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명라 Nov 22. 2021

올해 김장을 준비하다 보니...

직접 농사를 지어 담그던 친정엄마의 김장 김치

오늘 아침, 다음 주 월요일인 11월 29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절임배추 20kg짜리 3박스를 예약 주문을 하고 배추값도 입금을 하였습니다.  


1991년 3월에 결혼을 한 저는 결혼하던 그 해에만 친정언니가 담가주는 김장김치를 가져다 먹은 이후로는 이제까지 해마다 저의 손으로 직접 김장김치를 담갔습니다.


2020년 지난해에는 결혼 이후 처음으로 남편과 아들이 절임 배추에 켜켜이 양념 속을 넣어 주어서 그 어느 때보다 쉽고 빠른 시간 내에  김장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중에는 강의를 하러 다니는 직업인지라, 김장을 하기 위해 스케줄을 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침 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일찌감치 그때 김장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제 몇 년째 이용하고 있는 강경에 있는 젓갈집에서 간자미 젓갈과 추젓을 주문하고, 일요일인 어제 사다 놓은 마늘과 생강도 미리 껍질을 벗기는 일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김장을 하기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50여 년 전 저의 어린 시절에 친정엄마께서 김장을 담그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2021년 지금의 김장을 담그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엄마는 봄날이면 나무궤짝에 담긴 조구(조기)를 사서 항아리에 넣고 켜켜이 소금을 뿌리면서 미리 김장을 위해 젓갈을 담갔습니다.


또 9월이면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쌀 한 가마니 값을 주고 산, 우리 집 앞의 커다란 뽕나무가 봇도랑을 따라 죽 줄지어 서 있는, 손바닥만큼 작은 텃밭에 미리 배추와 무를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배추와 무의 새싹이 솟아나고 자라기 시작하면 밭고랑에 앉아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일일이 그 싹들을 미리 솎아주어야 했습니다. 새싹을 솎아주는 일은 단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날 저녁이면 어린 새싹을 데쳐서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나물반찬이 상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날씨가 가물기라도 하면 물조리로 물을 길어다가 물을 주기도 하고,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일일이 벌레를 잡아가면서 배추농사를 직접 지었습니다.


11월 하순이나 12월 초순 일요일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 그동안 정성을 들여 농사를 지은 배추와 무를 수확했습니다.


텃밭에서 수확하는 그때의 배추는 유난히 뿌리가 굵었습니다. 굵은 배추 뿌리는 우리들의 요긴한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지요. 잔뜩 흙이 묻은 배추 뿌리를 칼로 쓱쓱 깎아 먹으면 들한 맛과 알싸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무를 수확하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무보다 훨씬 미끈하고 하얗던 그 시절의 무. 무 잎이 달린 윗부분에는 유난히 연두색 부분이 많았습니다. 연두색 부분은 단맛이 훨씬 깊어서 흙이 묻은 부분을 바지에 쓱쓱 닦아내고 이빨로 껍질을 벗겨내고 우적우적 먹는 재미도 있었지요.


그렇게 수확을 한 배추와 무를 하나 가득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운반했습니다. 마당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펌프가에서 배추를 가르고 소금을 뿌려 숨을 죽인 배추를 커다란 소쿠리와 채반과 함께 다시 리어카에 싣고서 봇도랑으로 배추를 씻으러 갔습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겠지만 1970년의 우리 동네 시냇물은 오염이 안된 깨끗한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봇도랑으로 배추를 씻으러 가면 우리보다 앞서 배추를 씻으러 온 사람들의 리어카와 뒤이어 배추를 씻으러 온 사람들의 리어카 여러 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봇도랑가에 줄지어 서 있었지요.

그렇게 리어카들이 오손 도손 다정한 대화를 나누듯 서 있던 그 시절 김장철의 고향의 봇도랑 풍경을 요즘에는 쉽게 목격할 수 없습니다.


엄마는 추운 겨울 날씨에 두툼한 겨울 몸빼바지를 입었고, 긴 목도리로 목과 머리까지 감싼 모습으로 김장을 담그기 위해서 집 안팎으로 종종걸음을 치셨습니다.


채반에 깨끗하게 씻어놓은 배추들을 켜켜이 쌓아놓고 물기를 빼는 동안 봄부터 준비했던 젓갈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양념들을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꽃 모양으로 썰은 예쁜 당근, 알싸한 맛의 갓, 무채, 굴, 밤, 잔파, 갓 볶은 깨소금... 그것들이 한데 섞여 절묘한 맛을 선보이는 신기로움. 국민학교에 다니던 저와 동생은 배추에 양념 속을 넣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 한입만, 나 한입만..."하고 모이를 받아먹는 제비 새끼처럼 크게 입을 벌리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담근 김장김치를 그릇에 담아 앞집, 옆집, 뒷집에 신명 나게 가져다주던 일도 저와 동생이 해야 했던,
김장을 담그는 날의 가장 중요하고 신바람 나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서쪽으로 난 부엌문 앞, 탱자나무 울타리 밑에 묻어 둔 김치 항아리에는 앞으로 한참 후에나 먹을 짠 김치가 담긴 항아리, 이제 바로 꺼내 먹어야 할 배추김치가 담긴 항아리, 그리고 무와 풋고추, 배와 사과가 둥둥 떠 있는 동치미가 담긴 항아리, 총각김치가 가득 담겨 있는 김치 항아리들이 줄 지어 위치를 했습니다.

김장을 끝내고 나서 묻어 놓은 그 김칫독들을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았을 엄마의 그 마음이 저에게는 지금에서야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김장김치를 담그던 기억을 떠 올리다 보니, 그 시절 엄마의 솜씨를 흉내 내면서 올해는 더 맛나게 김장김치를 담가가야 할 텐데요.


그래야 지난주 일요일에 결혼을 하여 새로운 가족이 된 며느리에게도 맛난 김장김치를 기분 좋게 건네줄 수 있을 텐데요.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 오빠는 행복을 주는 개그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