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 벌써 두 번째 새해를 맞이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몇 배속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각역 정차(各駅停車)에서 준급(준큐:準急) 열차로 갈아탄 느낌이다. 이제 곧 급행(큐코: 急行)으로 바뀌려나.
한국에 돌아와 결혼식을 올렸고 그사이 집도, 사무실도 한차례 이사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홍콩을 다녀왔고 연말에는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다. 만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주말이 바쁘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글 쓰고 책 읽고 하던 예전의 습관은 절반쯤은 지워졌다. 가족, 그리고 지인들과 이런저런 약속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타지에 있을 때는 한국의 정이 그리웠는데 돌아오자마자 십 년간의 갈증이 모두 해소되고 남을 정도다.
때마침 올해는 1월에 설날이 있다. 정부에서 27일 임시공휴일로 지정함에 따라 1월 25일부터 1월 30일까지 장정 6일에 걸친 설이다. 이렇게 긴 설 연휴는 오랜만이다.
일본에 살 적에는 설도 추석도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그곳에서는 평일이고 회사에서 일을 했기에 가족과 지인에게 안부 연락(주로 카톡)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골든위크나 오봉, 연말연시는 우리 부부 두 사람만의 여행과 여가를 즐기면 충분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니 상황이 달라졌다. 명절에는 양가에 인사를 가느라 분주해졌다. 양가 부모님 생신 등 가족 행사는 물론 지인들 대소사도 챙기고 있다.
일본 가기 전에는 ‘개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는 그러한 교육을 받았다.) 관계 중심인 한국사회의 따뜻한 정과 대비되는 차가운 느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살아보니 개인주의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식 개인주의 사회에는 각자의 암묵적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설령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그 공간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자기 스스로 잘 지켜나가면 된다. 대신 나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그건 규율 위반이다.
한때 일본 예능에서 한국 남자들의 스윗한 연애 스타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여자친구에게 연락하고 챙기고 걱정하는 한국 남자들의 카톡이 그대로 번역되어 자료 화면으로 나갔다. 그걸 본 여자 패널들은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일본 연인들 간에는 ‘공간’에 대한 이해도 함께 동반된다. 그래서 문자나 카톡(라인)은 필요 최소한으로만 행해진다. 일주일, 또는 몇 주 이상 연락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한 일본 지인도 한국 남자와 일본 남자와 연애할 때 차이에 대해서 이러한 점을 들고는 했다. (요즘 일본 남자들도 한국 스타일처럼 바뀌어 가는 중인 듯하다.)
그러나 일본식 개인주의에는 공간을 지켜주고 배려해 주는 데에서 오는 따뜻함도 존재한다. 그래, 무시가 아니고 배려다. 너의 공간을 마음껏 즐기고 누리렴. 대신, 내 공간도 존중해 줘. 그런 사회에서 햇수로 십 년을 보내고 나니 은연중에 개인주의가 내재화 되었다.
우리나라에 돌아오니 나 혼자만의 공간에 있게 놔두지 않는 것 같다. 이게 한국식 정인가 보다. 일본과는 다른 따뜻함이다. 인생의 2/3를 보낸 한국임에도 다시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지난 일 년간은 그간 만들어 온 공간을 애써 개방해야 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얼마나 열어야 할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전에 없던 고민으로 머리가 아파올때면 때면 문득 일본 생활이 그리워진다.
이번 설연휴를 앞두고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