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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애니가 될 것이다-오프닝

서문

    

오랫동안 숨겨왔습니다. 제가 애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미소녀 물을 좋아하진 않습니다.-연구를 위해 몇 편 본 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애니를 통해 많은 통찰을 얻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 감동을 혼자 누릴 수 없어서 오늘부터 이 연재를 시작하려 합니다.     


언젠가 괴로운 현실을 부정하고 방에서 애니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애니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을 물어뜯어 거인이 될 수 있다면, 소리를 질러 초사이언이 될 수 있다면 나의 불행을 극복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애니는 언젠가 종영을 하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러분, 애니는 종영을 해도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애니는 현실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외로운 나의 서울살이가 카우보이 비밥처럼 근사한 도시 위의 고독이 됩니다. 위기가 다가오면 내 귀에는 웅장한 음악을 울리고 나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혹시 애니가 유치하다거나 찐따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유치한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존재하고 저 또한 찐따에 가깝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 유치한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는 복잡한 인생을 단순하게 풀어내도록 도와줍니다. 치밀한 시나리오의 명화와 달리 애니의 각본에는 개연성이 없습니다. 애니는 어이없는 비약으로 복잡한 현실을 극복할 용기를 줍니다. 기억해보세요.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뒤통수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오히려 애니가 주는 근거 없는 용기가 더 필요합니다.     


찐따들이 찾는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저는 잘난 사람들이 스스로를 찐따라고 할 때,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선언하자면 우리는 모두 찐따입니다. 찐따는 인류 보편적이며 칸트가 정의하지 않은 인간의 마지막 본성 중 하나입니다. 정도만 다를 뿐 우리 모두가 찐따이며 그 찐따들이 고통 속에서 찾는 것이 바로 애니입니다.     


한반도의 20만 오타쿠들은 애니 보는 것을 일생동안 숨기며 살아갑니다. 단연 오타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애니 본다고 쉽게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애니에게 찾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찐따성이 우리를 애니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이 글을 읽고 애니가 보고 싶다면 여러분의 숨은 찐따성이 움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빠르게 현실을 잊고 또 다른 세계로 몰입시키는 것은 애니의 강력한 힘입니다. 그리고 애니는 애니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치유합니다. 과연 애니는 불행한 이들에게 가장 긴급한 백신입니다.     


만국의 찐따들에게 고합니다. 사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현실은 진짜가 아닙니다. 중2병에 걸려 떠드는 소리가 아닙니다. 부디 권태롭고 고통스러운 흑백의 현실을 살지 마십시오. 현실에서 뛰쳐나와 여러분에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주고 살아갈 용기를 주는 애니로 달려오세요. 이번 연재를 통해 흑백의 현실이 애니로 색칠되는 경험을 누려보세요. 이제 여러분은 애니의 주인공이 되고 세상은 애니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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