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가족계획도 없었고, 외할머니가 나 하나만 낳고 아들을 낳으려고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이가 안 생겨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생길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낳다 보니 열둘이 되어버렸다."
그랬다고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무남독녀 외동딸로 낳고 나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집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진 절이나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바위 앞에서 백일기도 드리기를 여러 번이었다고 했습니다. 얼음이 어는 겨울에도 얼음을 깨서 목욕재계를 하고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런 외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에도 생기지 않았던 아이가 엄마에게 열둘이나 생겼던 것입니다. 어쩌면 외할머니의 아들을 낳기 위한 백일기도의 효력이 모두 엄마에게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외할아버지가 아들을 낳기 위해서 몇 명의 첩을 집안에 들였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집에 들어온 첩들에게 직접 해코지를 하지 않았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고는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첩들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열두명의 자식을 낳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가족계획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의료기술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서 임신중절을 시도했다가 산모의 목숨까지 잃는 일이 허다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 옆 동네의 어느 부잣집 부인이 아들 하나, 딸 둘 3남매를 두었는데 네 번째로 생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임신중절을 시도했다가 그 부인까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부인이 3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나자 남편은 곧바로 둘째 부인을 집안에 들였답니다. 그 둘째 부인은 그 후로 4남매를 낳았는데 본 부인 소생의 3남매를 어떻게나 구박을 했는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 사실을 알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만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고, 둘째 부인의 이간질로 본 부인이 낳은 3남매를 심하게 대했고 용돈조차 제대로 주지 않아서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했다가 행여나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그 많은 자식들을 어떻게 하냐고, 아버지 말대로 머슴살이 식모살이 보낼 것 같아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시도는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열두 자식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돌봐줄 수도 없었던 까닭일까요? 아니면 엄마의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봐 왔던 까닭일까요? 엄마는 언제나 그 많은 자식들을 위한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집에서 도보로 왕복 30분 거리에 있는 오수 원불교 교당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고, 기도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 부뚜막에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을 커다란 원을 그려 모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기도하는 모습은 어린 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고 했습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 엄마가 처한 상황이 전혀 감사할 일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도 엄마는 무엇이 그리도 감사한지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열두 자식들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하게 잘 자라 주어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딪쳐도 "이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을텐데, 이만하면 감사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가 열두 번 물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라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자기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힘든 역경을 이겨내는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모두 이겨 낼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 50대 후반의 나이가 된 제가 그 시절의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엄마가 자기 스스로에게 "감사하다고, 나는 잘하고 있다고, 나는 내가 봐도 대견하다'라고 주문을 외우듯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지금 너무 힘들다고..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대로 그 자리에 무너져 주저 않을까 봐, 그렇게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면 영영 일어설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스스로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 봅니다.
엄마는 당신이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이유를 저에게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서 나무 주변의 뿌리가 있는 곳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고. 사람은 나무처럼 뿌리가 없다고 해서 함부로 생각하거나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뿌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미치는 영향은 끝이 없는 허공의 어느 곳까지라도 미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을 위해서 좋은 기운으로 정성을 다 해서 기도를 하고, 또 주변에 좋은 일을 행하면 자식이 어느 곳에 있든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그 정성과 기운이 자식에게 가 닿아서 하는 일이 잘되게 도와준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