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이 된 엄마의 마지막 편지

외손자에게 답장으로 보낸 엄마의 마지막 편지..

by 한명라

2014년 9월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딸이 미국에 있는 넷째 언니 집에 3개월 정도 다니러 가 있을 때였습니다.


딸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엄마, 혹시 외할머니께서 형재 오빠에게 편지 쓴 것을 아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편지?"


할머니께서 노트에 연필로 편지를 쓰셨는데, 손에 힘이 없어서 그런지 글씨가 흐려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편지 내용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 편지를 사진으로 보내고 내용은 따로 문자로 보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2014년 9월이면 엄마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1년 7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고서야 저는 딸에 도움으로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엄마의 마지막 편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줄도 채 안 되는 편지를 읽는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참 동안 울고 말았습니다.



한 장의 노트에 연필로 외손자에게 쓴 엄마의 마지막 편지..


사랑하는 ‘형재’에게


역시 세 살 때부터 영리하고

총명하던 모습이 계속 지녔고,

초지일관 내내 간직하여,

많은 공부 소원 이루고, 금의환향 부디 바라노라.


손자에게, 폐인 된 외할미를 지켜봐 다오.


부디 좋은 성적, 대인되어 금의환향 성취하고, 대한민국 지킬지니라.

소원이다.

외할머니 씀




엄마의 편지가 어떻게 미국의 외손자에게 가게 되었는지 나중에 넷째 언니와의 전화 통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께서 수원의 요양원에 계실 때 넷째 형부는 이민을 간 후 한 번도 외할머니를 뵙지 못한 둘째 아들에게 "외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데 편지라도 써서 보내보겠니?"하고 전화를 했답니다. 그때 둘째 아들이 편지를 써서 외할머니가 외갓집에 계시지 않아서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 우편봉투에 수신인 주소를 비워 놓은 채 봉함을 하지 않고 연휴 때 넷째 언니의 집으로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마침 넷째 형부께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고, 편지를 우편으로 부치는 것보다 직접 가지고 오는 것이 더 빨리 전달할 수 있겠다 싶어서 복사본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수원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께 전달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넷째 형부는 외손자의 편지를 받고 즐거워하는 엄마께 "어머니! 형재의 편지를 잘 보셨으니 답장은 써 주셔야지요?"라고 요청을 하여 외손자에게 답장 쓰는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그 편지를 둘째 아들에게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넷째 사위의 요청으로 미국에 있는 외손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엄마..


둘째 외손자는 외할머니의 그 편지를 읽고 내용 중에 ‘폐인 된 외할미를 지켜봐 다오..’라는 부분을 읽고서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점을 자책을 하면서 한참 동안 오열을 하였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워싱턴에서 직장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 그 아이가 넷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엄마, 외할머니께서 저에게 보내 주신 편지를 찾아봐 주세요." 하더랍니다. 아빠에게 전달받은 외할머니의 편지를 읽고 나서 보던 책에 끼워 놓고 그냥 워싱턴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자신이 너무 힘이 들어서 외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위로가 될 것 같다고 하더랍니다.


넷째 언니는 둘째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나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뒤적이다가 마침내 책 속에 꽂혀있는 엄마의 편지를 발견하였고, 서둘러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엄마의 편지를 읽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넷째 언니가 엄마의 편지를 몇 줄도 채 읽지 않았는데, 아들은 "엄마 이제 되었어요. 할머니의 편지 내용을 들으니 괜찮아졌어요. 이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더랍니다.


그 후, 아들은 집에 왔을 때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소중하게 잘 챙겨서 워싱턴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 가장 잘 보이는 벽에 외할머니의 편지를 붙여 놓고 아침, 저녁으로 외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서 힘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외할머니께서 편지 마지막 부분에 소원하시고 부탁하신 내용 '부디 좋은 성적, 대인되어 금의환향 성취하고, 대한민국 지킬지니라. 소원이다.'를 꼭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고,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낸다고 했습니다.


마침 그러던 중에 저의 딸이 넷째 언니와 함께 외사촌 오빠의 워싱턴 집을 방문하여 외할머니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또 저에게 사진으로 편지와 내용을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외손자의 방 벽에 붙어 있는 엄마의 마지막 편지(가운데)


이민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2013년에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한국에 들어와서 외할머니를 찾아뵙겠다고 건강하시라는 외손자의 반가운 편지를 받았지만, 엄마의 시간은 더 이상 외손자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엄마께서 2013년 2월 17일 세상을 떠나신 후,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외손자는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100일이 되는 날짜에 맞추어 아빠(넷째 형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외할머니의 산소를 찾아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때 외손자는 막내 이모에게 자신의 장래 계획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대학원 공부를 마치면 박사과정을 밟을 거라고요. 그리고 미국에 있는 대학의 교수가 되고 싶다고. 교수가 되면 더 노력해서 한국의 대학에 교환교수로 오겠다고. 그렇게 하면 편지에 쓰신 외할머니의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답니다.


지금 미국에 있는 외손자는 듀크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019년 지난해에는 결혼도 했습니다. 외손자는 자신과의 약속과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어쩌면 힘이 들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면 액자에 넣어 자신의 방에 세워 놓은 외할머니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서 더욱 힘을 내어 마침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갈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꼭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액자 속에 넣어 보관되어 외손자에게 힘을 주는 엄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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