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야간 체험기
반딧불을 처음으로 본 건, 군인이었었던 동생을 면회하러 갔다 돌아오던 날이었다. 교통체증을 피해 아주 작은 시골길, 국도로 갔다가 잠시 쉴 겸 얕은 강가 주변에서 쉴 때였다. 어디였는지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모르겠지만, 여름철 밤 7시 무렵이었는데도 불 켜져 있는 집은 단 한 채라도 보이지 않던 외진 곳이었다. 사람은 없었고 아주 가끔 승용차 한두대만 지나갈 뿐이었다. 계속 앉아만 있기에는 답답했던 나는 주변 강가를 따라 조금 걷기로 했다. 하늘은 회색이 섞인 희고 짙은, 아주 낮은 채도의 하늘색이었고, 빛이 닿지 못한 곳은 검은 그림자가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했다.
옅지만 밝은 연노랑 빛 동그라미 한 개가 내 앞에서 서성였다. 나는 벌레인 줄 알고 그저 몸을 뒤로 젖힌 채로 팔을 세게 휘저었다. 멀리 다른 곳으로 날아갈 줄 알았는데, 잠시 불빛만 사라졌을 뿐, 다시 불빛을 켠 채로 한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풀이 우거진 다른 잔디밭에서도 다른 불빛 두세 개가 희미하게 켜졌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기도 해서, 나는 동상처럼 가만히 서서 숨을 멈춘 채로 불빛을 가만히 응시했다. 신기한데 두려웠다. 빛을 내는 게 묘해서 자꾸만 보고 싶은데, 동화나 만화 속에서 봤던 '도깨비불' 같아서 차로 당장 뛰어가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서 깊이 꺼낸 아물아물한 옛 기억이라 그런 걸까? 실제로 반딧불이 느리게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반딧불은 멈추어 서 있듯 잔잔하고 느렸다.
이게 '반딧불'이라니!
반딧불이라는 걸 모를 땐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그저 사랑스럽고 신비롭고 즐거웠다. 행복처럼 기분 좋은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에서도 반딧불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예상외의 날과 장소에서 반딧불을 보다니 운 좋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짧고 강렬했던 반딧불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이번 여행에서는 내 멋대로 상의 없이 덜컥 예약했다. 1분도 안 돼서 매진됐던? 치열한 티켓 경쟁 속에서 표 구매에 성공했다. 다행히 일정도 엇나가지 않았고, 반딧불 체험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날씨가 나쁘지 않다면 멋진 반딧불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여행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설레었다. '반딧불 축제 기간만큼 반딧불이 없더라도 반딧불을 꽤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하루가 즐거웠다. 거기다 예약한 날짜가 축제 기간과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고 제주에 온 날과 딱 들어맞으니! 얼마나 운 좋은 일인가!
기대와 설렘을 마음 한편에 듬뿍 담고 제주에 왔건만, 나중에 다시 놀러 오라는 하늘의 뜻인지, 예약 시간 3시간 전부터 빗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금방 지나가는 소낙비이길 빌었건만, 야속하게도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여기는 다른 지역이니까 산 넘어가면 다르겠지.'라는 생각과 달리, 빗줄기는 오히려 더 거세졌다. 비가 멈추길 바라며 공지사항을 다시 읽어보는데 다행히? 반딧불 체험은 취소 없이 예정대로 할 거 같다. 비 오면 반딧불 보지 못하는 건 아닐지 싶었는데, 누군가 쓴 글을 보니 비가 적게 오고 반딧불이 활동하기에 적정한 습도라면 오히려 반딧불이 활동을 더 활발히 한다는 글을 보고, 희망을 품어보았다. 그 글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그 글이 맞길 바랄 뿐이었다.
