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2001년 10월, 당시 경향신문이 창간 55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빛내고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되는 55명을 선정했다. 개신교에서는 金鎭洪 목사가 뽑혔다. 신학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김진홍 목사는, 가장 존경하는 목사,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 부문에서 항상 상위 그룹에 오를 정도로 신학생들은 그를 따르고 존경했다. 그를 따르던 신학생들이 한국 개신교를 이끌 세대가 되면서, 김진홍 목사가 극우적 노선을 택하든,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든 그의 뜻을 따르게 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그만큼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2013년 5월호 월간 조선 뉴스룸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金鎭洪 목사”라는 제목으로 이명박과 김진홍 목사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김진홍(金鎭洪) 목사는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의 ‘절친’이자 ‘멘토’로 알려져 있다. 같은 1941년생으로, 한때는 직접 정치세력을 만들어 이명박 정부 출범에 공을 세웠다. 17만 명에 달하는 보수우파 최대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아 정권교체에 앞장섰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이자 ‘멘토’인 김진홍 목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에 공을 세웠으며,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 정권교체에 앞장섰다는 이야기다. 한국개신교의 중심인물로서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권교체의 선봉에 선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그가 이처럼 한국개신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은 70년대 ‘청계천 빈민 선교’와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었다는 행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조선일보, 1974년 2월 7일)
김진홍 목사는 1941년 경북 청송에서 출생했다. 6.25 당시 김진홍 일가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집행을 사흘 앞두고 국군이 진입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진홍은 1971년 신대원 졸업 후 10월부터 서울 청계천에 ‘활빈교회’를 세워 3년 남짓 사회적 약자들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33세 때인 1974년 엄혹했던 박정희 군사정권하에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3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출옥 후에는 청계천 철거민과 함께 경기도 화성 남양만으로 내려가 간척사업을 통해 ‘두레마을’을 세웠다.
그의 행적은 1980년대 초부터 수기, 보도 기사, 드라마 (mbc “새벽을 깨우리로다”), 영화 등으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알려졌다. 1996년 9월에 경향신문에 연재된 김진홍 목사 수기의 제목을 보면, “어른들을 놀래킨 당돌한 꼬마”(9.19), “잡초처럼 사는 민중들 곁으로”(9.24), “둑방촌 전도사겸 넝마주이”(9.26), “시련 속에 다져진 믿음의 반석”(9.30), “1.7평 감방이 준 깨달음”(10.1) 등이다. 메스컴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행적은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개신교 지도자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김진홍 목사를 양심 있고 청렴한 목사라는 평판을 심어 주었다.
유신정권 하에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그가, 정권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의 가신이었던 김종필과 만나면서 부터였다. 1987년 10월 10일, 창당을 준비하고 있던 김종필이 김진홍 목사를 만나기 위해 남양만의 ‘농민선교훈련원’ 기공식에 참석했다. 이 만남을 두고 당시 언론은 “김목사는 공화당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적이 있어 김위원장의 이날 방문은 묘한 만남인 셈”(조선일보, 1987년 10월 11일 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거북한 만남이었다. 80년대 초부터 널리 알려진 김진홍 목사의 명성을 익히 알고 김종필이 손을 내민 것이었다. 김진홍 목사 역시 개신교의 확장과 입지 강화를 위해 권력의 손을 잡았다. 종교와 권력의 세속적인 셈법이 접점을 만들었다.
1995년 3월, 이명박 출판기념회에 초청되었던 김진홍 목사는 인사말에서,
“처음부터 이명박 의원을 서울시장에 앉혔으면 최소한 다리가 끊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한겨레」 1995년 3월 23일 자)이라는 발언을 통하여 이명박의 멘토임을 부각시켰다. 이렇듯 김진홍 목사는 김종필, 이명박을 비롯하여 정관계 인사들과 친밀하게 교류를 이어갔다. 정관계 인사들이 김진홍 목사의 손을 잡은 이유는 수백만명의 신도 수를 가진 개신교의 힘을 빌려 선거에서 이겨보겠다는 전략적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개신교는 정치권력을 교세 확장의 방편으로 삼아 기독교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고자 하였다.
