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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Aug 31. 2021

쉼조차도 내 스타일이 필요하다

     

한때, 내 꿈은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아이 셋의 엄마, 직장에서는 많은 학생의 교사로,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맡은 역할로 쉴 틈 없이 살았다. 오죽하면 밤에 아이들이 다 잠들고 나면 파김치가 된 몸으로 혼자서의 시간을 놓치기 싫어 바로 잠들기 싫을 정도였다. 내 개인 공간은 물론 시간은 없었다. 화장실과 자동차 안. 그나마 그 공간에서도 많은 일이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무인도에 가서 살아봤으면 좋겠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명예퇴직이었다. 안정된 직장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든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세 아이를 키우는 일과 직장 둘 다를 병행하는 것이 내게는 벅찼다. 내 월급의 대부분이 양육비로 사용되는 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은퇴 이후 세 아이가 다 대학을 들어가면 나는 날개를 달고 날아다닐 기대를 품었다.    

  

발등의 불이 꺼지고 드디어 나에게 쉬어도 되는 시간이 도래했다. 그런데 쉬는 방법을 몰랐다. 쉬는 것을 내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아무 일이 없으면 폐인이 될 것 같아 일부러 일정을 빽빽하게 짜 놓고 뭔가를 해야만 했다. 쉬는 것이 불안했다. 누구도 나한테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가 그랬다. 존재의 공허함을 대면하기 싫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피하고자 바쁜 생활로 메꾸는 것의 반복은 은퇴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도 쉬지를 못하고 늦잠을 자고 나서도 개운하기보다는 뭔가를 하지 않는 나를 자꾸 몰아붙이는 불편함을 만나야 했다. 항상 허기가 졌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 좀 더 좋은 집을 구해야 해. 건강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해. 아이들 결혼 준비를 위해 자금을 마련해야 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금방 늙어버리니 열심히 뭔가를 배워야 해. 수도 없는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나는 당장 꿈이었던 무인도에 갈 수도 있었지만 아마 무인도에 간다고 한들 내가 쉴 수 있었겠나 싶다.     


     잘 쉰다는 건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 가는 게 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번번이 미뤄지고 모든 구성원의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으나 모처럼 다섯 식구 모두 함께 갈 기회가 되어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내 숙원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여행 경험이 별로 없는 우리 부부는 젊은 아이들의 의견을 따라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으로 비행기, 숙소, 일정 모두 아이들의 결정을 따랐다. 일본 고유의 풍광을 보고 싶었던 나는 도야 호수를 꼭 일정에 넣어주길 제안했다. 차를 빌려서 직접 몰고 가는 3월의 홋카이도 길이었다. 3월인데도 그 지역은 설국이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생각날 정도로 우리가 가는 길은 모험 천만이었다. 험한 산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녹지 않고 쌓인 눈 벽, 눈더미로 뒤덮여있었고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스키장이 있는 거대한 산들을 지났다. 그 시기엔 도야 호수 쪽으로 오는 관광객도 없는지 광대한 자연 앞에 두려움을 느꼈다. 낯선 길을 가느라 운전석이 한국과 정반대인 오른쪽에서 운전하는 남편도 진땀을 흘리고 아들은 옆에서 아빠를 도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사이 뒤에 앉은 나와 두 딸은 나중에 숙소에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감에 휩싸였다.     


드디어 도야 호수에 도착.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호수 입구. 오직 우리 가족만이 차를 세워놓고 호수 쪽으로 향했다. 너무 큰 호수라 대부분 자동차로 한 바퀴 돌거나 유람선을 타고 구경을 한다고 하는 큰 규모의 호수. 조금 전 설국을 지나온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 눈앞의 호수는 그야말로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 사람 하나 없는 원시 자연의 따사롭고 평화롭고 장엄하기까지 한 그 장면 앞에 경탄이 절로 나왔다. 커다란 백조 한 마리가 유유히 물 위를 떠다닌다. 가끔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어 먹이를 잡아먹기도 한다. 롤러코스터급 불안한 길을 지나 무사히 도착한 안도감과 뜻밖의 풍광을 선물로 받은 기쁨에 젖어있는 우리를 전혀 의식 않는 백조는 성큼성큼 뭍 위로 걸어 나와 오히려 우리가 놀란다.     


가족이 호수 주변을 둘러보러 간 사이 허리가 불편하던 나는 백조가 있는 근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주 잠시의 시간이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 이런 순간이겠다는 찰나의 번뜩임이 들었다. 백조의 그 자유로움은 참 쉼의 실제적인 형상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친구가 어디 있는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옆에 있어도 아랑곳없다. 그저 물 위를 떠다니며 물속의 먹이를 부리로 집어 올리기도 한다. 평화, 행복, 쉼. 어떤 단어로 이것을 표현할까? 잔잔한 호수 그리고 따스한 햇살. 그리고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백조. 참 쉼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다.     


      내가 찾은 쉼의 스타일     


도야 호수에서의 그 백조의 유영, 그리고 자주 우리 집에서 발견하는 고양이의 늘어진 낮잠, 이런 자연의 모습에서 참 쉼의 모습을 발견하지만 우리네 인간은 그 쉼이 서툴다. 마치 쉬는 것도 잘 해내야 하는 어떤 숙제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지어 쉬러 간 여행지에서도 잘 쉬지 못한다. 과연 쉼이란 장소와 시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무인도에 간다고 해도 은퇴를 해서 시간이 많아져도 못 쉬는 이유는 마음이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산책을 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식당에 가기도 하고, 혼자 영화를 보기도 한다. 나는 그때 온전히 그 일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으며 음식의 맛을 느껴보려고 한다. 산책할 때는 발의 느낌과 나무와 하늘과 주변의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한다. 피아노를 칠 때는 그 곡에 들어가 음률과 리듬을 느껴보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오로지 그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다시 말해 마음이 쉴 때 그것이 진짜 쉼인 것 같다. 이것이 백조에게서 배운 내 스타일의 쉼이다.


* 이 글은 '글로모인사이'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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