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Übermensch) 첫 번째 챕터
정해진 답이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내면 된다는 것. 세상이 내놓은 확실한 답이 없다면, 결국 당신이 그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다.
< 프리드리히 니체, 『위버멘쉬』, 어나니머스 옮김 (떠오름, 2025), p.21 인용>
세상에 정답이 없다.
그것만큼 무서운 말이 또 어디 있을까요. 어려서부터 항상 정답 찾는 일에 길들여져 왔잖아요.
정답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시험지에는 빨간 실선이 쭉쭉 그어졌고 초, 중, 고, 대학, 그리고 회사까지 대부분 정답을 얼마큼 찾았는지에 따라서 결과가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그래서 일을 하다가 막힐 때면 "분명 정답이 있을 거야"라는 기대감으로 인터넷도 뒤져보고 책도 찾아보고 선배들한테도 물어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20대를 넘어 30대를 지나가면서 그동안 정답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정말 정답이 맞는지 의심 가는 일 들이 하나, 둘 생겼습니다.
회사생활은 이렇게 해라, 대인관계는 이렇게 해라, 연애는 이렇게 해라...
수많은 지침들을 보면서 정답이라고 믿고 따랐지만, 1+1이 2로 귀결되는 수학이나 모두가 타당하다고 믿는 과학적 근거와는 달랐죠. 매 순간 또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험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40대를 바라보는 지금, 내 사업을 하고 가정도 꾸리게 되니, 정말 정답이 있기는 한 걸까? 라는 의문이 매일 같이 드네요.
정답을 찾으려고 애썼던 지난날들은 무엇일까요. 정답이 없는 곳에서 애써 정답을 찾으려고 하니 하루하루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이게 정답인 것 같다가도 저게 정답인 것 같고...
그래서 요즘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습니다. 어차피 100점을 맞을 필요가 없다면 적어도 70점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걸 정답이라고 생각하자고. 30점은 내 기준으로 채워가자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적당히 90점을 주려고 합니다. 70점은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한 것에, 20점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10점이 부족한 건, 이제 30분밖에 남지 않은 2025년 11월 6일에 미련이 남아서입니다.
내일은 내가 만들어 놓은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아니) 알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