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한명라'인 이유

엄마께서 저에게 남긴 커다란 숙제이자 빛나는 유산입니다.

by 한명라

저의 나이 50이 넘은 지금도 저의 이름을 알게 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정말 이름이 '한명라'세요? 본명이에요?"

"흔하지 않은 특이한 이름이네요."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겠어요."

"일부러 개명한 이름인가요?"
"참 예쁜 이름이네요."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남녀공학을 다녔던 저는 짓궂은 남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시절,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 표어가 한창 매스컴을 타고 있을 때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저의 뒤를 따라오던 남학생들이 저를 발견하면 일부러 "쟈는 시집가서 두 명도 낳지 말고, 한 명만 낳으라고 이름을 '한. 명. 라'라고 지었 보다"하고 낄낄대며 놀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들어도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고 놀림의 정도가 심하면 그 남학생들을 매서운 눈길로 쏘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름에 엄마의 소망과 깊은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남들이 제 이름을 가지고 아무리 놀려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를 홍보하는 데 확실한 도구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1982년이었습니다. 신입생 환영회를 하기 위해 같은 과 선배들과 저와 같은 새내기들이 강의실에 모였습니다. 교수님, 선배님들의 환영인사가 있고 나서, 신입생 한 사람씩 앉은 순서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고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순서가 되었을 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한. 명. 라'라고 합니다. 조금은 특이한 이름이지요? 사실은 저희 집 형제가 열두 남매이거든요. 그중에서 저는 열한째인데요, 저희 엄마께서 저를 낳고 나서는 '너는 시집을 가서 둘도 낳지 말고, 꼭 하나만 낳거라'하고 '한명라'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 저의 소개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었고, 선배들이나 교수님들 중에는 저의 이름을 오래도록 확실하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이 "한명라(韓明羅)"가 된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에 아버지께서는 다른 고장으로 전근을 가셔서 하숙 생활을 하셨던 까닭에 주말이 되어야만 집에 다니러 오셨답니다.


그때 엄마는 이제까지 낳은 5명의 딸들보다 유난히 우량아로 태어난 저를 보시고 마침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는 큰 오빠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셨다고 합니다.

"비록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지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크게 빛낼 수 있는 이름을 짓거라."


그 당시 큰오빠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문학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큰오빠는 그 후 1987년에 시인으로 등단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도 아닌 큰오빠가 엄마의 부탁으로 고심 끝에 지어 준 저의 이름이 나라 한(韓), 밝을 명(明), 비단 라(羅) "한명라"가 된 것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밝은 비단처럼 빛을 낼 수 있을 만큼, 그 이름을 널리 떨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엄마의 염원이 담긴 이름인 것입니다.


제가 철이 없던 때는 주변에서 남자아이들이 놀려대는 바람에 왜 내 이름을 이렇게 지어서 놀림감을 만들었을까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과 남편에게서 못 배웠다고, 당신 친정에 형제 하나 없다고 함부로 무시당하며 많은 자식을 낳고 키우셔야 했던 엄마는 자신이 평소 이루고 싶었던 그 꿈과 간직했던 소망을 저의 이름에 담아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생전의 친정엄마는 저의 이름에 대해서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랜만에 친정을 방문한 저를 보고 친척 아짐들이 "시방 쟈가 누구여? 몇째여?"하고 물으시면 이렇게 대답하시고는 했습니다.

"우리 열한째 '명라'여. 쟈를 낳을 때 어찌나 애기가 크던지. 여자로 태어났지만 커서 이 나라에 밝은 비단처럼 이름을 떨치라고 이름을 '명라'라고 지어주었구먼. 몇 년 전에는 그 어렵다는 공인중개사 시험도 합격하였구먼."

그럴 때마다 저는 아무 자랑할 것도 없는 평범한 딸을 친척 아줌마들에게 열심히 자랑하는 엄마를 보면서 부끄럽고 황송한 마음을 차마 숨길 수 없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5월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같은 군내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에 학교 대표로 사생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앞집에 살면서 우리 집 마당의 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효순이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우리 효순이 옷을 빌려 줄테니까 내일 미술대회에 갈 때 입고 갈래?"

그것은 평소 언니들이 입다가 작아진 낡은 옷만 물려 입는 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효순이 엄마의 배려였습니다. 그때는 가슴에 예쁜 꽃이 수놓아져 있고, 양쪽 소매 끝에 레이스가 화려하게 달려 있는 하얀 블라우스가 유행할 때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새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효순이를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옷을 빌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습니다.


"네가 거지도 아니고, 왜 남의 옷을 빌려 입어야 허냐? 시방 옷이 없어서 벗고 댕기냐?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하니라. 시방은 네가 언니들 헌 옷을 물려 입고 댕기지만, 호랑이가 열두 번을 물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고 열심히 살다 보면, 지금의 어려운 때를 이야기하면서 웃을 날이 온다. 아무 노력도 없이 넘의 것이나 부러워 허지 말고, 나중에 그 사람들이 너를 부러워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 헌다."


그 당시에는 예쁜 블라우스를 입고 미술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엄마의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냥 서운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그날 엄마의 그 말씀들이 저에게 영원한 메아리가 되고 커다란 깨우침이 됩니다.


비록 지금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하고 힘들어도 자신의 노력도 없이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하시던 엄마.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끄떡 없다시던 엄마.


너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떨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라시며 이름을 지어 주신 엄마. 엄마의 그 큰 뜻을 저는 십 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엄마께서 제게 주신 그 뜻만은 영원히 잊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누군가가 제 이름을 부르는 순간순간마다 저의 이름에 담긴 그 뜻을 되새김하면서 엄마의 딸로서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당당한 딸로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서 찾은 라(羅)에 대한 설명입니다.
* 羅 총 19획 : 그물 라(나) ㉠그물 ㉡그물 치다 ㉢그물질하다 ㉣비단, 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