1999년 10월 3일, 김진홍 목사는 교회 창립 28주년을 맞아 담임목사직에서 사임하고 본인이 개척한 구리시의 두레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구리 두레교회 역시 김진홍 목사의 명성과 정권유착에 힘입어 큰 교회로 성장하였다. 호화로운 교회 건축 과정에서는 건물 높이 제한 위반, 용도 위장, 기반 시설 부담금 면제 등 각종 불법과 특혜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시의회와 지역사회는 이를 둘러싸고 문제를 제기하였고, 시정 요구와 법적 대응 방안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갔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창설
김진홍 목사의 영향력 발휘는 2005년 11월 7일,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창설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김진홍 목사는 뉴라이트의 뿌리가 기독교라고 주장하면서 창설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지향한 뉴라이트 운동의 뿌리는 기독교이며, 더 나아가 칼빈 사상입니다. 칼빈 사상에서 프로테스탄트 즉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뉴라이트 운동으로 건강한 교회와 사회를 꼭 이루겠습니다.”(크리스찬투데이, 2006/08/31)
김진홍 목사는 뉴라이트 운동의 뿌리가 기독교 칼빈 사상에 있다고 강조하며, 교회가 자본주의 윤리와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라이트 운동을 성경적 윤리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운동으로서, 기독교적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성경적 윤리가 함께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일관된 나의 신념입니다. 한국교회가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기독교 자본주의 윤리를 뒷받침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칼빈 사상은 단순히 자본주의만을 옹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칼빈 연구의 권위자인 이양호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강좌인 ‘요한 칼빈의 정치신학과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기원 이론’에서 “칼빈주의에는 자본주의적인 면과 기독교 사회주의적인 면이 함께 들어 있다”고 말했다.
칼빈의 사상이 단순히 자본주의적 요소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평등 추구, 빈민구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의 무료교육을 위한 공립학교 설립 등사회주의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자본주의도, 기독교 사회주의도 아닌 독자적인 경제 윤리를 가진 사상이며, 두 체제에 대한 더 나은 대안”.(혜암신학연구소 종교개혁500주년 기념강좌, 기독일보 2016. 5. 31)
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김진홍 목사가 뉴라이트의 역사적 맥락을, “칼빈 사상에서 프로테스탄트 즉,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발생” 했다고 단순화하는 것은 다소 치우친 해석으로 보인다.
류대영 교수는 이러한 한국 개신교 뉴라이트를,
“신학적 정체성보다는 정치적 이념 정체성이 두드러지며, 애국심에 대해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경향이 강하다. 신앙과 이념이 결합된 이러한 기독교 우파는 궁극적으로는 자유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
(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푸른역사, 2009), 411)
라며 그 위험성을 예고한 바 있다. 또한 전우용 교수는,
“시장주의와 반공주의가 결합된 보수 진영의 새로운 이념적 흐름이며,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기존 반공주의 기득권 세력)의 사고를 토대로 하면서도 시장주의를 결합해 형성된 집단”이며, 인간을 이기주의·기회주의·물질주의의 화신으로 규정하며, 시장주의와 반공 이념을 결합한 현실판 집단”
(김어준의 뉴스공장, 2023년 10월 31일 (화) 인터뷰 내용)
이라고 일갈하면서, 뉴라이트가 한국 사회의 도덕성과 역사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덧붙여, 개신교의 반지성주의로 인한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한계를 포장하고자 하는 돌파구로 뉴라이트를 결성한 것이 아닌가 싶다. 14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개신교는 복음의 공공성과 이성, 합리성을 무시하고 편향된 신념과 무비판적 신앙을 강조하는 반지성주의로 신자들을 ‘가두리 양식’ 해왔다. 그 결과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이런 현상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본연의 목적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반지성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 교회 권력의 비판적 재검토, 그리고 복음의 원래 정신인 사랑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히려 지성주의인 척, 기독교⇒ 칼빈 사상⇒ 프로테스탄트, 청교도 운동⇒자본주의 발생이라는 도식으로 기망하는 뉴라이트 논리를 만들어 한국 사회를 배타적으로 이분화하고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을,
“프로테스탄트가 프로테스탄트인 이유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 절대적 하느님 이외의 것을 절대적으로 떠받드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 끊임 없이 프로테스트(protest)하는 것”
(박황희칼럼, “한국 기독교의 반지성주의” 전북타임스, 2022.10.19. 재인용)
이라고 설파했다. 즉, 프로테스탄트가 자본주의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외의 것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뜻인 것이다. 개신교의 뉴라이트는 프로테스탄트를 떠 받들어 자신들의 신념으로 삼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절대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신앙은 타인을 배타적으로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이타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한국 사회를 좌와 우로 이분화하여 극단으로 이끌면서 좌측을 희생양 삼아 존립하고자 하고 있다. 이들은 보수 대형교회와의 결합을 통해 조직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한편 정치권력과 공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