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는 삶
자식들에게 빚을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
2019년 3월, 광주에 있는 삼성전자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후준비교육을 6회에 걸쳐 진행을 했습니다. 노후준비는 한 가지만 완벽하게 준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건강관리, 여가관리, 대인관계, 재무관리 등 4가지 영역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날은 마지막 교육을 진행하는 날이었습니다. 재무관리 교육을 하면서 저의 친정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농업중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근무하셨다고. 농협에 근무를 하셔서 그 누구보다 재무관리를 잘하실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자식들 교육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고, 월급봉투도 본인 혼자 알아서 다 사용을 했기 때문에 우리 엄마는 평생 동안 아버지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몰랐다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여기저기 빚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아들들이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빚을 갚았다고. 우리 아버지의 노후준비를 위한 재무관리는 자식을 열두명 낳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세상을 떠날 때 절대로 빚을 남기지 않고 떠나야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께도 절대 자식들에게 빚을 남기지 않도록 재무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교육을 마치고 나서 어느 한분이 저를 이렇게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강사님~ 너무 아버님을 미워하지 마세요. 아마 아버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저는 그분의 그 말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는 저의 아버지를 절대로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런 일도 있었다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를 한 것이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행동을 하면서 깨우침을 주기도 합니다.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긍정적인 행동으로 깨우침을 주기도 하지요.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고요.
저에게 부정적인 삶의 모습으로 깨우침을 준 사람은 아버지이시고, 긍정적인 삶의 모습으로 깨우침을 준 사람은 어머니이십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오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빠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오빠들이 전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아버지께서 농협에 근무를 하셨기 때문에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오빠들과도 기분 나쁜 모습으로 부딪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50대 초반에 농협에서 정년퇴직을 한 이후부터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게 되면서 자식들의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잔소리를 하는 것을 지켜보고 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셋째 언니부터 넷째 언니, 다섯째 언니, 그리고 막내 오빠와 저, 동생이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아버지는 밤에 전깃불을 켜놓고 공부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넷째 언니가 작은 방 방문을 얇은 이불로 가려서 불빛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공부를 하던 때였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쫓아와서는 '감히 아버지가 하는 말을 우습게 아느냐'라고 넷째 언니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또 넷째 오빠가 기차 통학을 하다가 전주에서 자취를 할 때였습니다. 오빠는 주말을 이용하여 쌀과 김치를 가지러 집에 왔습니다. 어둑해지는 저녁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챙겨 주는 쌀부대와 김치통을 들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려고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버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그런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다섯째 언니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였습니다. 넷째 오빠가 마당에 쌀부대를 내던지며 화를 내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때 엄마가 오빠가 내던진 쌀부대를 챙겨 들고 오빠를 쫓아가서 달래서 쌀부대를 자취방으로 가져가게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인가 넷째 오빠와 그날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넷째 오빠는 제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빠가 쌀부대를 던져버리고 집을 뛰쳐나갔던 그다음 날이 월요일이었는데, 전주고등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오빠를 누군가 찾아왔다고 알려 주더랍니다. 그래서 나갔더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버지께서 계시더랍니다. 고향집에서 전주까지 일부러 오빠를 찾아오신 거였지요. 그리고 오빠에게 어제 그런 모습을 보여주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시더랍니다.
넷째 오빠는 제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오빠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 아버지께서 가족소풍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정되어 있는 소풍 하루 전날에 소풍장소에 먼저 가서 돌틈이나 풀 속에 보물찾기 쪽지를 숨겨 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소풍 당일 날 보물 찾기를 해서 미리 준비한 학용품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넷째 오빠가 보물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으면 어디를 찾아보라고 조용히 귀띔해 주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넷째 오빠를 통해서 저는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오빠들의 한참 아래인 여동생들이 아버지의 정년퇴직 이후에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을 몸으로 직접 겪어야 했던 반면, 위의 오빠들은 그런 일을 별로 겪지 않아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2010년 6월, 요양원과 두 차례 병원을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89세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삼계면 봉현리 선산의 할아버지 묘 아래 잠이 드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나서 엄마께서 오빠들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 누구, 누구에게 아버지가 빚을 진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오빠들은 아버지에게 빚을 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빚을 준 사람들은 그 돈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빚을 갚기 위해 찾아온 오빠들에게 오히려 '고맙다'라고 하면서 받아야 할 돈보다 조금 깎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본 저의 남편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참, 장모님이나 처남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다."라고요.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남에게 빚을 지면 절대 안된다. 비록 아버지가 진 빚이라도 갚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식이 열둘이나 되면서 아버지 빚도 안 갚는다고 자식들을 욕한다.'라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다짐, 또 다짐을 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남에게 빚을 지지 않겠다고, 자식들에게도 빚을 남기지 않겠다.'라고요.
어쩌면 우리 아버지는 이렇듯 애써 부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저에게 너는 절대로 이렇게 살지 말라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그런 희생정신이 아주 많은 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습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엄마를 힘들게 하시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