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필 앞의 강백호

-2023년 2월, 겨울방학중 한국에서-

by 이신범

어느 나라나 그런 면이 있지만 일본은 특히 보수적이고 변화하지 않는 나라다. 그래서 아무 능력 없이 나이만 잔뜩 먹은 인간들이 그저 경력이 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변화와 개선을 추구하고 실력을 중시하며 살아온 나는 일본의 가소로운 꼰대들을 볼 때마다‘니까짓 게 뭐라 지껄이든 난들은 척도 안 한다 ‘하며 무시했지만 가끔은 그런 인간들에게 생각도 못한 일격을 당한 적이 몇 번 있다. 마치 신현필 앞에 강백호처럼 말이다.


지역예선을 거친 백호는 가끔 풋내기의 모습이 튀어나올 때가 있지만 사실상 전국급의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그런 백호 앞에 나타난 신현필은 참 우스운 존재였다. 사실 산왕의 감독이 아무런 노림수도 없이 선수를 출전시킬 리가 없기에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이미 상대를‘시골호박’이라 단정 지어버린 백호는 기본적인 판단력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현필의 체격조건은 그의 유일한 기술을 가공할 필살기로 만들었고 강백호의 ‘네가 뭘 하던 내가 이긴다’라는 교만함은 그가 갖고 있는 신현필보다 앞선 장점을 전부 봉인해 버렸다. 허세로 가득한 백호는 상대의 장점에 휘말려 똑같은 패턴을 알면서도 당했다. 상대를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백호는 자기 객관화와 상대분석을 시작했고 그 가공할만한 코어와 하체의 힘은 그가 자세를 낮추 고나서야 발휘되기 시작했다.


아무 실력도 없이 오랜 기간 자리를 차지해 온 사람이 갖고 있는 교활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섬나라근성으로 가득 찬 일본인의 교활함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정직함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나는 상대방의 노림수를 정면승부로 받아냈고 결국 나보다 무능력한, 아니 나보다 현실세계에서 노련하고 능숙한 이에게 휘말려버렸다.


‘아무리 하찮은 상대도 존중하라’라는 꼰대스러운 격언은 어쩌면 ‘교만에 빠지면 아무리 하찮은 상대에게라도 당할 수 있다’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 승부는 객관적 전력이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다.


넘버원 고교생을 꿈꾸는 태웅이는 에이스킬러 남훈의 반칙도 이겨내야 하고 넘버원 가드를 꿈꾸는 단신 태섭이는 장신가드의 조롱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대범함도 있어야 한다. ‘니까짓 게 감히 나에게’라며 오기를 부리면 전국의 강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핸디캡까지 가지고 있는 나는 늘 도전자의 마음으로 자기 객관화와 현실분석을 해야 하고 태웅이처럼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바운드 패스로 해주면 고맙겠어요 “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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