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Lei 와의 만남
한국에서 자녀무상교육을 준비할 때는 퇴근 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영어공부를 하며 바쁜나날들을 보냈었는데, 컬러지에서 문뜩 그때의 시간들이 떠오를때면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고요하고 평온했다. 9월학기에 시작하는 과들이 많다보니, 5월학기는 방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학기가 시작되자 나는 그동안 바래왔던대로 온통 영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에게 둘러쌓이게되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도 영어를 사용하는
80%의 인도 학생들에게 둘러쌓이게 되었다.
디자인과에서는 인도학생의 비율이 40%정도였던것을 감안할 때, 유아교육과는 유난히도 인도학생들의 비율이 높았다. 컬리지 수업 첫 강의 때, 교수님은 마치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말을 할 수 있는지 누군가가 타이머로 시간을 재고 있는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 빠른 속도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수업시간에는 인도식 발음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학생들 틈에서 그룹 활동을 해야만했다. 교수님의 빠른 강의속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져갔지만 인도학생들 특유의 억양은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인도 학생들의 영어를 듣고 있다가 나도모르게 손을 귀로 가져가 귀 안쪽을 문지르곤했다. 마치 귀에 있는 무엇인가를 닦아내면 잘들릴것처럼.
유아교육과에 속해있으면서 나는 내가 있어야할 곳에 있지 않은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느껴보게되었다. 한 학기후에 학과를 바꿀예정이었지만, 유아교육과가 자신이 선택한 최선의 길임이 분명해보이는 열정적인 학생들을볼때면 나도모르게 질투심이 들곤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목적으로 앉아있는 학생은 나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다른 학생들과 친분을 쌓지 않고 없는 듯 조용한 학생으로 하루하루 수업에 참여했다. 괜한 친분을 쌓았다가 한학기후에 작별인사를 해야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아교육과의 여러 수업들 중, 아동발달이론을 다루고 있어서 강의 내용이 가장 어려운 수업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짐을 챙기려는데 어떤 아시아계 학생이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들려왔다. 영어가 능숙하지않아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나이또래가 나와 비슷해보였고, 그 학생의 책상에는 강의 자료에 단어들의 뜻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프린트물들이 있었다.
'구글 문서 번역기능을 사용하면 클릭 한번으로 강의자료의 번역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데...' 나는 그 학생이 구글 번역의 기능을 모를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과의 상담이 끝날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교수님이 강의실을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 학생에게 다가갔다.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 혹시나 도움이 될지몰라서 이 기능을 알려주고 싶다고 얘기하고나서 나는 그녀에게 구글의 문서 번역 기능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중국인이었고, 반신반의하는 그녀에게 강의자료를 클릭 한번으로 중국어 번역본으로 다운로드받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매우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그렇게 Jun 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