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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Sep 18. 2022

도쿄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다.

Ep02. 2013년 9월 9일. 잊을 수 없는 사회생활 두번째 첫 출근

오전 6시. 평일 아침임에도 눈이 일찌감치 떠졌다. 눈 앞에 보이는 낯선 풍경. 하늘색으로 칠해진 벽면과 미처 다 풀지 못하고 대충 자리잡고 있는 이민가방이 보였다.


"그래. 나 일본에 왔었지!"


비로서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닌 일본, 도쿄의 한 쉐어하우스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막연하게 일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이곳에 있는 6개월동안 후회 남지 않을 시간을 보내리라고.


인턴으로 재출발


일본에 올 수 (거주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어학교나 대학교에 입학하는 방법,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방법, 취업으로 오는 방법 등등. 나는 이 중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는데 불행이도 떨어졌다. 심지어 돈을 주고 사설업체에 맡겼는데도 떨어졌으니 기가 찬 노릇이였다. 그러다가 해외인턴생 제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는 해외 취업붐이 불고 있었다. 취업문턱이 높은 국내에서 눈을 돌려 젊어서 해외에 나가서 일도 하고 주말에는 해외생활을 즐기는 낭만에 대해서 각종 매체에서도 단골 주제로 내보냈고 정부에서도 다양한 정책적 지원들을 선보였다. 그 중 하나가 해외인턴생 제도였던 것이다. 정부에서 항공비 및 현지 생활보조금을 지원해주고 인턴생은 현지에 나가 있는 교민 기업에서 인턴생으로 근무하는 방식이었다. 모집요강을 살펴보니 다행이 일본(도쿄)도 포함되어 있었고 서류전형→면접→합수교육→교민기업매칭을 거쳐 최종적을 일본행 티켓을 손에 거머 쥘 수 있었다.


그리고 9월 9일 월요일이 밝았다. 도쿄 오다비아(お台場)에 위치한, H통신의 무역컨설팅 부서가 내가 인턴으로 근무하게 될 곳이었다. 흰색셔츠에 네이비색 넥타이, 아직 주름이 그리 잡히지 않는 서류가방과 구두. 지난 3월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때와 같은 복장으로 출근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사원이 아닌 인턴이라는 점이다.


나와 같은 회사에 내정 받은 동기생과 미리 회사 건물 앞에서 만나 심호흡을 길게 들이 내쉬고 사무실로 향했다. 이윽고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해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리고 초인종을 울렸다. 그리고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철테 안경을 낀 인상 선해보이는 30대 중반의 남성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는 스카이프를 통해 만났던 면접관이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로 처음 회사에 가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떤 업무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 듣는 흐름인데 나와 동기를 제외하고 모두 사복차림이었다. 우리를 맞이해준 분은 원 대리님이었는데 그도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사무실 안은 내 방보다 더 정신 없이 짐들이 여기저기 흐뜨러져 있었다. 그를 제외하고도 사무실에 내 나이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6명정도 보였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난 이후, 현재 사무실을 7층에서 1층으로 이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정신 없는 거라고.


첫날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이 바로 넥타이를 풀어 제끼고 셔츠의 팔을 걷어 올린채 본격적으로 이사 행렬에 동참했다. 금새 온 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당시로부터 정확히 5년전인 2008년 9월 9일, 22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로 306보충대에 입소하던 그날처럼.


조촐한 신입 환영회


7층에서 1층으로 짐을 옮기는 사이 금새 부서 직원들과 어색함이 사라졌다. 직원은 부장님을 포함해 4명, 인턴생 4명, 일본인 아르바이트생 1명까지 총 9명이 있었다. 이날 합류한 우리까지 더하면 11명이나 되니 적지 않은 규모의 부서이었다. 인턴생 중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이 중 2명은 나와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온 인턴생이었고 우리 바로 앞 기수였다. (사실 나도 앞 기수로 올 수 있었지만 지원금이 너무 적어 포기했던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직원과 인턴이 한 팀이 되어 업무를 한다고 했는데 주로 일본시장조사나 전시회 지원 등을 담당했다. 이 회사는 해외민간네트워크라고 하여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민간버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 업무 자체는 대학교때 일본의 KOTRA인 JETRO, 서울사무소에서 인턴도 해봤던 터라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첫 직장에서 밤새워 가며 외우던 섬유용어집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었다.


본격적인 업무는 이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주어질 예정이었다. 이날 해가 저물 무렵 이사짐 정리를 마무리 하고 신입 환영회를 시작했다. 오다이바는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지역으로 관광과 상업시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오가는 인적이 드물어지고 단체로 가서 식사할 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배달이 활성화 되어 있지도 않아서 기껏해야 이곳에서 20분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도미노피자를 주문 시키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을 정도다.


그래서 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온 뒤 테이블에 펼쳐놓고 조촐하게 신입 환영회가 열렸다. 일본어로 쓰여진 맥주 라벨과 튀김류 일색인 테이블을 보며 조금씩 이곳이 일본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부장님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다 같이 맥주캔을 부딪히며 건배를 외쳤다. 긴장으로 가득 찼던 인턴 첫날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일본에서 10년이나 살게 될 줄은.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재가 끝나면 브런치북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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