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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Mar 05. 2023

일본에서 콘서트를 가다

Ep21. 언어가 아닌 감정으로 통하는 세계

앵콜! 앵콜! 앵콜!


콘서트의 마지막을 달구는 낯익은 멘트. 그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콘서트장의 식을 줄 모르는 열기는, 사실은 이미 모든 신체적 체력이 고갈되었음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갈망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일본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J-pop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스맙(SMAP), 아라시(ARASHI) 등 쟈니스 계열 일본 아이돌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비록 장르는 다르기는 했지만 비즈(B'z),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 스핏츠(spitz) 등 일본 락밴드 음악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MP3 플레이어에는 늘 이들의 음악이 가득 차 있었고 일부 J-Pop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노래방을 갈 때면 당당하게(!) J-POP을 불렀다. 대학교 때는 일본 모 밴드의 팬사이트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는 주말이면 시부야(渋谷)에 있는 타워레코드(TOWER RECORDS)에 가서 신곡을 미리 들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밴드의 싱글앨범을 사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는 프리미엄이 붙어 비싸게 파는 CD를 이곳에서는 정가로, 그것도 신속히 살 수 있으니 여러모로 일본 생활일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도쿄에 정착하고 나서 이런저런 길거리 버스킹이나 소공연장에서 인디밴드들의 공연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규모 있는 콘서트장을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오빠, 콘서트 티켓 구했어!"




그녀와 만나기 막 시작했을 무렵, 후지텔레비에서 '5시부터 9시까지 ~나를 사랑한 스님'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흘러나왔던 '크리스마스송(구)'에 매료되었는데, 때마침 내가 좋아하는 밴드 'back number(바쿠남바)'의 곡이었다. 


일본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알고 지낸 일본인 친구로부터 추천받았던 밴드였는데 그들의 전곡을 매일 같이 들었었다.


그녀는 어느 사이엔가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그들의 노래에 빠져들었고 심지어 공식 팬클럽에도 가입했었다. 주로 짝사랑하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노랫말로 등장하는데 그런 찌질함(?)이 매력적이라고.


어쨌든 이 노래의 히트로 아는 사람만 아는 밴드는 어느새 일본 국민밴드 자리에 까지 올라섰고 겨울이면 이들의 노래가 일본 전역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봄이면 버스커버스커의 벛꽂엔딩이 들리는 것처럼) 그리고 2018년, 대망의 도쿄돔 콘서트 개최 소식이 들려왔다.


팬클럽 회원 한정으로 선 공개 된 좌석 응모에 운이 좋게 당첨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쿄돔으로 향했다. (콘서트는 일반 공개와 함께 금세 전석 매진되었다.)




콘서트 당일 도쿄돔은 정말 back number의 날이었다. 아이돌은 아니지만 이들의 캐릭터 굿즈를 몸 여기저기 달고 있는 열성팬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콘서트 당일 도쿄돔 앞모습. 공연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이 보인다.


공연장은 이들과 그리고 우리로 금세 자리가 채워졌고 이윽고 콘서트의 서막이 울렸다. 오프닝 송으로는 당시 새로 발매한 곡이었던 瞬き(matabaki)이었는데 TV와 CD로만 들었던 음악을 현장에서, 그것도 생라이브로 듣는 순간의 짜릿한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 이 맛에 콘서트 가는구나!


사실 이들 노래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가사를 전부 외우는 것도 아니고 일부는 의미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멜로디 하나하나가 귀를 타고 들어와 온몸에 전달되었고 밝은 곡에서는 신나서 박자에 맞추어 함께 뛰며 함성을 질렀고, 슬픈 곡에서는 감상에 빠져버렸다.


이 순간은 한국사람, 일본사람이 아니고 그저 back number라는 밴드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하나가 되었었다.


공연은 어느새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3시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들의 무대 뒤로 모습을 감춘 후로도 팬들은 여운이 남았는지 계속해서 밴드 멤버의 이름을 외치기도, 또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듬해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콘서트에도 방문했고 콘서트 실황 DVD마저 구매했다. DVD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그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콘서트장 모습


출근길, 퇴근길 때 이들의 노래를 듣고, 샤워할 때도 흥얼거리고. TV에서 이들 소식이 나오면 괜히 반갑기도 하고. (2021년에는 우리나라 드라마 시그널의 일본판 주제가'Film out'을 BTS와 콜라보하기도 했다. 곡을 back number 보컬인 시미즈가 작업하고 정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완성도를 높여나간 발라드 곡이다.)


지금도 일본에서의 생활이 무료 해질 즈음이면 이들의 노래를 다시 플레이하고는 한다. 일본에 처음 와서 언어가 갖지 못한, 그 무언가 강렬하고 뜨거운 것이 음악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현시점과는 다른 것들이 있을 수 있으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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