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리스의 도전
요가를 배운 지 3개월이 되었다. 독자들은 남성인 내가 요가를 배운다고 하면 많이들 의아해할 것이다. 남자라면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격투기가 어울린다는 생각, 이것은 그야말로 사회적 통념에 불가하다. 하지만 사회통념을 넘어서는 것이 댄디의 본령이다. 댄디는 남성성만을 과시하는 마초들과는 달리 이른바 젠더리스(Genderless),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문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다루는 법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남성들이 타인을 압도하는 강인함을 추구하지만 댄디는 그런 전근대적 취향에 코웃음을 친다. 요가는 차분한 호흡과 유연함으로 새로운 옴 파탈(homme fatale)의 모델을 제시한다. 요가 수련을 통해 나는 댄디스트의 길로 한 발짝 들어서게 될 것이다.
요가를 수련하는 곳은 헬스장 GX 수업이다.
“아이고 학생~ 또 왔네!”
이곳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어머님들이다.
“하하 네 헤헿”
나는 예의 바르지만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단답으로 마무리했다. 지난번에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본인의 조카가 가야금을 전공을 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이 꺼지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요가는 시작되었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에 강사님은 ‘아도 무카 스바나사나’, 일명 ‘개 자세’를 지시했다. 개가 기지개를 켜는 듯한 자세로 요가에서 필수로 다루어지는 자세다. 나는 여름날 늘어진 개를 상상하며 허리를 천장으로 치켜올렸다. 나는 지금부터 구판장 앞에 늘어진 한 마리 개다. 세상에서 가장 권태로운 시골 누렁이다. 나는 온전히 몰입하게 되었고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따분하고 나른한 기지개를 펼쳐냈다. 이것은 누가 봐도 권태로운 누렁이 그 자체였다!
강사님이 내 옆을 지나갈 때 나는 꼬리를 흔들며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제발 나긋한 목소리로 ‘잘했어요~’ 혹은 ‘아주 좋아요~’ 같은 칭찬과 함께 나의 털을 쓰다듬어 주었으면!
강사님은 나의 매트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내 척추를 밀어주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내~쉬고~”
남은 인생을 요가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꼬리물기를 스무 번을 돌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다음 동작은 개구리 동작이다. 일명 고관절 열기 운동. 정강이를 무릎 바깥쪽으로 열어 ‘W’ 모양을 만드는 동작이다. 이 동작은 고관절이 유연하지 않은 남성에게는 무척 어려운 동작이다. 만약 군대 생활관에서 이 동작을 하고 있다면 중대장 호출로 성 정체성 상담을 실시하고 즉시 관심병사 목록에 등록될 것이다. 그만큼 강도는 높지만 성의 경계를 허무는데 필수적인 동작이라 할 수 있다.
한쪽 정강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정강이를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순간 내 몸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땅에 붙이려는 순간 불가항력적인 힘이 나를 압도했다. 내 정강이는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선에 부딪혔다. 마지막 힘까지 다 쏟아 내었지만 소리를 내며 자빠지고 말았다.
“흑..!”
결국 나는 고관절의 강력한 젠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좌절하는 나를 보며 강사님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거라며 위로했다. 그리고 6개월 추가 수강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따뜻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체육관 안에 가득한 개구리들 사이에서 초라한 나의 남성호르몬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요가 수련을 마친 후에는 간만의 점심 약속이 있었다. 여성과 단 둘이 갖는 자리였지만 오해는 마시길, 음악 작업을 위한 비즈니스적인 자리였다. 그녀는 내 음악에 기타를 연주해주기로 했고 나는 점심을 사겠다고 한 것이다. 그녀는 누가 봐도 매력 있는 여성이지만 나는 불가능한 일에 무리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오랜만의 이성과의 자리인지라 긴장은 불가피했다. 오늘의 목표는 하나다. 군대 얘기 없이 대화하는 것. 이것은 한국 남성이 젠더리스를 성취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스타에 자신이 민방위 몇 연차라던가 예비군 훈련 때만 게시물을 올리는 그런 시시껄렁한 남자로 보일 수는 없다. 단 한 번의 군대 얘기 없는 대화로 댄디가 무엇인지 경험시켜주리라.
식사를 하면서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감을 받은 소설 이야기로 이어갔다. 나는 여성 소설가들이 신춘문예를 휩쓰는 국내 문학 시장에서 몇 없는 남성 소비자다. 수많은 20, 30대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 고독하게도 걸어왔던 것이다. 그녀는 정세랑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옳다 커니! 이때를 위해 나는 그토록 외로웠던 것인가! 나는 재빠르게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자신도 그 소설을 좋아한다며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소설의 장점과 단점을 휘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제육볶음 양념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지만 흥분한 그녀는 말해줄 틈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 내고 있었다.
한참을 쏟아 내더니 그녀도 지쳤는지 나에게도 그 소설이 어땠는지 물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답을 때웠다. 하지만 그녀의 아쉬워하는 눈빛과 입가의 양념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발언을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은 지 어언 3년이 지났다. 애처롭게도 이 소설의 단 한 가지 기억나는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화랑대(육군사관학교)에서 만난 공군 장교와 소개팅을 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이 개연성 문제에 대해 낄낄거리며 비웃었던 기억만 유일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탁월한 비평인데 단 한 가지, 군대에 관한 이야기라는 이유로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나는 몇 번의 합리화를 마치고 나서 말을 꺼냈다.
“이 소설은 신선한 전개 방식으로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단 한 가지 결점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침착하고 댄디한 대답이었다. 그녀는 커진 눈동자와 어느새 굳어버린 입가의 양념을 내밀며 내게 다가왔다. 순간 흥분과 울분으로 점철된 무엇이 나를 사로잡았다. 젓가락을 급히 내려놓았다. 육군과 공군의 차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행군할 때 잡힌 물집과 말년에 누린 권력에 대한 이야기, 억울하게 혼나서 서러웠던 마음과 아까운 내 청춘에 대해 미친 듯이 퍼부었다. 아마 나의 입가에도 흥건한 양념이 묻어있었으리라.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녀를 보내고 쓸쓸한 참회의 걸음을 걷는다. 도심 속 상가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투박하다. 역시나 오랜 사회적 DNA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기필코 이 사회가 만들어낸 모습으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댄디즘은 거대한 대세 앞에 혁명을 외치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마지막 방법이다. 작업실에 돌아가서 컴퓨터 의자에 걸린 깔깔이를 장롱에 다시 집어넣고 자꾸 알고리즘에 뜨는 타이슨 KO 영상도 이제는 그만 볼 것이다. 당신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비웃을지라도 나는 나의 세계를 하나씩 바꾸어나갈 것이다. 이것이 고독하지만 용기 있는 댄디즘의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