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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Dec 05. 2022

고마워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라, 일본.

Ep16. 그러니까 너의 진심이 뭐야?!

"스미마셍(すみません)"


일본어 표현 중 '미안하다'를 뜻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스미마셍이 있다. 하지만 이는 이 단어의 대표 뜻이고 그 외에도 '감사'와 '부탁'을 나타날 때도 쓰이는 말이다. 


고맙습니다는 '아리가토(ありがとう)'가 아닌가? 미안하다와 감사하다(고맙다)는 전혀 반대의 성격을 가진 말인데 한 단어에 두 뜻 모두 들어가 있다니... 이것 참 난감하다. 



옷깃만 스쳐도 스미마셍


아직 일본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나는 고마운 (Thanks) 일에는 모두 '아리가토'라는 표현을 썼다. 지극히 당연하고 문제 될 게 없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따금 의문스러운 상황들이 보였다. 


일본사람들이 전화통화를 하고 끊을 때면 어김 없이 '스미마셍'이라고 대화말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첫 회사 사수도 일본 바이어와 통화를 마칠 때면 어김없이 저 말을 남발해서 "뭐가 그리도 미안한거지?"라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전화 통화 뿐만이 아니다. 식당에 가서도 점원이 자리를 안내해주고 물도 따라주고 지극히 당연한 서비스를 베푼다. 물론 이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보통 한국에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습관 그대로 일본에서도 '아리가토고자이마스'라고 말했는데 옆 테이블 일본 사람은 또 '스미마셍'이라고 한다.


미안할 만한 상황이 없는 것 같은데...?


사실 이 당시에는 내 머릿속에 스미마셍의 사전적 의미는 오로지 1번 뜻인 '미안합니다'만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보니 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 말이 쓰일 수 있음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스미마셍을 이따금씩 써보기 시작했다. 사수가 그랬던 것 처럼 전화를 끊을 때도, 식당 종업원이 서비스를 해줄때도, 상대방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도 아리가토 대신 스미마셍을. 예상했던대로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제는 아리가토보다 스미마셍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길 가다가 옆사람이랑 살짝 스치거나 전철의 비좁은 칸에 들어설때나 또는 나올때 등등 '스미마셍'이 반자동 재생 된다. 특별히 사전적 의미의 미안하다, 고맙다를 의식하고 쓰는게 아니다. 그냥 공기를 내뱉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신기하다.



가장 일본적인 표현, 스미마셍


대학때부터 일본인론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관련 주제도 공부했었는데, '스미마셍'이 가장 일본스러운 표현인 것 같다.


일본인의 심리에는 안(内:우치)과 밖(外:소토)에 대한 개념이 존재한다. '안'은 사적인 영역이고 '밖'은 일종의 공적인 영역이다. 서로 안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조심하려고 한다.


"주위에 폐를 끼쳐셔는 안돼(迷惑をかけないように)"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이 말을 들으며 자라온다(고 한다). 일종의 도덕이자 사상교육과도 같은 것이다. 주위(주변사람)는 밖인데, 그들에게도 자신들만의 '안'이 당연히 있다. 폐를 끼친 다는 것은 그들의 '안'을 침범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며 사과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사상이 일본어라는 언어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스미마셍은 '미안함'을 기준으로 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무얼 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이나 정성을 나를 위해 쏟게 만드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나는 상대방의 그것을 어느정도 침해(썼기) 했기 때문에 일단 사과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재가 깔려 있는 것이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와루이(悪い)'도 있다. 막역한 사이이거나 손아랫사람에게는 스미마셍 대신 와루이를 쓸 수도 있다. 한자가 악할 악인데 기본적으로 나쁘다, 미안하다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도 마찬가지로 고마울 때도 쓴다. (보통 남성들이 많이 쓰는 것 같은데) "나로 인해 너의 시간 또는 정성을 쓰게 해서 미안하고 고마워"라는 두가지 마음을 한 단어에 담고 있다고 보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단어 하나에도 이렇게 상반되는 뜻이 담겨져 있다보니 일본인들과 더욱 깊숙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들어가게 되면 과연 이사람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라고 자문해 보는 경우가 꽤 있다. 


가끔은 YES or No를 명확히 말해주면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일본 문화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마실 수 있게 된다.


스카이트리에서 바라본 스미마셍의 나라 일본, 도쿄의 야경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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