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용정리 밭

지금도 문득 떠 오르는 추억 속의 용정리 밭

by 한명라

저에게는 다섯 명의 오빠, 다섯 명의 언니, 그리고 저, 여동생이 하나 있지요. 오늘은 오빠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네요.

어릴 적 저는 언제나 우리 오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고 멋진 남자들이라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특히 넷째 오빠, '외유내강'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잘 생기고, 부드러운 외모인 탓에 많은 뭍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그 어떤 어려움도 떳떳하게 헤쳐나가는 강인한 정신력,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유머, 그리고 구두쇠처럼 철저하게 절약하는 부분도 있고, 분위기에 따라서는 기분도 낼 줄 아는, 저에겐 유난히 마냥 자랑스러운 그런 오빠지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미래의 제 남편으로는 꼭 넷째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그러면 그 사람이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하여도 결코 망설이지 않고 그 사람을 선택하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지요.


넷째 오빠는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부터는 새벽 기차를 타고 저희 고향에서 100여 리 떨어진 전주로 통학을 했지요. 그 지역에서 명문이라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빠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서울의 야간대학에 진학을 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서 직장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해결을 한, 그래서 그 밑에 언니들과 저는 그 오빠의 뒤를 따라 줄줄이 야간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누구도 그렇게 하라는 강요나 가르침이 없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을 감안을 해서 본인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었지요.

오빠가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 우리 고향에는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구입한 밭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 밭을 가야 한다면 널찍한 냇가를 끼고도는, 리어카나 트럭도 다닐 수 있는 널따란 길이 있었고, 우리 집에서 그냥 도보로 가려면 논둑길이 태반인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는 길이 있었지요. 도보로 걸어서 족히 30여분은 가야 하는 그 용정리 밭. 그 시절엔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졌는지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루에 엄마가 써 놓은 쪽지가 하나. 큼지막한 글씨로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놓은 내용은 '학교에서 오는 대로 새참을 챙겨서 용정리 밭으로 오너라...' 그러면 저는 감자나 고구마 등을 삶아 가지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철길도 건너고, 넓은 평야처럼 펼쳐진 논들도 지나고, 밤나무들이 무수히 자란 작은 언덕을 넘어 손바닥만큼 작은 저수지(방죽)를 지나 엄마가 계시는 용정리 밭으로 갔지요.

어린 저에게는 꽤 큰 규모의 면적으로 느껴졌던 그 용정리 밭에 엄마는 고구마도 심고, 고추도 심고, 옥수수나 수수, 어쩌면 그리도 골고루 다양한 곡식들을 심으셨는지... 골마다 참외나 물외도 심어서 아직 제대로 여물지 않은 참외를 따 먹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서 서울의 언니, 오빠들의 자취집에 가시지 않거나,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사는 외갓집을 못 잊어 그곳을 가시지 않을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그 용정리 밭에서 김을 매시고 뭔가를 부지런히 뿌리고 가꾸셨습니다.

용정리 밭 바로 옆에는 기찻길이 나 있어서 행여 리어카라도 끌고 밭에라도 가야 한다면, 리어카는 기찻길 건너편에 세워 두고 밭에서 거둬들인 여러 가지 곡식들을 기찻길 건너편으로 날라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지요.


넷째 오빠의 대학교 여름방학. 오빠는 직장에는 여름휴가를 내고 대학교 같은 과 학생들이 전남 여수로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수를 기차를 타고 가려면 당연히 용정리 밭을 지나야 했지요. 그때 오빠도 일행들과 기차를 타고 고향을 지나게 되었는데, 혹시 엄마가 밭에서 일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차 속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 밭을 유심히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밭 한복판에서 엄마는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시고, 그 뜨거운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도 밭고랑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부지런히 풀을 매고 계시더랍니다.

순간, 오빠는 달리는 그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엄마에게로 달려가고 싶었다는 오빠의 그 말이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의 마음에 왜 그리도 찡하게 다가왔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기차는 쉬지 않고 자꾸만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갔을 테고, 한 개 하얀 점(.)으로 멀어지는 엄마를 바라보던 넷째 오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엄마!!!" 하고 소리 높여 부르고도 싶었다는 오빠의 그 마음이 제 마음인 양, 저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 까지 그때의 그 벅찬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글쎄요, 이번 친정에서 만난 그 넷째 오빠, 흰머리도 많이 나고, 정말 어릴 적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오빠가 이 오빠인가 싶을 정도로 60대 중반이 되어 버린 넷째 오빠는 그날의 그 가슴 저린 사연을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지..

다음에 만나면 확인을 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