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 일본어를 넘어서는 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어로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하던 취업활동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재취업, 그러니까 이직활동을 위해 수백건의 이력서를 뿌렸다.
한 전직 컨설팅 회사를 통해 넣었던 이력서가 1차 불합격 되었고 그 사유가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만나보지도 않고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직(離職)이라는 표현보다 전직(転職)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먼저 이 표현에 익숙해지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전직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력서와 사진, 여기에 다른 일본인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이렇게 3가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나라 사람인 같은 사이트들도 많이 있다. 유명하게는 mynavi(마이나비), doda(듀다), en転職(엔텐쇼쿠) , Indeed (인디드) 등이 있다. 사이트에 가입하고 이력서를 등록하면 기업으로부터 오퍼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직접 검색해서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이 외에도 Geekly(기크리), recruit agent(리쿠르트 에이전트) 등 전직 전문 컨설팅 회사를 통한 방법도 있다. 아직 일본에서 전직 경험이 없기도 했고 한국과 어떤 부분이 다른지 알지 못해서 이 중 Geekly를 통해 전직을 준비했었다.
Geeekly에 이력서 및 전직 희망분야를 전달하면 자신들에게 인력모집을 의뢰한 회사들 리스트 중 나와 맞을 것 같은 업체들을 추려준다. 그런후에 컨설턴트와 상담을 통해 이력서와 자소서 등을 준비하고 그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는 식이다.
나는 이커머스(EC) 분야 전직을 희망했고 2017년말 당시 일본에서도 이 분야에서 성장하는 기업들이 많이 등장했다. 다행이 이쪽 분야 경력(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이 있기도 했고 자리도 많이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다음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번번히 1차 서류평가에서 탈락. 일반적으로 전직 컨설팅 회사에서 어느정도 필터링을 하여 의뢰 업체에 응시자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면접기회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일부로부터는 서류평가 불합격 통지를 한 이유를 보내오기도 하는데 대체로가 '언어'에 대한 문제였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첫 직장도 일본회사였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양쪽다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다할 (IT)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영어점수가 있기는 했지만 스피킹은 안되었기에.
일본이 아무리 구직난이라고 해도 외국인에게 호의적으로 열려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몸소 체험했다. 설령 일본인 경쟁자보다 스킬면에서 앞서있다고 하더라도 나보다는 조금 부족한 일본사람에게 그 자리가 돌아갔다.
다만 일부 IT업종 등 일본인 구직자가 애초에 부족하고 한국인이 퍼포먼스를 잘 내는 분야는 이야기가 다른 듯 하다.
기왕 일본에 온 이상 제대로 된 일본회사에서 일해보겠다던 나의 목표는 달성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몇차례는 운이 좋게 면접까지 갔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인적성검사'라는 복병이 등장한다.
일본어 시험이야 공부하면 되지만, 인적성은 일본국어, 사회, 역사, 경제에 더해 산술영역 문제까지 있다. SPI라는 인적성시험이 대표적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필기로 시험을 치기도 하는데 나는 읽고 말하고 컴퓨터로 쓸 줄 알지만 손으로는 잘 못쓴다. 그렇다고 인적성검사를 위해 공부를 하고 있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사실 산술영역은 공부한들 풀어낼 자신이 없다.)
일본회사 입장에서 특별히 외국인이 필요한 업무도 아니고 일본인보다 일본어를 못 할 것이 분명한 한국인 '김형민'을 채용하는데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엑셀이나 이커머스 경험이 조금 있다고 하더라도 말 잘통하는 일본사람을 가르치는게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일본에는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에요?"
면접 중 나왔던 단골 질문 중 하나.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일본에 평생 살려고 합니다!'라고 모범답안을 얘기했지만 (사실이기도 했고) 일본인 경쟁자를 이길만큼의 점수 획득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전직 전략을 조금 수정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섞여 있는 회사라면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한인커뮤니티 구직정보를 살펴보았다. 다행이 적당히 비율이 절반정도씩일 것 같은 회사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곳들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드디어 예상했던 인원구성을 가진 한 회사의 이커머스....가 아닌 영업(물류)지원 포지션으로 일본에서의 (첫)전직에 성공하게 된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