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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온라인 팀장, 일본EC 업계에 발을 디디다.

Ep13. 직함보다 책임의 무게

by 형민

"안녕하세요. 주식회사OO 김형민 팀장입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출근길이 설레인다고 했던, 일본에서의 첫 회사이자 생애 두번째 회사와 작별을 고했다. 조직 개편으로 함께 일하던 멤버들이 양분화 되었고 그 중 주축이었던 부장님과 과장님들이 회사를 떠났고 머지 않아 창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합류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유효기간


2015년, 주식회사 OO이 설립되었다. 대표이사에는 부장님, 사내이사에는 과장님들과 나의 이름이 올라갔다. 사회생활 시작 3년차만에 사내이사가 된 것이다!


4명이서 시작한 작은 회사였지만 미래에 대한 꿈만큼은 컸다. 그리고 좋아하는 멤버들과 함께인 만큼 기대감도 부풀어 올랐다.


우리 사업의 첫 시작은 한국 중소기업 상품을 소싱해서 중국 파트너사 매장에 공급하는 일. 규모가 커지면 매장도 확장하고 그러면 당연히 매출도 늘어나게 되니 조금만 고생하면 금새 안정을 잡을 것이라고 보았다.


전직장에서는 주로 정부기관 용역을 받아 수행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보고서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정부와 참가업체 눈치를 살피는 위치에 있었다. 이제는 그런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우리 목소리를 내면서 매출로 보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때 난생 처음으로 중국(칭따오)도 출장으로 가보고 매장도 국영백화점 안에 입주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상품만 소싱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한참 소싱과 매장내 입고수를 늘려가고 있던 때 한중간 외교마찰이 이따금씩 있었다. 그러던 2016년 7월, 주한미군 사드 배치가 공식화되면서 중국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 되었다. 백화점으로부터 매장 퇴출 압력도 있었지만 소싱에 동참하는 곳들도 점점 보수적인 시각으로 변해갔다. 당시 자본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위탁'형태로 제품을 공급받고 있던 터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 매출확보에 문제가 생기는건 시간문제였고 다시금 정부기관 용역사업에 눈을 돌렸다. 나와 과장님 한분은 여전히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고 다행이도 몇 프로젝트에서 일본진출 지원사업 수행사로 선정되면서 이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해외 온라인 쇼핑몰 입점 사업' 일본 담당사로 선정되었다.



일본 쇼핑몰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지?


그렇게 나는 주식회사 OO의 사내이사이자 온라인팀장의 직책을 달게 되었다. 전직장에서 홈페이지 만들던 특기를 살려 일본 온라인쇼핑몰인 라쿠텐 이치바에 상품을 올려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비록 일본쇼핑몰 SEO, 광고운영, 고객대응 등에 대한 노하우는 그다지 없었지만 앞으로 배워나가면서 하나, 둘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가 있었기에 시작은 가능했다. (한국에서는 검색광고마케터 1급 자격을 취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업무를 시작하고 보니 담당 해야 할 업체수가 무려 200여곳. 한 회사당 최대 10개까지 상품등록을 받아주는 조건이었다. 등록해야 할 페이지수는 최대 2,000개에 달했다. 한국어로 된 상세페이지를 일본어로 바꾸어 올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담당 가능인력이 내부에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몇 디자인 회사에 외주를 주어 이미지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상품등록, 가격설정, 업체(고객)대응, 기관 보고서 작성까지 도맡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매일 밤 12시까지 작업을 해도 도통 상품등록 업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상품을 빨리 등록해 달라는 전화와 왜이리 물건이 안팔리냐는 항의 전화, 수출실적(당연히 나올리 없었던...)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기관의 메일.


명색이 '온라인(EC)팀 팀장'이라고 명함에 넣고 영업활동을 했지만 팀장으로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하고 괴로웠다. 이후 일부 인원을 채용 하기는 했지만 EC경력자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타파하고자 틈틈히 책도 읽고 관련된 강의나 세미나도 찾아갔지만 이론적인 이야기만 있을 뿐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정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온라인팀장으로 2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IMG_20180327_085934 (1).jpg 2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했던 라쿠텐 실무 강의. 이것이 나의 마지막 미션이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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