 이상적이 책을 자주 가져다 주자 그는 보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한도를 그렸다.

세한도

세한도는 옆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다. 세한도라는 제목 옆에 조그마한 글씨로 우선시상이라고 적혀있다. "우선(이상적), 이거 보게"라는 뜻이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청나라로 들고 와 여러 학자들의 제화시를 받아왔다. 총 16명의 학자들이 제화시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맨 앞에는 장목의 글씨로 표지 제목을 달았다.

*제화시:그림의 제목과 관련된 시를 지어 화면에 적어 놓은 글.

권돈인의 세한도

그리고 추사의 친구 권돈인도 세한도를 그렸으나 추사의 것과 달리 소나무, 매화, 대나무(세한삼우)가 그려져 있다.


세한도의 소장가들


첫 번째 소장자는 당연히 이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상적이 죽은 이후 그의 제자인 김병선이 소장하고 그의 아들인 김준학이 이 그림과 시를 읽으며 공부했다는 기록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민영휘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의 아들인 민규식이 매물로 내놓아 추사 연구자 후지쓰카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인지라 공습이 자주 발생했다.

그러자 소전 손재형은 세한도가 일본으로 가버린 것을 알자 직접 일본으로 가서 후지쓰카에게 계속 세한도를 넘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후지쓰카는 계속해서 거절하였다. 하지만 10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 손재형이 매일 문안도 드리러 가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죽으면 손재형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양도해주겠다는 말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감동한 후지쓰카는 훌륭한 선비라며 대가 없이 주었다.

소전 손재형

손재형은 본국으로 돌아왔다. 얼마 있지 않아 후지쓰카의 소장품은 공습으로 모두 타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손재형이 아니었다면 세한도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치에 입문하여 기금 마련을 위해 세한도를 사채업자에게 저당 잡혔고 돈을 갚지 못해 소유권을 잃었다.

손세기
손창근

그리고 세한도는 손세기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의 아들 손창근이 본인의 이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되어있는 상태이다.


지금까지 세한도가 그려진 이유 그리고 세한도의 소장가들도 알아보았다. 그림 한 폭이 여러 소장가들 덕분에 멀쩡하게 보관되었다.

우리는 세한도를 그린 김정희도 기억해야 하지만 그 그림을 지켜와 준 여러 소장가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秋史畵歲寒

藕船受其畵

秋史藕船離

其義不變也

추사가 세한도를 그리고

우선이 그 그림을 받았네

추사와 우선은 떠났지만

그 뜻은 변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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