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겨울

by 느리게감기

이십대의 겨울은 ‘분위기’지만 삼십대의 겨울은 ‘체감’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차가움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침마다 추운 공기를 뚫고 출근하는 일이 괴롭다. 찬 바람은 얼굴을 베고, 숨은 금세 희뿌옇게 얼어붙는다. 잎 한 장 걸치지 않은 휑한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또 얼마나 지루한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채 걷게 한다. 한때는 겨울의 하얀 숨결과 코끝의 시림이 낭만이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이 계절을 힘겨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겨울은 죄가 없다. 그저 내가 변한 것이다. 그럼 겨울이 싫으냐 묻는다면, 글쎄.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여름을 유난히 좋아해서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을 뿐, 막상 이렇게 겨울에 대해 떠올리다 보니 내가 이 계절을 꽤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언제부터가 겨울일까. 절기로 따지면 입동(立冬)이겠지만, 요즘은 절기가 체감적으로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을 알아보는 나만의 식별법을 따로 정해두었다. 거실 창문의 간격이다. 한여름에 활짝 열어두었던 거실의 창문이 가을을 지나며 조금씩 좁아진다. 밤바람이 서늘해질 때마다 틈새를 더 줄이다 보면 그 간격이 완전히 메워지는 순간이 오는데, 내게는 그때가 겨울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무렵이면 나도 나름의 겨울 준비를 시작한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평소엔 맥주를 즐겨 마시지만, 겨울엔 특별히 위스키를 한 병쯤 집에 쟁여둔다. 위스키는 차가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다. 투명한 잔에 담긴 위스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데워지는 기분. 이번에는 ‘글렌드로낙’ 위스키를 한 병 준비해뒀다. 또,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한다. 겨울과 어울리는 느린 재즈와 잔잔한 연주곡, 오래된 캐럴들을 선별하여 모아둔다. 작년에 만들어둔 목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작업을 할 때마다 괜히 마음이 설렌다. 매해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그게 또 좋다.


봄, 여름, 가을에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햇빛 아래서 걷고, 바람 속에서 냄새를 맡고, 계절의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나의 세상은 현관문 안쪽으로 좁아진다. 동물들이 식량을 비축하고 겨울잠을 자듯, 식물들이 성장 활동을 멈추고 잎과 줄기의 양분을 뿌리로 내려보내듯, 나 역시 집 안에서 나만의 겨울나기를 시작한다. ‘지나간 한 해를 되짚으며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시기..’ 라고 왠지 있어 보이게 말하고 싶지만, 역시나 추운 탓이 크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현관문을 여는 일이 매번 망설여진다. 그래서 겨울에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따뜻한 공기와 조명,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겨울의 밤은 길다. 누군가는 긴 어둠을 견디기 힘들다 말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 고요함이 위로가 된다.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고, 그만큼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겨울밤 덕분에, 나는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돌아보고 쉬어가기에 이보다 알맞은 계절이 또 있을까.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은 겨울을 따뜻하게 건너게 해주는 나만의 식량이다. 어두운 환경을 좋아해서 조명은 꼭 필요한 만큼만 켠다. 희미한 빛 속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잔을 하나 꺼내 술을 조금 따르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밤을 즐긴다. 조용한 방 안을 채우는 재즈의 낮은 울림, 잔 속에서 일렁이는 작은 불빛, 그런 작은 것들이 나를 안정시킨다. 그러다 문득 창문을 열면, 먼 하늘 끝에 또렷이 박힌 별들을 구경할 수 있다. 겨울밤은 공기가 차고 건조해서 빛이 퍼지지 않고 선명하게 닿는다고 했다. 추운 공기 덕에 선명해지는 것들. 방 안의 온기, 유리창에 서린 김, 코끝의 온도. 모두 겨울이 만들어준 ‘대비’ 위에서 빛난다.


겨울의 냉기가 있어야 온기의 소중함을 안다. 차가움이 있어야 따뜻함이 선명해지고 멈춤이 있어야 다시 걸어갈 수 있다. 계절은 늘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겨울은 느림과 고요를, 봄은 시작을, 여름은 뜨거움을, 가을은 비움을 가르쳐준다. 그중에서도 겨울은 가장 묵묵한 선생님. 단단해지는 법, 기다림의 의미, 그리고 따뜻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하지만 나는 배운 걸 금세 잊어버리는 못난 학생. 영하의 추위가 닥쳐오면 또다시 ‘얼른 겨울이 지나가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될 것이다. 두꺼운 외투 속에 파묻힌 채 ‘지긋지긋한 겨울’이라 중얼거리며, 다시 따뜻한 계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겠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올겨울엔 리스트에 올려놓고 보지 못한 영화들을 실컷 보고,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을 하나씩 읽어볼 생각이다. 겨울잠을 자듯 느리고 따뜻하게, 조금 덜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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