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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Sep 18. 2024

나의 환갑, 남편의 선물..

장인, 장모님의 산소를 벌초해 주었습니다.

올해 5월 초,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에 있는 친정집에서 진행할 예정인 친정부모님의 합동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는 저에게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에 처갓집 합동제사에 참여하는 처갓집 형제들한테 의견을 물어봐. 올해 추석 때에는 장인, 장모님 산소 벌초를 내가 하면 어떻겠는지.."


창원에서 전라북도 삼계면 선산까지 187km

창원의 우리 집에서 친정집 선산까지 187km. 휴게소를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2시간 20여분 거리에 있는 장인, 장모님의 산소를 벌초하겠다는 남편의 예상치 못했던 말에 놀라는 나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남편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올해 환갑인 당신한테, 내가 환갑선물로 장인, 장모님 산소를 벌초할게~"


2010년 6월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 2013년 2월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전라북도 삼계면 선산에 있는 두 분 산소의 벌초는 그동안 벌초를 대행하는 사람에게 경비를 지급하면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이 친정부모님 산소를 벌초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정오빠, 언니들은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하고 반가워했습니다.


9월 15일 일요일 오전 9시에 남편과 저, 그리고 딸과 아롱이는 부모님이 잠들어 있는 선산을 향해 출발을 했습니다. 동마산 IC 입구부터 차량이 정체되었던 탓인지 도중에 산청휴게소에 잠시 들렀던 까닭인지 부모님 선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낮 12시였습니다.


부모님 산소에 서둘러 과일과 전, 술과 커피를 차려놓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벌초를 시작하기 전에, 친정부모님 산소에 과일과 전, 술과 커피를 차려놓고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곧바로 남편은 예초기를 짊어지고 벌초를 시작했습니다. 친정부모님 산소 위에 위치한 할아버지 산소와 부모님 산소 아래에 위치한 작은 아버지 부부 산소도 아직 벌초가 되어 있지 않아서 남편은 장인, 장모님 산소뿐만 아니라 처갓집 조부, 처삼촌 부부의 산소까지 벌초를 했습니다.


장인, 장모님의 산소를 벌초하는 남편


맨 위 할아버지 산소, 가운데 친정부모님 산소, 제일 밑 작은 아버지 부부 산소


9월의 중순이었지만 햇볕은 무척 뜨거웠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이 자꾸만 눈으로 스며들어 따갑기까지 했습니다.


벌초를 끝낸 친정 부모님 산소


친정부모님 산소부터 벌초를 시작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남편은 모든 벌초를 마쳤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많은 땀을 흘리면서 고생을 했지만, 깔끔해진 부모님 산소 모습에 뿌듯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친정부모님 산소의 벌초를 마치고, 오후 2시가 넘어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시장을 봐서 비어있는 친정집에 오후 4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집안 안팎과 마당에는 많은 감나무 잎이 떨어져 있어서 많이 어수선해 보였습니다. 서둘러서 집안 청소를 했지만, 아직 무더운 날씨 탓인지 집 주변과 마당청소를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선선할 때 집 주변 청소를 하자고 저 스스로를 달래 봅니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남편은 오랜 숙원이었던 마당의 키만 훌쩍 키운 자목련의 나뭇가지를 잘랐습니다. 저는 마당과 수돗가 주변에 떨어진 감나무 잎을 정리했습니다.


10년 넘게 엄청나게 키를 키웠던 자목련의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수돗가 주변에 떨어진 감나무 잎을 정리했습니다.


무성하게 풀이 자라 있는 모습에서 말끔하게 정리된 친정부모님의 산소를 보고,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친정의 형제들..  

친정집 안과 밖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정돈한 후 저는 모처럼 뿌듯한 마음을 안고 떠나왔습니다.


추석날 저녁, 창원의 집에서 본 보름달



마누라의 환갑 선물로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물질적인 선물이 아닌, 장인 장모님의 산소를 벌초해 준 남편에게 저는 오래도록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창원의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맞이한 추석. 밤하늘 높이 보름달을 보면서 저의 마음은 유난히 보름달처럼 빈틈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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