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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Sep 16. 2022

일본으로 떠난 첫째날

Ep01. 일본 도쿄에 나의 첫 보금자리가 생기다.

2013년 9월 5일 오전 10시. 내 몸체만한 이민가방 하나를 끌고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섰다. 약 10년만에 다시 찾은 이 곳. 바로 일본 도쿄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내가 드디어 일본으로 가는구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하게 일본에서 한번 지내보고 싶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는데 비로서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27살이라는 어중간한 나이에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3개월만에 때리치우고 떠나는 일본길이었기에 주변은 물론 부모님의 우려 또한 컸다. 


그러나 이미 선택한 길. 지금 아니면 평생 못 할 것 같다는, 딱 그 하나의 생각만으로 도쿄 나리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쿄 땅을 밟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도쿄 (정확히는 치바)나리타 공항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 비행시간이 소요된다. 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며, 일본에서의 1분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었음이 틀림 없다.


9월의 도쿄는 상당히 더웠다. 30도를 넘는 기온에 큰 이민가방을 끌고 있자니 금새 땀이 나기 시작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볼 틈 없이 신속히 입주 예정 된 쉐어하우스로 이동을 해야 했다. 주인 아저씨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몇차례 열차를 갈아타고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려 도쿄메트로 한조몬센(半蔵門線) 스미요시(住吉)역에 내렸다. 짐을 끌고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2~3층 정도의 높이 밖에 되지 않는 주택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등 뒤로 스카이트리가 보였다. 비로서 일본 도쿄에 온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미리 출력해 온 지도를 보니 쉐어하우스는 역에서 나오자마자 있는 로손(LAWSON)편의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3번째 정도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역세권인 셈이다. 미리 구글맵 등을 통해서도 예습을 했던 터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쉐어라 스미요시 킨시쵸 쉐어하우스'


건물 입구에 붙은 간판을 보고 단숨에 내가 찾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3층짜리 철조 건물. 홈페이지를 통해 보니 원래 공장이었던 곳을 쉐어하우스 주인이 개조해서 지금의 쉐어하우스로 만든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외간은 언뜻 오래된 공장 처럼 보였다. 


사무실 출입문 같은 갈색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짧은 스포츠머리에 쭈삣쭈삣 턱수염이 뻣은 40대 중후반즈음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집 주인인 타가상(씨)이었다. 그와는 이미 안면이 있었다. 한국에서 쉐어하우스를 찾아볼 때 입주심사를 위해 그와 스카이프로 면접을 봤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방 키와 함께 건물에 대한 소개와 주의사항 등을 전달 받았고 방값을 계약서에 서명을 함으로서 비로서 입주를 완료하였다. 1층에는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거주했다. 한 명은 나이지리아 사람, 또 한명은 브라질 출신 게임 프로그래머. 2층과 3층에는 각각 6개실씩 있었는데 드라마 라스트프랜드에서 보던 것 같이 입주자들이 모두 모여서 홈파티를 즐기는 분위기는 아닌 듯 했다. 아무렴 어때.


큰 책상 하나와 매트가 없는 작은 목재 침대, 그리고 3칸짜리 나무 서랍장이 있는 방이 앞으로 내가 머무를 곳이었다. 힘들게 끌고 온 이민가방을 풀어 헤치는 사이 미리 EMS로 보내두었던 무거운 짐들도 때마침 도착했다. 짐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일본에서의 첫 나만의 공간이 생겨났다.


도쿄에서의 첫 음식


서울에서 방을 뺀 이후로 줄 곧 부모님이 계시는 충청도에서 있다보니 이날도 출국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집에서 서둘러야 했다. 아침은 그냥 먹는 시늉만 하고 허둥지둥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이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나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집 주인과의 시간 약속도 있고 해서 물 한모금 안마시고 쉐어하우스로 향했다. 방에 짐들까지 어느정도 정리하고 나니 금새 해가 저물었다. 시간이 같다고는 하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대략 1시간정도는 더 빠른 느낌이다. 한국이었으면 아직 밝았을 시간인데 일본은 벌써 저녁을 맞이했다.


제법 배도 고파졌겠다 슬슬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당시는 비용이나 계약 문제도 있고 해서 한국에서 임대 폴더폰을 빌려왔던 터라 외부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공 wifi도 거의 보급되지 않았을 때) 그래서 무작정 집 주변을 걸었다. 도쿄라고는 해도 한적한 주택가였던 터라 식당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길 건너편에 빨간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스키야(すき家)'


스키야는 일본의 규동(牛丼, 소고기 덮밥)체인이다. 그래 일본에 왔으니까 일본식으로 먹어보자! 가게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규동 나미모리(並もり. 보통사이즈)을 시켰다. 주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규동이 나왔다. 밥 위에 한 움큼 올라간 소고기 볶음. 


드라마에서 보던 것 처럼 밥 공기를 들고 젓가락으로 고기와 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리 대학에서 일본 관련 전공을 했다고는 하지만 일본문화가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한 입, 두 입 먹으며 왜인지 모를 일본 스러움을 체감했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김치를 집어 들었을 텐데, 일본식당에서 한국식 김치가 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대신 베니쇼가(紅生姜. 빨간색 초절임 생강)가 자리 잡고 있었다. 베니쇼가를 밥 그릇 위에 덜어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으로 넣었다.


"이게 일본식(食)이구나"


허기가 졌었는지 밥을 천천히 먹는 나임에도 5분도 안되어 먹어 치웠다. 배부르지는 않지만 적당한 포만감이 느껴지는 정도. 그럼에도 금액은 300엔정도로 저렴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자금 사정은 좋지 않을 테니 규동을 자주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첫 식사를 마쳤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한국사람에게는 역시 김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식당을 나오니 이미 주변은 어두워졌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여행으로 오사카나 돗토리를 가본 적이 있지만 도쿄는 처음이었다. 두 지역과는 또 다른 느낌이면서 어딘가 모르게 서울의 동네와도 닮아 있는 듯한 도쿄도 고토구(東京都 江東区)에 위치한 스미요시. 


그렇게 나의 일본에서의 진짜 첫 날이 마무리 되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재가 끝나면 브런치 북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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