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결의

-2023년 2월, 겨울방학중 한국에서-

by 이신범

내 자랑을 좀 하자면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모두가 바보가 되는 군대 이등병 시절에도, 외국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로부터 머리 나쁘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현실파악도 손익계산도 상황판단도 빠른 나는 때로는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해내기도, 가끔은 남들이 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6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은 슬램덩크로 시끌시끌하다. 3년 전 보헤미안 랩소디로 시끌했던 시절, 퀸 노래 한곡 모르던 사람들이 프레디머큐리의상을 사고 영화관에 모여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그저 무언가에 열광하고 싶은 무리들의 공허한 유행놀이라 여겼던 나는 이 영화야말로 슬램덩크 고인 물들을 위한 선물이라 확신했으나, 슬램덩크는 이런 나의 편견마저 보기 좋게 산산조각 내버렸다.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대사의 의미조차 모르는 누군가가 강백호의 무모함에 공감할 수 있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십 년간 슬램덩크를 봐온 고인 물의 입에서 이제 내겐 링밖에 보이지 않아라고 외치며 던진 정대만의 3점 슛이 개인의 의지의 결과라는 말이 나오는 걸 듣고 난 경악했다. 정대만의 3점 슛은 채치수의 스크린아웃과 송태섭의 패스, 강백호의 오펜스 리바운드가 담긴 모두의 의지임을, 정대만이 눈앞의 링만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뒤를 멤버들이 받치고 있었기 때문임을 설명하고 나니 그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줬다. 같은 책을 수십 년간 읽어온 동료가 내가 당연하게 기억하고 있는 객관적 전후사정보다 특정대사 한마디에 꽂혀버리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생활한 지 햇수로 3년째다. 30대가 되어 외국생활을 시작한 나는 바보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차별에 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언어를 익히고 일본인의 섬나라근성에 저항하며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 일본어학교에서도 대학원에서도 나의 일본어는 외국인 중에 최상위였고 나의 주장과 논리는 일본인들보다 우월했다. 1,2년 차시절의 내가 가졌던 일본에 대한 편견에 꼭 들어맞는 일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날카로운 판단과 비판을 해왔고 그런 뜻이 아니라는 상대방의 말에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외치며 대항했다. 그리고 3년 차에 들어선 지금에서야 정말로 그게 아니었구나 하며 깨닫는 것들이 적지 않게 있다.


슬램덩크 뉴비에게 나는 마치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내가 외우다시피 바삭한 슬램덩크의 장면과 대사들을 가르쳐줬고 고인 물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정우성은 도전대상을 만날 때마다 웃었잖아 정우성이 시합에 지고 우는 것은 정우성답지 않은 것 같아라고 내 마음을 전했다. 대항과 경쟁이 아닌 함께하기 위해


북산의 안 선생님은 산왕을 이기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의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북산의 5인방은 저마다 가자미가 되는 것, 멤버들을 신뢰하는 것, 누군가가 적어준 넘버원 가드라는 한마디, 모두에게 패스하는 것과 모두의 기대를 받는 것으로 각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단호한 결의를 갖고 산왕을 무너뜨렸다.


나에게는 산왕과도 같은 일본생활을 이겨내려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웠던 장벽들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납득이 안 갈 때는 판단보다 인내를, 두려울 때는 노력보다는 도움요청을, 상처를 받았을 때는 저항보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 그로 인해 잃는 것이 생길 수도 있지만 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내게도 간신히 생겼다. 그들이 지녔던 단호한 결의, 이제 다시 코트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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