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총리 재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으로 나온 자리에서 변호인단이 ‘신뢰관계인 동석’을 요구하며 법정에서 언쟁을 벌이다가 15일 감치 명령을 받았다. 감치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인적 사항 진술을 거부해 구치소 수용이 이뤄지지 않았고, 약 몇 시간 만에 석방되면서 “감치 불발” 상황이 발생했다.
석방된 뒤 이모변호사는 유튜브 방송 등에 출연해 감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을 향해, “ 이놈의 ×× 죽었어, 이거”, “뭣도 아닌 ××”, “주접 떨지 말라”라는 등의 막말과 욕설을 했다.
또 다른 변호사 권모씨는 감치불발을 “베드로가 옥에 갇혀 있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나왔다”는 성경 이야기를 언급하며 간증을 했다. “옥에서 나온 베드로의 감정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었다”라며 자신을 베드로와 동일시했다. 이에 이모 변호사가 개신교인들의 상용어인 “아멘! 할렐루야”라고 화답했다. 이로 보아, 그들이 개신교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모씨가 언급한 베드로는 초대 교회 기독교 박해시기에 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난 인물이다. 본인 역시 감치 명령 후 구치소 수감이 불발되고 풀려난 것이 베드로처럼 신이 도운 기적적인 석방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왜 자신의 석방을 베드로의 석방으로 비유했을까? 세상의 법이 구금하려 한 것은 자신이 부당하게 박해를 당한 것이며 신이 자신을 풀려나게 한 것은 베드로처럼 자신이 의로웠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이들 개신교인 변호사들의 용감함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일까?
한국 개신교인의 83%가 종교가 자신의 삶에 종교가 안정감, 긍정적 감정, 인간관계, 소속감, 윤리적 행동 등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이는 개신교인의 신앙이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관계 형성에 있어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위의 개신교인 변호사들처럼 '불편한 용감함'을 드러내는 개신교인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신교인들이 '불편한 용감함'을 드러내는 이유는
첫째, 주로 ‘믿음의 구조’와 ‘공동체 문화’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개신교인들은 매주일마다 예배와 설교 중심의 문화를 통해, “담대하라, 진리를 위해 말하라, 세상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듣는다. 여기서 세상 법과 사회를 업신여기는 태도를 배운다. 성경 속 인물들(베드로, 바울, 종교개혁자들 등)의 ‘담대함’을 본보기로 삼으면서, 현실에서는 직장·가정·정치 문제에 대해 신앙적 입장을 불편한 어투로 용감하게 표현한다.
둘째,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적인 우월 의식을 갖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공유한 집단의 “아멘! 할렐루야!”라는 지지를 받으면 용감해지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셋째, 선민의식과 우월의식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려고 일부러 행동하는 ‘관종’을 유발한다. 관종은 ‘관심 종자’의 줄임말인데, 좋은 의미로 보면,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구가 반영된 사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주목을 받기 위한 과장된 행동이나 도발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 교회 일에 손발 벗고 나서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다. 더 나아가 교회 담장 안에서 인정받은 신자들의 왜곡된 믿음=담대함이 담장 밖을 나갔을 때, 더욱 인정받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관심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신자들은 거침없는 행동으로 왜곡된 믿음이 강화되기도 한다.
개신교인들의 '불편한 용감함'은 관점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복음의 공공성’을 가르치는 성경 말씀과 정면 배치된다.
한국 민주화 운동과 시민운동의 역사에서 기독교인들은 박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용기 있게 자신의 신앙을 행동으로 표현하며 정의와 진리를 위해 앞장서서 외치는 용감성이 있었다.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신뢰가 있다면, 정의와 진리에 대하여 담대함과 용기를 얻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신앙에서 나오는 진정한 용기의 본질은 정의와 진리를 향한 자세라는 점이다.
부디, 개신교인들의 '불편한 용감함'이 한국 역사 속 기독교인의 '진정한 용감성'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