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설날 시골 풍경
넓고 큰 국그릇에 하얀 떡국 떡과 계란지단, 소고기와 깨소금 등 여러 고명이 올려져 있는 떡국을 먹고 있으면, 어렸을 적, 설날 시골 풍경이 떠오른다. 설날 연휴면 우리 집은 항상 할머니 집에 내려와 있었는데, 설 전날이면 고소하고 기름진 음식 냄새가 할머니 방은 물론 앞마당까지 났다.
설날 아침이면, 이른 새벽부터 밖에서 우~웅~거리며 울리는 기계 소리와 수돗물 소리, 바삐 움직이는 어른들의 발걸음과 말소리가 잠결에 들리곤 했었는데, 어른들이 늦었다며 일어나라는 소리에 나와 동생들은 힘겹게 일어나곤 했다. 한쪽 눈을 겨우 뜬 채로 시계를 보면 새벽 다섯 시 반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왜?” “왜 늦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아침 일찍 할머니와 어른들께 세배드리고 앉아있으면, “떡국 먹자”는 말이 부엌에서 들렸다. 어른 두 분이 부엌으로 가서 아침상을 안방으로 가져오시는데, 그 상 크기가 제법 커서 문을 겨우 통과할 정도였다. 설날이 대명절인 만큼, 친척이 거의 다 모여서 떡국만 해도 10개가 훌쩍 넘었는데, 그릇 수도 많고 떡국도 듬뿍 많이 담겨 있어서, 마치 상 하나가 거인이 먹을법한 떡국 한 그릇처럼 보였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떡국을 맛있게 배불리 먹고 나면, 곧바로 큰할아버지와 파란 지붕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나갈 준비를 했었는데, 아침 공기가 어찌나 쌀쌀한지 입김으로 손을 ‘호~’ 불었다가도 발을 동동거렸다. 가을철이면, 대추나무에서 설익은 대추 따다가 풋사과처럼 먹고, 테니스공처럼 생긴 호두 열매를 발로 까서 호두 찾기 놀이를 했을 테지만, 겨울이니 아쉬운 대로 동생과 느티나무 있는 곳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곤 했다.
큰할아버지 집과 파란 지붕 할머니 집에 들러 아침 일찍 인사드리러 가면, 항상 손님상이 방 안으로 들어왔는데, 아침 식사처럼 푸짐한 떡국이 인원수에 맞게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침에 먹었는데, 왜 또 먹지?’ 싶다가도, 나이 한 살 더 먹고 싶은 어린 마음에 나와 동생은 떡국을 뚝딱 비워나갔다. 그렇게 떡국을 먹다 보면 설날 아침에만 떡국 서너 그릇을 먹게 됐는데, 동생과 ‘누가 더 나이 많이 먹나?’ 경쟁이 붙다 보면, 종종 배탈 나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일러스트레이터 미혜(mihye)
여유롭고 편안한 순간을 그립니다.
무단 복제 및 무단 도용,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이용문의 및 작업 요청은 메일로 문의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