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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눈을 떴다. 아니, 내가 눈을 떴는지 감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창문 없는 지하의 어둠, 그리고 방음처리가 된 음악 작업실에서의 아침은 침묵과 어둠으로 시작된다. 시간을 알 수 없다. 팔을 긁으면서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인지한다.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삐걱거리는 라꾸라꾸 침대 소리, 솜이 모두 닳아버린 침대의 뼈와 나의 뼈의 강직도를 느끼며 일어났다. 밖에 나가지 않은지 4일 되었다. 며칠은 작업 때문에 나가지 못했고 그 작업이 물거품이 되고 좌절해서 며칠을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초라한 나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마주 할 수 없다. 길을 가다가 동창을 만난다면, 음악 잘되냐고 안부를 묻는다면, 그때 내가 난김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면, 옛 연인을 마주친다면, 그 친구가 남자친구와 함께 있다면? 이런 상상을 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지하 작업실이 얼마나 아늑한 곳인지.      


식사는 3일 간은 동안 동생이 생일 선물로 사준 라면 포트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이 떨어지고 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가 너무 고프다. 침대를 접으려고 일어나자마자 현기증이 올라왔다. 나는 숨을 간신히 내쉬면서 외출 준비를 했다. 지갑에 돈이 있던가. 모르겠지만 나의 최선은 일단 음식이 있는 곳으로 기어나가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눈이 따갑도록 쬐는 햇빛의 온기가 느껴진다.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코가 찡하고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아마 생리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너무 배가 고파 가는 숨소리를 내며 편의점을 향했다. 도시락을 집고 잔고를 확인했다. 욕을 한 사바리 했다. 나의 통장 잔고에는 330원 밖에 없다. 배가 너무 고파서 편의점 유리문을 잡고 허리를 숙여 가느다란 헐떡임으로 마른 등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나는 항상 입고 다니는 바람막이의 모든 주머니를 뒤졌다. 마지막 안주머니에서 코인 세탁을 하려고 넣어두었던 500원 동전을 하나 발견했다. 나는 발발 떨며 신의 이름을 외쳤다. 나에게 작은 희망이 생겼다. 물론 서울에서 잔고 330원과 500짜리 동전으로 허기를 채울 수는 없다. 나는 더 큰 은총이 필요했다. 바람막이를 움켜잡았다. 3년째 봄, 가을, 겨울을 함께하는 이 바람막이는 거지꼴로 고향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상설매장에 데려가 사준 옷이다.     


“엄마..”


엄마의 이름을 부르자 뜨끈한 기운이 광대를 타고 올라가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다. 눈물은 좌절의 반대말이며 눈물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나는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모든 통장의 잔고들을 어플로 찾았다. 작년에 해지했던 청약통장의 잔고, 쓰지 않던 통장까지. 하지만 10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호흡을 하고 다시 걸으며 생각했다.         


고민을 하면서 동네를 걷다가 자주 가는 수퍼마켓 앞에 섰다. 그리고 수퍼마켓에 마일리지가 쌓였던 것을 생각해냈다. 1,000원~1,700원 정도인 것으로 짐작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나는 현기증이 올라오지 않도록 천천히 수퍼마켓에 들어갔다. 크기가 꽤 있는 곳이지만 허기를 달래줄 음식은 없었다. 나는 돈이 없을 때마다 자주 먹던 1500원짜리 강냉이와 조지아 커피 한 캔을 집었다. 여기서는 조지아 커피가 450원이다. 총 1,950원어치의 상품을 들고서 직원에게 다가갔다. 등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고 나의 표정도 굳었다. 과연 살 수 있는 마일리지가 남아 있을까.     

나는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니 제가 카드를 놓고 왔네요. 참.”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무말 없이 커피와 강냉이를 스캔했다.

“혹시 여기 있는 300원이랑 마일리지로 계산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갸우뚱하더니 휴대폰 뒷자리를 묻고서 기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긴장감에 배에서 오는 통증은 사라졌지만 나의 입술과 손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는 들리지 않게 찬찬히 심호흡을 했다.


직원은 마지막으로 능숙하게 기기를 두드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500원이 모자라네요.”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쏟아져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고 가벼운 미소로 갈음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500원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별일이 다 있네요. 요즘 정신이 없어서요. 간만에 추억의 강냉이를 먹고 싶었는데 하하”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수퍼마켓을 퇴장했다.     


어지러움증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며 작업실에 겨우 도착했다.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머리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 하나를 아무거나 틀어놓고 강냉이를 퍼먹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강냉이가 입에 묻거나 바닥에 흘려도, 혹은 흥분한 개처럼 먹어서 옷 속에 들어가도 이상하게 쳐다볼 사람이 없다. 나는 개처럼 헐덕이며 강냉이를 처먹다 3분의 2정도를 먹고서 지쳐버렸다. 턱 근육이 아리고 숨이 찼다. 남은 강냉이를 퍼먹기 위해 잠깐 쉬어야겠다. 다가올 월세, 카드값 청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오늘 나는 생존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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