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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하여

자살에 대한 사유 실험

철학하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자살도 하나의 죽음이지만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섬뜩한 일로 여겨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자살에 대한 사유와 언어에 빈곤하다. 벼랑 끝까지 쫓겨온 이들 앞에서 우리는 공허한 말들을 보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살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일종의 불경함은 기독교적 전통에서 왔다. 타인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사여부도 신에게 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은 일종의 살인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종교는 더욱더 그것에 맹목적이다.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욥은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성경은 생사를 넘는 그의 고난을 통해 맹목적 인내를 가르친다. 하지만 성도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무언가에 맹목 했을 때의 강렬한 쾌감. 절대복종은 인간의 필사적인 욕구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쾌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은 나쁜 일이라 단정하고 잊으려 애쓰는 것은 내게 너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거대한 고통 앞에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맹목적이고 낙관주의적인 태도들이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생을 종료하는 것이 더 나은 답이 되지 않을까. 이 불경한 의문이 절대복종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살에 대한 사유 실험으로 이끈다.


아버지는 내 나이에 자살을 3번 시도했고 실패했다. 몇 년 후 내가 태어났고 몇 년 전에는 아내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곧 끊어질 듯한 아슬아슬한 인생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죽음에 가닿는 경험은 오히려 삶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철학자 사이먼 크리츨리는 저작 ‘자살에 대하여’에서 강한 염세주의가 일상의 작은 기적을 주며 그것이 살아갈 충분한 힘을 준다고 말한다. 자살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보다 가까이 두는 것이 오히려 풍요로운 삶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뿐’이라고 했다. 자살은 자신의 존재 대한 가장 치열한 사유다. 자살을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절망 속에서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202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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