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스타트 배우는 날
“자, 우리, 물속으로 가라앉아 볼 거예요.”
처음 선생님이 말씀하신 말을 들은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수영은 힘 빼고 가볍게 몸 뜨는 게 문제 아닌가요?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니요. 쉬운 거 아닌가요?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자신만만하게 가라앉을 준비는 다 됐다고 외치고 있었다. 지금도 사이드킥이며 배영이며 접영이며( 다 총체적 난국이다) 충분히 물 위로 가뿐히 뜨지 못해 눈물 흘리는데, 가라앉는 게 어려울 리가요. 나는 가라앉는 건 당연히 쉽게 될 줄 알았다.
오늘 물속 스타트를 배우는 날이다. 앞사람들이 여유 있게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쉽나 보다 생각하며 홀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 분들이 물속으로 충분히 가라앉지 못하는 것이다.
‘어?’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충분히 물속으로 들어가서 스타트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숨을 적당히 머금고 물속으로 들어가려 살짝 점프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점프하면서 무릎을 구부려 접고 엉덩이를 뒤로 빼서 다리를 벽에 닿은 다음, 팔을 앞으로 쭉 펴면서, 유선형을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리 내 몸은 전혀 엉뚱한 방향을 향해있었다. 물속 중간까지 가라앉지 못하고 등과 엉덩이가 동동 수면 위로 떠 있던 것이다. 그때의 당혹감이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왜 가라앉질 못하는지. 머리도 마음도 모두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당혹스러움과 황당한 표정이 이미 예전에 여러 사람에게서 이미 많이 봐왔다는 듯, 선생님은 말없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수영 처음 배웠을 땐, 물에 떠 있기부터 고역이었었는데, 지금은 물속으로 가라앉질 못해 고역이라니... 무언가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랄까.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지금 힘 빼고 가볍게 잘 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속에 가라앉지도 못하다니,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연습할 게 하나 더 늘어났다. 못해서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왕 수영 배우는 거 물속 스타트도 멋지게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평범해서 그리 뛰어나지도 못하지도 않는 중간에 머문 평범한 사람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도달하고 싶은 목표만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다가 재미가 생기고 욕심나면 더 크게 잡고 하면 되지.
수영뿐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차근차근 밟아 나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겁이 나서 시작조차 못하고 주춤할 때, 목표를 크게 잡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 무언가 부담감이 느껴질 때 등등 내가 하고 싶었던 마음, 하고자 하는 마음을 꺼내서 보기로 다짐했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훗날 발전된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덧 레인 끝 벽에 도달했다. 생각을 접고, 선생님이 말한 대로 동작을, 물속에 가라앉은 후 출발해봐야겠다. 이번엔 잘 가라앉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