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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맥주에 치킨 대신 차슈. 일본의 퇴근 후 술자리 풍경

Ep14. 한국인의 DNA. 집에가서 새빨간 비빔면이 먹고 싶어 진다.

by 형민

"퇴근 길에 나마 한잔 어때?"


나마(生)는 생맥주의 일본 표현인 나마비-루(비루가 아니고 비이루다. 비루는 빌딩) 축약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야 끝나고 소주 한잔이지만 일본에서는 나마 한잔이 국룰(!)이다.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찾아라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이른바 '소주파'였다. 맥주는 소맥으로 섞어 마실때나 곁들이는 일종의 탄산음료였지 술=소주였다. 그런데 일본에 오니 그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던 맥주가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에 처음 왔을때 놀랬던 것은 소주 한병에 대략 1,000엔, 즉 우리돈으로 1만원 가까이 한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한식당이나 야끼니꾸 가게를 제외하고서 한국 소주를 파는 곳은 그다지 없었다. 한병에 4천원 하던 것도 비싸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 2배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소주를 먹는 것은 사치 중 사치였다. (그래서 회식자리때 인정사정 보지 않고 마셨었다.)


그와 달리 일본의 국민술은 단연 맥주였다. 한국에서 마시던 탄산감 가득하던 느낌보다는 깊은 풍미가 가득했기에 톡 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넘김이 매력있었다. (물론 맥주 종류마다 다르지만) 안주도 소주 안주보다 맥주 안주와 곁들일 수 있는 튀김요리나 구이, 꼬치 요리 등이 흔하게 보였다.


"나마 잇쵸 쿠다사이(生いっちょうください。생맥주 한잔 주세요)"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표현이다. 저녁시간 가게에 들어가면 테이블 여기저기서 저 표현이 들려왔다.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면 '노미모노와? (飲み物は? 어떤거 마시겠어요?)'라고 물어보는데 이때는 대부분 정해진 답변이 있다.


"토리아에즈, 나마 쿠다사이(とりあえず生ください。일단 생맥주 주세요)"


일단 생맥주로 목 한잔 축이는 것이 일종의 국룰인 것이다. 맥주를 한잔 시켜놓고 먹을 만한 안주를 고른다. 기다리는 동안 오토-시(おとうし)라고해서 간단한 안주가 나온다. 이것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보면 주문한 메인 안주가 나오는 식이다. (※오토시는 대부분 공짜가 아니다. 일종의 자리값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1~300엔 등 다양하다. 오토시 없이 자리값만 받는 곳도 또는 아에 없는 곳도 있다.)


그나저나 메뉴판을 보면 온통 휘갈겨 적은 일본어가 가득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것이나 옆자리 사람들이 시킨 것을 따라 주문한다.


꼬치, 카라아게, 오뎅, 생선구이, 사시미...


가게 종류에 따라 물론 메뉴도 다양하지만 이지카야 안주들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헤매고 헤매이다 드디어 내 입맛에 그나마 맞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라멘집 오쯔마미(おつまみ 안주) 3종세트!


차슈, 멘마, 반숙달걀


원래 라멘에 얹혀지는 재료인데 안주용으로 따로 이 3가지만 시킬 수 있다. 라멘 한그릇까지 다 먹기는 부담스럽고 간단히 맥주한잔에 입가심용으로 먹기 딱이다. 기름지지도 않으니 속이 느끼해질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 요즘도 이따금씩 친한 지인과 라멘집에서 오쯔마미 3종세트와 함께 생맥주를 즐기고는 한다.


ramen-01.jpg 히로시마풍 츠케멘. 차슈, 멘마, 반숙달걀 모두 들어가 있다. 매콤한 소스도 있어서 맥주 안주로도 너무 사랑한다.



#일본에 와서 생긴 해장 습관


일본생활 초창기에는 이자카야에서 먹는 술자리도 나름 즐거웠다. 맥주 맛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고 다양한 종류의 일본식 안주도 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술자리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왠지 모르게 속이 니글 거리기 시작했다. 주로 튀기거나 조린 음식들을 먹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기분이 싫다고 술자리를 뺄수도 없는 노릇.


역시 나에게는 강한 한국인의 DNA가 흐르고 있었다. 새빨간걸로 속을 달래고 싶은 충동이, 특히나 술김이 보태져 더욱더 강해졌다. 그래서 해장으로 '비빔면'을 먹기 시작했다. 조리도 간단하고 매콤새콤하면서 국물을 먹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으니 안성맞춤!


또 본건 있어가지고 라멘집 같은데서 면을 삶을때 쓰는 큼직한 채반도 샀다. 물기를 탁탁 털고 냉수로 시원하게 행군후 김치와 곁들여 먹으면 그렇게 세상 속이 편할 수 없다.


만약 생각보다 배가 덜 찼을 경우에는 비빔면 대신 신라면을 끓인다. 평소에 매운 음식 조리를 하지 않아서 인지 신라면 스프를 넣는 순간부터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집안에 매운냄새가 가득차고 기침으로 힘들지만 왜인지 기분이 좋다. (술이 깨는 느낌과 속이 풀리는 느낌, 모두들 맛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로는 술자리가 많이 줄어서 예전만큼 해장으로 비빔면을 찾는 일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신라면과 함께 비축해 두고 있다.


일본에 있는 동안 맥주도, 차슈도, 그리고 비빔면도 더 많이 즐겨야겠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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