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곡가님의 작품을 신중히 검토하였으나..”
또 떨어졌다. 이래서 내가 지원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 달 전부터 이 회사 소속 작곡가가 되는 상상을 했다. 소속된 가수들에게도 깊은 애정을 쏟았다.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켜고 휘몰아치는 파도 앞에 섰다. 팔로우했던 가수와 회사 인스타그램 계정을 검색한다. 그리고 무사의 칼처럼 단번에 팔로우를 끊었다.
이번 데모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돈, 시간, 애정까지. 지금은 월세, 카드값이 나가는 시점으로부터 10일도 남지 않았다. 난 이토록 무모하다. 학창시절, 그러니까 교실에서 나는 대부분 똘똘한 학생이었건만 사회에서는 왜이리도 어리석고 초라한 삶을 살고 있나. 눈물이 새어 나온다. 처음 흘리는 눈물이다. 내 삶에 단 한 번도 동정해본 적 없었기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남아있을 무렵 인력소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곳에 도착하면 40-50대 아저씨들이 흙 묻은 작업화, 작업복이라고 불리는 아무 옷을 입고 일제히 고개를 숙인채 앉아 있다. 청년은 내가 유일하다. 저번에 왔을 때도, 저저번에 왔을 때도 그랬다.
“학생, 보건교육 이수증있어?”
“그럼요.”
나는 작년에 2달간 시스템 동바리 팀에서 노가다를 해본 적이 있다.
“오늘도 못나갈 수 있어”
씁쓸한 마음으로 10여분 가량 기다렸다. 가져온 책을 폈다. ‘찰스 부코스키-팩토텀’. 팩토텀은 잡부라는 뜻이다. 요즘 나는 찰스 부코스키의 글에 빠져있다. 벌써 세 권째 읽고 있다. 일생을 거렁뱅이 작업부로 살다가 인생의 말년에 작가로 성공을 이룬 작가.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둑 맞은 책 1위. 미국 하류인생의 계관시인. 실업자들의 선지자. 저저번 데모 작업에서 떨어졌을 때부터 그의 글을 울면서 읽었다. 그는 계급 상승이 아니라 부랑자 생활을 이어가면서 세상을 멋지게 탓했다. 우체국에서도 일을 했던 그는 퇴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체국에 남아 미쳐 가느냐, 아니면 그곳을 빠져나와 작가로 살면서 굶주리느냐. 나는 굶주리는 쪽을 선택했다." 나도 이제와서 취직을 하느니 뮤지션으로 살다 굶주리겠노라. 나는 또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저씨”
소장님은 한 명씩 아저씨들을 불러 이들을 출발시켰다. 아저씨들이 한 명씩 끌려나간다. 이번에는 정말 간택되어야 한다. 또다시 끔찍한 카드연체에 시달릴 수는 없다! 나는 책을 덮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분주하게 통화를 하는 인력소 소장님 방향으로 최대한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어깨와 가슴은 펴서 나의 건강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인력소는 오랫동안 일을 나온 아저씨들을 뽑아 갔다. 나는 자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저번 주도 저저번 주도 오늘도 일을 하지 못했다.
파란색 하늘이 드리울 때쯤 나는 다시 지하 작업실을 향했다. 때는 새벽 6시 반 경.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을 지나는데 군침이 돈다.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과 라면은 짠맛은 나의 입맛을 사육했다. 나는 사료 앞의 개처럼 침이 돌았다. 2-3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몽롱하고 지쳐서 침을 자제하지 못하고 떨굴뻔했다. 너무 흘러 나와서 다시 삼키는데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내가 씻으러 다니는 헬스장을 지난다. 작업실로 내려간다. 혹여 사장님이 일찍 출근했을까.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쾌쾌한 지하의 향기가 몰려온다. 나갈 때 정리하지 않았던 라꾸라꾸 침대로 들어간다. 잘 때 입었던 츄리닝 그대로 나갔으니 변한 건 약간의 땀과 몸에 묻은 새벽이슬의 이질감.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다. 올해도 시간은 잔인하게 나를 때리고 지나간다. 쓰라린 답답함이 밀려온다. 느슨하게 한 숨을 내쉬었다. 자정이 지났다. 난 정말 잘 될 줄 알았다. 이 나이쯤이면 작곡가로 자리 잡아 분주한 삶을 살 줄 알았다. 최소한 자취방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올해도 나는 지하 작업실에서 숨어 사는, 꾀죄죄한 행색으로 헬스장에 씻으러 다니는 초라한 30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