저녁 8시가 다가오니 비는 전보다 적게 내려서 가랑비처럼 내렸다. 장마처럼 많은 비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인솔자분을 따라 곶자왈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불빛 없는 깜깜한 숲으로 들어가니, 마치 내가 모험가가 된 기분이다. 저녁 숲길이 무섭기도 한데, 반딧불을 마주할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반딧불이 보이지 않는다. 실망감이 서서히 들 무렵 한 마리가 빼꼼 보였다가 사라졌다. 나도 사람들도 모두 짧고 굵게 '오!' 외쳤다. "반딧불 봤어?" "봤지, 봤지?" 들뜬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인가 싶었는데... 밀당하듯 반딧불은 우리에게 모습을 쉽게 보여주질 않았다.
우비를 입고 걸으니,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우비에 쓸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반딧불도 보이질 않고, '모르겠다' 모자 부분만 벗어 뒤로 젖힌 채, 비를 맞으며 숲을 걷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시야를 가릴 때면, 간간이 손으로 이마를 감싸곤 했다. 그래도 나무와 덩굴이 우거진 곳은 '비가 멈췄는지', '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우산 같았고, 동굴처럼 고요하고 캄캄한 곳이었다.
캄캄한 곳에 깊이 들어가니 눈앞에서 불빛이 보였다. 여덟? 열 개 정도 되었으려나? 나를 포함한 몇몇이 "우와" 내뱉는 순간, 누군가 뒤쪽에서 "아냐, 아냐"라는 말이 들렸다.
"에이, 조명이야"
'잉? 조명이라니 뭔 말이야.' 자세히 보니 정말 조명이다. 반딧불이 그려진 희미한 몇 조명이 길 따라 듬성듬성 빛을 내고 있었다. "조명이래..." "아니래" "반딧불 아니야, 아니래" "더 가야 하나 봐" 여러 말이 들렸다. 실망 섞인 목소리가 대다수였지만, 모두 반딧불을 만나길 바라는 염원의 목소리였다. 대화는 곧잘 '반딧불 많은 덴 이렇게 보이겠지?' '빨리 보고 싶다' '반딧불 어딨니!' 등 모두 마음 한편이 들떠 보였다.
끝없이 걷길 수십 분이 지났건만 간간이 2~3마리의 반딧불이 한 마리씩 보였을 뿐, 많이 보일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반딧불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반딧불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반딧불이 아닌데도 혼자 걷다가 "어?!?" "반딧불?"이러며 몇 번을 착각하기를 수차례였다. 눈에 힘을 주고 두리번거리며 걸었지만 슬프게도 반딧불은 비를 피해 꼭꼭 숨었나 보다. 그래도 인솔자분을 따라 앞에 서서 따라다녀서 그렇지, 뒤쪽에서 걸었더라면 잠깐 반짝이던 반딧불도 볼까 말까 했을 것 같다. 줄을 어느 쪽에 섰든 간에 기대했던 많은 반딧불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왈칵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반딧불을 보기엔 아직 이른 시기와 비가 오는 터라 약간 마음의 대비는 했었다만, 직접 겪고 보니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랜만에 온 제주인데...'
그래도 늦은 밤에 곶자왈을 오랜 시간 산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체험이라 좋았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빗소리와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나무 소리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검게 뭉그러진 덩어리 안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힘주어 보면, 미묘하게 달빛 따라 음영 따라 나뉘어 있었다. 나무와 식물이 서로 따로 있듯 하면서도 뒤엉켜 있었다. 바람 소리도 더 크게 들리고, 냄새도, 피부에 닿는 빗방울도, 팔 끝과 발목 그리고 얼굴에 간간이 닿았던 잎과 덩굴의 촉감도 평상시와는 다르게 민감하게 다가왔다.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발끝에, 내 몸 하나에 의존해 걸으려니,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있고 열린 느낌이었다.
감기 걸리랴. 비를 피하랴. 빠른 종종걸음으로 끝나서 아쉬웠던, 반딧불 체험보다는 야간 곶자왈 체험이지만 색다르게 좋았던 경험이었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반딧불이야 다른 날, 다른 곳에서도 보면 되지! 그리고 반딧불이가 이 글을 본다면, 비 뚫고 나타나 준 반딧불이에 고마운 인사를 표하고 싶어질 뿐이다. :D
일러스트레이터 미혜(mi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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