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 일본에서 떠나는 일본 여행. 홋카이도편.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불과 반년만에 사표를 던졌다. 다만 운이 좋게도 지인소개를 통해 다음 직장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는 브런치북에 담았습니다. https://brunch.co.kr/@hmstory/26)
이런 파란만장한 시간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일본 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로 향했다.
도쿄 나리타공항에서 홋카이도 신치토세공항 (新千歳空港)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같은 일본이라고는 하지만 위, 아래로 길게 늘어선 일본열도 중심지로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만큼 편리한 수단이 없다. 왠지 해외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12월의 홋카이도는 정말로 춥다. 상대적으로 북쪽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보통 영하이하로 떨어진다. 내가 살고 있는 도쿄는 어지간해서는 마이너스 기온을 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도쿄에 처음에 왔을 때는 일본의 겨울은 너무나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춥다. 온돌방이 그립다.)
신치토세공항은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먹을거리, 기념품들이 많이 있어서 웬만한 공항 이상으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간단히 구경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홋카이도 시내에 들어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좋은 구경거리였다. 도쿄에서 보이던 드높은 빌딩숲 대신 눈으로 뒤 덮인 들판과 작고 나지막한 건물들. 도쿄와는 달리 세로로 길게 늘어선 교통 신호등까지.
처음 향한 곳은 오타루 (小樽). 이곳은 홋카이도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공항에서 JR 쾌속열차를 타고 이동해도 한 시간 정도 걸리니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사진스폿으로 유명한 오타루운하와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한 삼각시장 등을 즐길 수 있다. 그 외에도 운하플라자, 운하박물관, 오르골당 등이 있어 여유롭게 반나절 또는 하루 일정으로 둘러보기 좋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잠시 홋카이도에 있음을 실감한 후 삿포로(札幌) 시내로 이동했다. 기차로는 대략 50분 내외. 삿포로는 홋카이도의 대표 도시이다. 그렇다고 휘황찬란하게 번화한 곳은 아니다.
스스키노 등 중심지를 제외하면 대체로 내가 자라는 강원도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말로 묘사하기 어렵지만 겨울이면 느껴지던 강원도(정확히는 2000년대 초반의 속초나 강릉즈음)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사카나 후쿠오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첫날밤은 삿포로 주변을 산책하다 홋카이도대학 인근에 있는 징기스칸(ジンギスカン) 요리를 먹고 마무리 지었다. 참고로 징기스칸은 가운데가 솟아 있는 둥그런 고기팬 위에 양고기와 야채를 함께 구워 먹는 홋카이도 대표 향토요리다.
둘째 날에는 한국 관광회사에서 운영하는 일일 버스투어를 통해 관광했다. 당시는 운전을 못하기도 했고 워낙 눈이 많이 내리고 난 이후였기 때문이다.
이날 둘러보았던 대표적인 코스는 '세븐스타 나무'와 '흰수염폭포', '닝구르테라스'였다. 먼저 세븐스타 나무는 언덕 위에 있는 떡갈나무 길을 통칭한다. 1976년, 일본 담배 중 하나인 세븐스타의 패키지에 사용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다소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변(비에이) 지역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간 흰수염 폭포(白ひげの滝)는 블루 리버(Blue river)라고도 불리는데 강물색이 청색으로 보이는 신기한 곳이다. 눈으로 뒤덮인 가운데를 청색 물이 흐르는 절경은 정말 기가 막히다.
이곳에서 구경을 마치고 다음일정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버스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내려서 살펴보니 하필이면 눈 속에서 얼어있던 작은 밥공기만 한 구덩이(?)에 바퀴가 빠진 것이다. 남자 승객들이 전부 내려 버스를 밀어보았지만 도저히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날 버스운전기사가 급하게 교체되면서 출발에 지연이 있었는데 그다지 경험이 없는지 다소 불안정한 출발을 보였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퀴까지 빠지게 된 것이었다. 결국 렉카가 와서 탈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일정은 밤늦게서야 마무리되었었다.
사고 수습 이후 마지막으로 들른 닝구르테라스(ニングルテラス)는 통나무 하우스로 된 작은 가게(공방)들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전체 15동의 가게들이 숲 속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딱히 물건을 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마을 전체가 마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속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2박 3일 정도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그리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기간 동안에도 밤에는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눈이 펑펑 내렸다. 이마저도 강원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고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매년 2월 초에는 삿포로에서 눈 축제를 하기 때문에 일정만 맞다면 이 기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더 홋카이도의 설국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름에는 겨울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여름의 홋카이도를 즐기러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시 일상이 있는 도쿄로 돌아왔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