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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Feb 11. 2023

일본어로 살아가야 하는 피곤함

Ep18. 꿈도 일본어로 꾸어라.

"일본어만 잘하면 됩니다."


대학에 다닐때 전공이 전공이었던지라 '일본어'가 거의 모든 성공의 척도였다. 일본어능력시험(JLPT, JPT 등)에서 고득점을 받은 사람들은 교수님들에게는 이쁨을 받았고 선후배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본에 와보니 일본어는 그냥 '공기'같은 존재 그 이하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일본에 온지 5년이 넘어가도록 제대로 된 프리토킹이 되지 않았다.



서바이벌 일본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어렵사리 전직(일본에서는 이직을 주로 전직転職이라고 한다.)을 마무리 짓고 도쿄도 신주쿠에 있는 모바일기기/악세사리를 취급하는 회사에 출근했다. 


이곳에서 나의 포지션은 영업지원팀(장). 영업팀으로 오는 각종 발주서류를 회사 ERP시스템에 입력하고 물류센터에 출하업무를 지시하는 일이 메인이었다. 재고관리와 청구서 작성은 덤.


그동안과 같은 '서비스'가 아닌 '상품' 유통에 의한 매출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날마다 수많은 현금흐름이 만들어지고 내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상품이 위로 홋카이도에서부터 밑의 후쿠오카까지 일본열도 전역에 뻗어 나가는 짜릿함. 비로서 일본에 있음이 실감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속한 영업부는 모두가 일본인이었다. 비록 회사가 한국인 절반, 일본인 절반이라고는 해도 영업부는 완벽한 일본이었고 그들은 한국어를 단'1'도 몰랐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서바이벌 일본어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사실 없기도 했던) 일본어를 모두 동원해서 어떻게든 일본어로 말해야 했다. 더구나 영업들은 마음이 급했다. 


한정된 재고를 가지고 고객사들의 주문을 처리해야 했고 납기요청을 맞추기 위해 출하지시마감이 있는 오전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진행사항 확인 등을 요청하러 왔다. 


일이 익숙해지기 전이기도 했고 일본어 사고회로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그럭저럭 메모를 해두고 차근차근 대응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이기적인(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들 또한 거래처들로부터 언제까지 납품해 줄 수 있는지 계속해서 독촉을 받고 있었고 1개이건 1,000개이건 오늘 무조건 물건이 출하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부분이 아직 업무도, 일본어도 부족했던 나에게 제대로 전달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의 데스크. 듀얼모니터로도 부족했다. 참고로 배경은 퇴근길 역(駅) 풍경이다. 얼마나 빨리 집에 가고 싶었으면 ㅎㅎ



일본어로 사고해야한다.


업무가 시작되는 9시부터 종료되는 오후 6시까지 회사에는 수시로 전화가 걸려온다. 그 중 대부분은 재고나 납기 확인을 위한 거래처들로부터의 전화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도 따로 전화당번(뎅와방電話版)이 있어서 점심시간에는 홀로 남아 전화를 처리해야한다.


당시는 아직 일본어 논리회로가 갖추어지기 전이었다. 귀로 듣고 머릿속에서 번역과정을 거쳐서 입으로 떠듬 떠듬 나가는... 상대의 말소리는 그동안 공부해오던 일본어 시험이나 드라마(또는 에니메이션)와는 달랐다.


전화 특유의 음질과 사람마다 다른 말하기 속도나 억양. 그리고 알지 아직 머릿속에 없었던 단어들. 이것들이 뒤섞인 가운데 전화를 받으니 도통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한, 두번이야 전화를 잠시 홀드 시켜두고 영업담당에게 전화 대응을 요청했지만 무한정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은연중에 영업직원들로부터도 볼멘소리가 흘러 나왔고 거래처에서도 답답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부터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어로 바로 바로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이전까지는 글을 쓸 때도 한국어로 쓰고 거기에 맞는 일본어를 찾아가는 식으로 했다면 이때부터는 처음부터 일본어로 했다.


다행이도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거의 같기에 (영어보다 월등히) 수월했고 주로 나오는 단어들이 비슷했기에 상대방이 '재고(자이코: 在庫)', '출하(슛카: 出荷)'라는 단어만 말해도 그다음 나와야 할 대사나 행동이 거의 반자동이 되었다. 


물론 단번에 된 것은 아니고 대략 반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깨지고 또 거래처에는 사과를 하고 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량에 기진맥진한 상태가 이어졌다.


새로운 일 적응에 에너지를 120%써도 모자를 시간에 60% 이상을 일본어에 써버렸으니 업무가 쌓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오죽 시달렸으면 꿈에서도 일본어로 영업들과 싸우고 있었을까.


다행이 이때의 경험이 일본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울렁증)을 없애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자신있게 '네이티브급'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어가 발목을 잡는다는 느낌은 없다. 무섭지가 않다.


일본에서 일본어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어능력시험 점수는 학교까지만 유용하다. 그보다는 역시 '일머리'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현 시점과는 다른 것들이 있을 수 있으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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